세계적인 청나라의 대해적왕 "정일수"

19세기 청나라의 세계 최고의 대해적왕 "정일수"의 영향력들

by 지구본 여행기



정일수의 본명은 석향고(石香姑)입니다. 남성우월주의 제국이었던 청나라에서는 오로지 남성 위주로 기록하기 때문에 정일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1801년경 광저우(광둥) 연안의 선상 창관(물 위에 요새라는 "화선")에서 일하던 여성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당시 강력한 해적 선장 중 한 명이었던 정일(鄭一)과 1801년에 혼인하면서 180도 바뀝니다. 이때부터 그는 "정일의 아내"라는 뜻의 "정일수(鄭一嫂)"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중국해의 대해적들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전쟁과 대립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남편 정일은 베트남 떠이선 왕국에 개입하였고 몰락 이후 흩어진 해적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1805년 이른바 "광둥 연합(Guangdong Confederation)"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선박을 6개의 깃발(홍, 흑, 백, 녹, 청, 황)로 나누어 거대한 연합 함대를 구축했습니다.

dsafsf.jpg

하지만 1807년, 남편 정일이 태풍(또는 사고)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연합은 붕괴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정일수는 남편의 양자이자 가장 강력한 홍기대(Red Flag Fleet)의 제독이었던 장보(張保)를 포섭함으로써 동남아시아의 해상 통제권을 장악했습니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정치력으로 다른 해적 제독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며, 그는 수백 척의 함대들과 수만 명의 해적들을 거느린 최고 제독, 즉 "해적 여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정일수가 거느린 해적의 규모는 전성기 기준 무려 4~ 7만 명, 함대들은 최소 400여 척에서 최대 1,200여 척에 달했습니다. 이토록 거대하고 막강한 해군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정일수가 구축한 "엄격한 해적 규약"이라는 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엄격한 해적 규약은 대략 이렇습니다. 약탈한 약탈품은 포획자가 20%만 소유하고 나머지 80%는 연합의 공동 금고에 귀속시켰습니다. 사적으로 전리품을 숨기거나 훔칠 경우 즉각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해적에게 정기적으로 세금(보호비)을 내고 협조하는 해안가 마을 주민을 약탈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자는 예외 없이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 규율을 통해 해적들은 정부군의 눈을 피해 육지로부터 안정적인 식량과 무기를 공급받는 일종의 세금 제도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해전 중 도망친 탈영병은 귀를 자르거나 처형했습니다. 또한 포로로 잡힌 여성을 강간한 자는 사형에 처했습니다. 여성 포로와 합의하에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식적으로 결혼해야 했고 훗날 아내를 버릴 경우에도 사형이라는 가혹한 룰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규율은 그들을 단순한 해적이 아닌, 정규군 수준의 통제력과 행정 체계를 갖춘 거대한 해상 자치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일수의 해적 함대들은 1809년 말~ 1810년 초에, 동남아시아에 있던 포르투갈 함대들을 상대로 대규모 해전을 치렀습니다. 정일수와 장보의 함대는 포르투갈 함선에 포격을 가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정일수의 해적 함대들은 영국의 거대한 동인도회사(EIC) 소속 무장 함선들을 위협하고 나포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809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장교 리처드 글래스풀(Richard Glasspoole)이 나포되어 억류되었다가 막대한 몸값을 치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겨우 풀려난 공식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글래스풀은 영국으로 돌아가 정일수 함대의 막강한 해군력과 화력, 그리고 거대한 규모와 엄격한 해군 규율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810년, 정일수의 해적 함대들은 계속해서 동남아시아에 있는 포르투갈 함대들과 영국 함대들을 포격해서 격침시키고 나포하면서 약탈했고 청나라의 함대들도 청나라로서도 포르투갈이나 영국, 스페인과 해상 무역을 해야 경제적 이득을 얻는데 정일수의 해적 함대들이 자꾸만 길을 가로막자 청나라 황제가 분노하여 결국 청나라와 영국과 포르투갈 연합 함대가 구축되어 정일수 해적 함대들을 군사적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dsafsf.jpg

게다가 해적 연합 내부의 파벌 갈등(흑기대의 이탈)이 발생하자 정일수는 탁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립니다. 무의미한 소모전 대신 양광총독 백령(百齡)과 직접 대면하여 투항을 대가로 파격적인 협상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는 부하 해적들의 전면적인 법적 사면, 자신들이 축적한 막대한 재산 유지, 그리고 장보를 비롯한 핵심 간부들의 청나라 해군 군인에 특채로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해달라는 놀라운 조건을 모두 관철시켰습니다. 대부분의 해적이 해전 중 목숨을 잃거나 참수장이나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것과 달리, 정일수는 명예로운 해군 귀족이자 부호로서 마카오에 정착했습니다. 정일수는 마카오를 지배하면서 도박장과 소금 무역업을 운영하며 천수를 누리다 1844년 69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정일수의 인생은 지구상의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이 지대합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강력했던 여성 해적"이라는 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후대 대중문화에 깊은 영감을 남겼던 겁니다. 정일수가 등장하거나 정일수를 모티브, 롤모델로 만든 작품들은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2007)"에 등장하는 전 세계 9대 해적 영주 중 1명인 아시아의 대해적은 명백하게 정일수를 직접적인 모티브로 창작된 캐릭터입니다.

영국 BBC의 장수 SF 드라마 "닥터 후(2022년 스페셜 편 "Legend of the Sea Devils')"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합니다.

글로벌 인기 만화&게임으로 유명한 "원피스"의 경우 원작자가 특정 캐릭터를 정일수라고 명확히 공식 지정한 바는 없지만 "압도적인 해적들을 거느린 거대한 해적 연합의 여성 통치자"라는 역사적 원형(Archetype)은 수많은 서브컬처 작품에서 해적 여제를 디자인할 때 교과서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스페인에 있는 영국의 식민지 지브롤터는 왜 해외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