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왕국과 전쟁해서 승리한 나라 오만의 역사
(1) 오만의 원시 시대와 고대 문명, 이슬람의 도래, 이바디 이맘 옹립 (기원전 2300년쯤 ~ 15세기)
많은 한국인들이 오스만은 알지만 오만은 잘 몰라요. 그래서 오만의 역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오만" 지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 "마간(Magan)"으로 불렸으며, 기원전 약 2300년쯤부터 성장한 해양 문명이었어요. 마간은 수메르 사람들에게 구리, 마노 등의 값비싼 광물들을 준 것으로 알려져있지요. 이후 기원전 1세기까지 교역과 진귀한 유향, 유향나무(프랑킨센스) 교역으로 번창했으며,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교역항으로 인기가 많았지요.
약 7세기 중반쯤이 되자, 이슬람 왕조들이 아라비아 반도에 전파되었고 오만 내의 아즈드 부족을 중심으로 이바디 교파의 포교가 이루어졌지요. 이바디 교파는 약 650년쯤 바스라에서 탄생하여 오만으로 전해졌으며, 오만 출생의 학자인 자비르 이븐 자이드 등이 돌아와서 이바디 포교 운동을 낳았어요. 이 과정에서 무슬림 이맘(Imam)이라고 불린 정치 체제가 출연하며 약 750년쯤에는 최초의 이바디 이맘국가가 탄생된 것으로 추정되요.
여하튼 내륙 이맘 옹립과 해안부(무스카트 등)의 제후 통치가 교차하는 독자적 정사 구조를 유지하면서 10세기를 맞이했고 카르마티아 운동이 탄생했고, 12세기부터는 현지 나바니(Nabhani, 바니걸 아니에요. 농담 죄송..) 왕국이 지방을 통치하였지요. 하지만 오만은 중세 시기 동안 존재감이 있거나 유명한 왕국이 전혀 아니었어요. 주변국들조차 "그곳(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 "나바니 왕국"라는 곳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한마디로 매우 매우 고립된 곳이었지요. 물론 나바니 왕국처럼 고립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은 발달했듯이 고립된 덕분에 오히려 왕국이 발달하는 케이스는 역사에서 많이 있어요.
(2) 오만 왕국 VS 포르투갈의 전쟁 (약 16세기쯤)
조총을 든 오만 졸병이 포르투갈의 졸병들을 쓰러뜨리는 그림
약 15세기 후엽쯤부터 교역을 위해 인도양 교역로에 찾아온, 포르투갈인들이 오만에 모습을 드러냈지요. 약 1507년쯤에 알부케르케 장수가 무스카트를 급습하였지요. 약 1515년쯤에 포르투갈 왕국은 졸병들이 잠깐이지만 오만의 항구 마을인 무스카트에 진출했지요. 초반에 오만이 포르투갈 왕국을 못당해낸 이유는 당시 오만은 중앙집권화나 통일 왕국이 되지 못하고 여러 민족들이 마치 도시국가나 봉건제처럼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었어요. 여하튼 이후 오만의 해변가에 세관을 세운 포르투갈 왕국은 향신료, 향나무 장사를 하게 되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이슬람 세력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오스만 왕조는 16세기 중반쯤에 무스카트를 급습하여 포르투갈인들을 숙청했으나 서아시아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는 오스만 왕조와 아라비아 반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오만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짧은 단기간에 그쳤지요.
(3) 해양 세력인 오만의 부상 (약 17세기쯤)
그러다가 약 1624년쯤에 야루바(Yaaruba) 부족의 추장인 낫시루 빈 무르시두(Imam Nasir bin Murshid al-Yaʿrūbī)가 옹립되어 나바니 왕국을 쓰러뜨리고 오만 이맘국(야루바 왕국, 오만 왕국이라고도 불렸지요)이 재건되었어요. 낫시루는 중앙집권화를 시작하여 포르투갈 왕국과 전쟁하기 위해 병졸들을 모았어요. 그리고 오만군들은 약 1643년쯤에 소하르라는 곳을 급습하여 장기간 포위하고 포르투갈군들을 숙청하여 장악했지요. 이어서 약 1648년쯤과 약 1650년쯤에 2번에 걸쳐 무스카트로 가서, 약 1650년 1월 23일쯤에 포르투갈군들을 완전히 다 잡은 끝에 무스카트를 탈환했지요. 이로써 오만은 아라비아만 연안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인도양 교역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으니 당시 오만의 조선 기술이 형편없다는 것이었지요. 오만은 이제 곧 나바니 왕국을 쓰러뜨리고 탄생해버린 신생 왕국인 데다가 해상 교역을 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미국처럼 배 만드는 기술이 없었지요. 오늘날 미국이 조선 기술이 아예 없어서 스스로 군함을 아예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1가지 묘안을 떠올린 낫시루 이맘의 뒤를 이은 사잇프 빈 술탄(Saif bin Sultan al-Yaarubi)과 그의 아들들인 빌아랍 이븐 술탄(Bil'arab ibn Sultan, 1679-1692), 사잇프 이븐 술탄(Saif ibn Sultan, 1692-1711)들은 포르투갈 군대들을 다 죽이고 그들로부터 노획한 배와 자기들의 낙후된 배들, 그리고 이후 새롭게 다시 만든 배들을 합쳐서 나름 요긴한 배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밥을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며 유혹한 아랍, 인도, 서구계의 선원들을 고용하여 오만 왕조의 교역선과 선박들이 탄생하였어요.
그리고 오만 왕조의 배들은 이미 망한 포르투갈 왕국을 포함하여 스페인 왕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왕국의 함대들을 공격하여 정력을 과시하였어요.
야루바.. 즉, 오만의 배들은 동아프리카 해변으로 진출하여 모음바사를 급습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포르투갈군들을 다 죽이고, 1696년~ 1698년까지 벌어진 모음바사(포트 지저스) 싸움에서 최종 승리했어요. 그리고 1698년 12월 13일 오만군이 포트 지저스를 먹자, 그 인근의 케냐, 탄자니아 해변과 잔지바르, 펨바 섬 등은 오만 왕조에게 합병되었어요. 이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한 포르투갈 함대들은 동아프리카에서 도망쳤고, 오만 왕조는 인도양 연안에서 포르투갈 왕국보다 훨씬 더 쌔고 부유한 해상 세력으로 급부상했지요.
16세기까지 세계 패권국이었던 명나라의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이 세계 1위였고, 명나라 다음으로 경제력이 강했던 제국이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 오스만 제국, 무굴제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만 왕조의 이러한 해상 팽창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영국 역사학자들은 오만 왕조가 1698년 모음바사 진출 뒤 잔지바르, 킨와, 킬와 등 동아프리카 해변 지대를 포함한 광대한 해양 세력을 건설했다고 평가했지요.
오만 왕국의 해양 진출은 중동, 인도양의 국제 세력 균형을 크게 변화시켰어요. 그들은 인도양 항로에 진출하며 커피, 흑인 노예, 보석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특히 스페인 함대들과 포르투갈 함대들도 오만 함대들을 피해서 도망가기에 바빴지요. 이에 따라 오만의 위상은 중동 내륙부 이맘국과는 별개로, 인도양 교역권의 부유국으로 떠올랐지요. 이렇듯 펨바, 잔지바르, 파데, 와로 진출하자 오만과 맞서 싸우고자 프랑스 왕국, 영국, 네덜란드 왕국은 손을 잡았지만 번번히 패배했지요. 그렇게 프랑스 왕국은 걸프만, 영국은 인도 최남부의 물, 네덜란드는 홍해로 도망치기로 합의하였지요.
(4) 강대국 이란 왕조의 침략에 무너지는 오만 왕국 (18세기)
그러나 신흥국 오만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왕조의 세속적 신분제도와 이에 반발하던 폐쇄적인 친(親)이맘 세력 간의 갈등은 커졌고 동란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지요. 이 때를 틈타 1737년(혹은 1739년이라는 기록도 있지요)에 당시 열강이었던 페르시아(이란) 사파비 왕조판 송태조 조광윤, 송무제 유유, 고구려 광개토대왕 같은 전쟁기계들이나 다름없던 페르시아의 최후의 불꽃이라는 나디르 샤가 아라비아 반도쪽으로 진출하여 당시 과거의 동로마(비잔틴, 비잔티움)처럼 동란으로 망해가던 오만 왕국을 급습하여 무스카트 요새 및 오만 왕국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였지요. 그러나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도 1747년에 점령한 오만 지역의 지리적 이점 때문에 페르시아 왕조는 오만 왕국 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했지만 소하르 요새의 지방관이었던 아흐마드 빈 사이드 알 부사이드(Ahmad bin Sa’id al-Busaidi)에 의해 축출되었고 그 공으로 그는 새 이맘으로 옹립되었지요.
그렇게 새 이맘인 아흐마드는 야루바 왕조를 끝내고 자기의 왕조인 알 부사이드 왕조를 개창하면서 야루바 왕조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새 왕조를 탄생시킨 아흐마드는 1749년 뱅락을 주장하며 영토를 다시 통합해 나가 오만의 내륙과 해안 지방을 안정시켰지요. 이후 알 부사이드 왕조는 오만 수군과 상선단을 정식으로 만들고, 오만을 번창시켰지요. 물론 오만은 내륙의 이맘 왕국과 해안의 술탄국(무스카트)이 병립하는 구조가 자리 잡긴 했지만요. 이 시기 오만 왕국은 당시 인기 교역 물품들이었던 커피, 설탄 및 사지품들, 향신료들을 판매하면서 엄청난 부를 창출하였지요. 마치 조선시대의 연은분리법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이 정도 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요.
(5) 오만의 근대 시대 (18세기)
엄청난 "경제 성장"에 이제는 "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국가 경제 GDP가 성장한 이러한 오만 제국의 황금기는 19세기.. 즉, 1807년 때로 그 당시 술탄은 사이브 빈 술탄이었어요. 그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에서 벗어나고 걸프만과 동부 아프리카 해역에 대한 오만 제국의 재해권을 확보하고, 19세기 후엽부터 이제 전통적인 세계 패권국인 중국은 몰락했고, 무섭게 성장하던 서구 열강의 시대였고 이런 서구 열강 사이에서 마치 태국처럼 독립적이면서도 대등한 외교를 펼쳤어요. 서구 열강과의 동등한 외교, 거래는 오만 제국에게 또 다시 많은 부를 가져다주면서 이제 오만은 마침내 "근대화"를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지요.
사이드 빈 술탄(Said bin Sultan, 1806~1856년) 때 오만 수군과 상선단은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였지요, 한때는 오스만 제국보다 훨씬 나약했던 오만 제국은 예니체리 같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반발로 인해 근대화에 처참히 실패한 오스만 제국과는 정반대로 근대화에 성공한 셈이 된 것이지요. 교역 부유국을 추구한 술탄에 의해 수출 도시인 잔지바르로 수도를 잠시 옮기다가 무스카트를 공동 수도로 삼는 등을 하여 동아프리카로 경제적 진출을 시도했지요. 이 시기에 오만의 배들은 잔지바르, 킨와, 모잠비크 등 해변 도시들을 진출하며 노예 무역을 매매하면서 인도양, 홍해 연안에서 경제력을 유지했어요. 그러나 약 19세기 중반쯤부터 오만에게 노예 무역를 취소하라고 유럽 나라들의 압력으로 오만은 국내 경제 기반이 약화되었지요.
게다가 여기에 더해 약 1856년쯤에 사이드 빈 술탄이 이승에서 하직하자 일부다처제를 중시하하는 이슬람답게 술탄이 낳은 수많은 아들들에 의해 아들들 중 하나였던 오만 제국의 수와이니 이븐 사이드(Thuwayni ibn Said)가 오늘날의 오만 지역을 먹으면서 내륙 정부(무스카트)를, 또 다른 아들인 마지드 이븐 사이드(Majid ibn Said)가 잔지바르를 먹으면서 잔지바르 정부로 나뉘어 졌으나 결국 끝까지 통합되지 못하고 계속하여 티격태격하면서 국력을 소모하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비겁하고 야비한 러시아 제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들이 끼어들었고 결국 약 1888년쯤에 오만과 영국 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오만은 영국의 보호지가 되었지요. 영국은 해협 경비를 담당하고 오만의 외교를 관리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만은 형식상 독립을 유지했으나, 내륙부 이맘국과 해안부 간 권력 다툼은 계속되었고, 약 1920년쯤에 세브 조약(Seeb Treaty)으로 술탄의 정사와 내륙 이맘의 자치가 잠정 인정되었긴 했어요. 약 1937년쯤에 오만에서 원유가 발견되었으나, 동란 등으로 개발은 미미했지요.
약 1950년대쯤 들어 무스카트 술탄이 정사를 잘 못하면서 내륙의 반발 세력(이맘파)들이 농민봉기했지요. 약 1954년쯤부터 시작된 제벨 악다르 싸움에서는 오만 내륙 산악지대의 이맘 농민병들이 봉기를 일으켰어요. 그렇게 경제적으로 계속 죽어가면서 결국 마지막까지 역외영토였던 과다르 지방도 약 1958년쯤에 파키스탄에게 팔아치울 정도로 경제력이 많이 안좋아졌어요. 여하튼 이 싸움 결과 이마메이트는 해산되었고, 무스카트 술탄국의 권력은 복권되었지요.
(6) 오만의 현대 시대 (1960년대~오늘날)
약 1962년쯤 무스카트 술탄국은 정식 완전 독립국이 되었으나 내분과 봉기가 잇달아 이어졌어요. 1963년쯤부터 러시아의 후예인 소련의 패권이 전 지구를 뒤덮으면서 냉전기가 찾아왔고 그건 아라비아 반도 최남부인 오만에도 마찬가지였지요. 오만의 동부 도파르 지방에서 공산주의 계열 반군이 무장 봉기했으며, 이에 대응하여 1970년 7월 23일 자이드 빈 사이드 술탄은 아들 카부스 빈 사이드(Qaboos bin Said)에게 권력을 이양했어요. 소련의 공산주의가 지구를 지배하는걸 막기 위해 미국의 우방국을 자처한 영국은 오만의 카부스 술탄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사회, 군사 개혁을 단행하며 반군 진압에 나섰어요. 1960년대 후반에는 공산주의 반군이 도파르 산악지를 거의 장악했으나, 카부스 집권 후 실시된 이란군이 남진하여 오만으로 내려오는 지원 병법과 개발 정책으로 1976년 공산주의 반군은 완전히 토벌당했어요.
이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온 오만은 약 1970년대에 들어서야 석유, 천연 가스를 바탕으로 흥하기 시작했어요. 약 1970년쯤부터 탄생한 카부스 술탄의 시대는 석유 수출과 사회 개혁을 통해 오만을 급격히 근현대화한 시기였지요. 의료, 교육 제도를 확충하고 도로, 통신 인프라를 세워 오만을 “분단된 오아시스 지방”에서 부유한 현대 지역으로 탈바꿈시켰어요. 또한 오만은 이웃 지역들과 우호적인 외교를 펼치며 “우호적 제3자” 노선을 견지했어요. 약 2020년 1월 10일쯤에 카부스 술탄이 79세로 이승을 하직하면서 카부스 술탄의 조카 하이탐 빈 타릿끄(Haitham bin Tariq al-Said)가 새 술탄으로 옹립되었지요. 하이탐 술탄은 정사를 잘 돌보며 오만의 개혁, 발전을 이어가고 있어요. 약 2025년쯤부터 현재 오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가입하고 중동의 안정적 중견국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아주 머나먼 옛날인 고대 문명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는 긴 역사를 바탕으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유지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