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의 모로코 지역에 처음 정착해 살던 원주민들은 베르베르 부족이었어요. 베르베르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서 모로코와 이집트에 걸쳐서 살았지요. 그러다가 약 기원전 12~8세기쯤에 물 민족인 페니키아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의 해안인 모로코 지중해, 대서양 연안에 첫 상업 조계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어요. 그러다가 기원전 8세기쯤에 카르타고가 세워지면서 후에는 포에니아 세력이 모로코 해안으로 커져서 릭수스(Lixus), 모가도르(Mogador) 등 상업 마을들이 건설되었으며, 모로코는 약 1000년간 페니키아, 카르타고 문화권 아래에서 평화롭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약 기원전 42년쯤에 북아프리카 내륙의 베르베르 계통의 부족 중 하나였던 마우리족이 오늘날 북부 모로코 지역에 마우레타니아 왕국을 세웠어요. 그리고 페니키아 사람들은 소수였기에 인구수의 다수로 많았던 베르베르족에게 동화되어버렸지요. 어쨌든 그렇게 마우레타니아 왕국은 오랜 평화로 황금기로 번창했지요. 그렇게 시간은 기원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대시대가 되었지요.
(2) 모로코의 고대 시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흉노제국의 군대였습니다. 흉노제국은 몽골족, 튀르크의 직계 조상이기도 합니다. 흉노제국은 당시 아시아 최강국인 고대 중국 한나라와 전쟁해서 승리했고, 흉노제국의 일원인 훈족(Huns)은 유럽 최강국인 로마제국까지 침략해서 로마제국을 사실상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훈족(Huns)은 흉노제국의 후예로 여겨지며, 훈족의 기마병들은 4세기 후반인 375년에 유럽 다뉴브 북쪽의 동부 국경을 침략하면서 막강한 훈족의 침략으로 인해 공포에 사로 잡힌 여러 게르만족들은 서쪽으로 도망쳤으며, 이때 원래 폴란드 일대에서 로마 제국의 변경지대인 판노니아(Pannonia)로 이동해 정착해 살고 있었던 "반달족(Vandals)"들도 훈족의 침략을 피해서 대이동(Migration Period)을 겪게 되었으며 “AD 400년 동쪽에서의 훈족의 약탈(raids)이 많은 게르만족들을 로마 제국 영내로 이동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 중 반달족도 밀려서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게르만족의 대이동(혹은 게르만족의 이동)"입니다.
그렇게 훈족의 전방위적인 침략과 압박을 받은 반달족은 406년 겨울에 루아(Rhine) 강을 건너 갈리아(프랑스) 왕국으로 들어섰고, 이후 오늘날의 스페인이 자리잡고 있고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429년에 북아프리카로 쳐들어 가서 로마 속주들을 점령하였고, 431년에는 겐세릭(Genseric)이라는 장수가 히포를 먹고, 439년에는 카르타고를 함락시켜 그곳을 수도로 삼고 신흥 해양 세력인 "반달 왕국(Vandal Kingdom)"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후 약 534년경에 비잔틴의 지도자인 유스티니아누스가 반달 왕국을 토벌하여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을 회복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다만 비잔티움은 내륙 지역이나 베르베르 지역은 완전히 되찾지 못했고, 수도 주변과 주요 해변 마을 위주로 권력이 유지된 상태에 머물렀다는 한계점이 있었지요.
그렇게 평화도 잠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탄생하여 무섭게 세력을 팽창해 가던 이슬람 세력들은 다시 비잔틴의 영토들을 빼앗아 647부터 709년까지 북아프리카를 잠식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슬람교의 군대가 685년에 오늘날 모로코를 완전히 점령했고 우마이야 칼리프의 통치하에 북아프리카가 이슬람 세력에 합류하였습니다. 카르타고 지역은 695년~698년 사이 세 차례 침입 끝에 최종적으로 함락되었고, 이후 베르베르인의 저항과 페니키아 계통의 잔존국인 케자레아(Altava)에서 베르베르인의 여왕인 쿠하이나 여왕의 봉기 등이 발생했지만 703년쯤 봉기는 진압되었면서 저항은 패배하였고 모로코에서 로마인과 베르베르인의 최후 저항이 실패가 끝이 났어요.
그리고 약 709년쯤에 비잔틴 잔존세력(세우타 등)이 마지막으로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당하면서 모로코 전역에 대한 이슬람 지배가 시작되면서 베르베르인들은 점차 이슬람화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모로코 지역의 이슬람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여 그곳 기독교 왕국들과 전쟁해서 연전연승을 하였어요.
약 788년쯤에는 당시 이슬람 제국들 중 가장 강력했던 서아시아의 바그다드의 아바스 제국의 칼리프를 피해 달아난 하산 이븐 자이드의 아들 이드리스 1세가 모로코 북부에 정착하여 페니키아 유적이 있는 발리타를 수도로 삼고 베르베르 부족의 추장들을 통합하고 분열된 소왕국들을 하나로 모아 이드리스 왕조를 창건하였고, 약 808년쯤에는 이드리스 2세가 새로 건설된 마을 페스를 수도로 삼아 왕조 기반을 공고히 하였면서 경제력을 높였지요.
(3) 모로코의 중세 시대
약 8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페르시아계 파티마 왕조의 영토 확장과 우마이야 칼리프 정권(알안달루스)와의 갈등 속에서 모로코는 독립 베르베르 왕조들(이드리스, 마린, 와타시드 등)이 계속 교체되었어요. 그리고 약 1050년대쯤 무렵엔 알모라비드(알무라비툰) 왕조가 아프리카 남서부 사하라에서 경제적으로 부상하여 서마그레브와 알안달루스를 통합하여, 약 1070년쯤 무라비트 왕조가 마라케시를 건설하고 스페인부터 세네갈 강까지의 땅들을 죄다 먹어 방대한 해양 세력을 이뤘어요.
그러다가 약 1147년쯤에 봉기가 일어나 알모하드(알무와히드) 운동의 우두머리인 압둘 무민(Abd al-Mu’min)이 마라케시를 먹어 알모라비드를 전복했고, 알모하드 칼리프국을 만들었으나 약 1269년쯤에 마리니드 왕조의 아부 유수프 야꾸브(Abu Ya’qub Yusuf)라는 사람이 마라케시를 먹어 남은 알모하드 세력을 밀어내고, 마리니드 왕조가 오늘날 모로코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지요.
이후 13세기가 되면서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 패권국가로 군림하면서 당시 세계의 모든 이슬람 제국들 중 가장 강력했던 제국들인 아바스 제국, 호라즘 제국, 페르시아 제국, 셀주크 제국 등등등의 모든 이슬람 제국 등은 몽골제국의 식민지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유일한 칼리프는 북아프리카의 맘루크로 도망쳤고, 그렇게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는 서아시아,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로 이전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실상 지구상에서 살아 남은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북아프리카로 전락하자, 마리드 술탄들은 페스를 발전시켜 유일한 이슬람의 학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기가 계속되면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은 생존하기 위해 쥐죽은 듯이 숨죽이며 존재감을 최대한 낮추며 고립된 채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4) 모로코 VS 포르투갈 왕국&스페인 왕국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인들이 스페인인들을 잡는 장면
그렇게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기가 지나가고, 한참의 세기가 흘러 먼 미래가 되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5세기 이슬람 세력에게 800년간이나 지배를 당하며 약소국에 지나지 않던 스페인 왕국이 레꽁끼스따(Reconquista) 운동을 벌여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까지 약소국이었던 스페인 왕국을 필두로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가 바다에 배를 띄우는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의 군대는 약 1415년경에 지브롤터 맞은편의 모로코 북해안 세우타(Ceuta)를 먹었습니다. 이곳은 지중해, 대서양 진출의 중요한 상업적 교역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포르투갈 왕국의 왕자 엔히가 약 1437년 9월쯤에 약 6~8천명의 포르투갈 졸병들이 세우타와 인접한 마을인 탕헤르를 진출하려 시도했으나, 당시 마리니드 왕조의 모로코군에게 연전연패하여 실패하였어요. 포르투갈군은 격전 끝에 포로 3천여 명이 잡히며 결국 항복했으며, 포르투갈은 왕자 페르디난드를 인질로 넘겨주고 세우타 반환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해야했습니다. 모로코는 탕헤르 전투에 승리해 당시까지 유일한 이베리아 세력인 포르투갈의 북아프리카 진출을 차단하였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 1465년쯤에는 내분과 귀족들의 다툼 끝에 마리니드 왕조가 붕괴하였어요. 이어 와타스(Wattasid dynasty)라는 일본인 같은 이름의 군벌이 모로코의 권력을 차지했고 와타스 왕조가 건설되었지요.
약 1471년쯤에 포르투갈 왕국이 탕헤르를 재탈환하기 전까지 마리니드 왕조의 위상이 높아졌고, 한편 포르투갈 왕국에선 해리스 싸움 실패가 국내 정치에 충격을 안겨줘 이후 대서양 항로 개척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약 1510년쯤에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샤리프 계통의 무함마드 알-까임(Muhammad al-Qa’im)이 오늘날 모로코 남부의 수스 계곡 지방에서 우두머리로 선출되면서 사디(Saadi) 왕조를 세우고, 약 1525년쯤에는 그의 아들 알아라즈가 마라케시를 먹으며 왕조의 중책을 맡았어요. 사디 왕조의 모하메드 알샤이크(Mohammed ash-Sheikh) 술탄은 약 1536년쯤부터 와타스 왕조와 포르투갈 왕국을 상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약 1541년쯤에 사디군은 아가디르를 함락한 데 이어 포르투갈 왕국이 잠시 잠깐 진출해 있던 해안 요새 "사피(Safi)"와 "아즈무르(Azemmour)"를 압박하여 아가디르를 함락하자 겁에 질린 포르투갈 왕국은 사피와 아즈무르에서 즉각 도망쳤어요. 즉, 모로코는 사디 왕조의 진출을 통해 사피와 아즈무르를 먹음으로써 북대서양 연안의 요충지를 회복했어요. 이 승리로 사디 왕조는 경제적 기반을 높였으며, 그리고 사디 술탄인 모하메드 알샤이크의 계속된 진출로 1549년에는 "카사르세기르"과 1550년에는 "아실라(Arzila)"를 모로코가 먹게 되었어요. 전투 결과 모두 모로코의 승리로 기록되었고 약 1578년 8월 4일쯤에 와디 알 마카진 전투(삼왕의 전투)에서 사디의 술탄 압둘말릭(Abd al-Malik)이 데리고 있는 모로코군이 2만여명의 포르투갈 군대들을 완파하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포르투갈 국왕인 세바스티안 1세를 포함한 모든 포르투갈군들이 전멸했고, 전승 후 아흐마드 알 만수르(Ahmad al Mansur)가 새 술탄으로 옹립되어 모로코의 경제적 위상이 더 높아졌어요.
하지만 약 1603년쯤에 술탄인 알 만수르가 이승을 하직하자 옥좌를 두고 다툼이 발생했고, 약 1659년쯤에 마지막 사디의 술탄 암마드 알-압바스(Ahmad al-Abbas)가 살해되며 사디 왕조가 결국 망하게 되었지요. 물론 장기적으로 포르투갈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모로코에게 포르투갈 왕국은 1668년까지 세우타를 제외한 거점 대부분들을 모로코에게 할양해줘야 했어요.
사디 왕조의 술탄 압둘말릭(Abd al-Malik)과 압둘라흐만 무함마드(Abdullah Mohammed)를 지원한 사디국(투데이즈 모로코)은,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와 명예 왕자 토마스 스털클리(Thomas Stukley)가 데리고 있는 포르투갈 왕국&스페인 왕국&교황 합동군(약 2만 명)과 카사르케비르(Ksar-el-Kebir) 근교에서 격돌했어요. 모로코군(약 6만~10만, 그 중 상당수는 베르베르인)은 오랜 공방 끝에 혼자서 포르투갈 왕국&스페인 왕국&교황 합동군을 이기면서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왕국, 교황은 합동으로 합쳐도 모로코의 사디 왕조 하나 이기지 못하면서 체면을 매우 구기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싸움 결과 포르투갈군은 거의 다 죽었고(사망자 8천 1만명, 포로 10000명 이상), 세바스티앙 왕과 구원병 우두머리들도 다 같이 죽거나 인질이 되었어요. 명백한 모로코의 승리였어요. 이 승리로 술탄 압둘말릭과 차기 술탄이 된 아흐마드 알만수르는 모로코의 경제를 크게 회복했고, 사디 왕조는 항금기를 맞이했어요. 반면 포르투갈 왕국은 계속된 패배와 국왕의 죽음으로 정권 붕괴를 맞아 결국 약 1580년쯤에 스페인 왕국에 완전히 흡수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의 질서가 변동되었고,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서 독립적 경제 부국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어요.
그리고 약 1668년 쯤에 모로코 지역의 아틀라스 산맥 지방에서 샤리프 이븐 알리라는 사람이 새 왕조인 알라위(Alaouite) 왕조를 세우고 그의 아들인 라이 알아쉬리드(Moulay al-Rashid)라는 인물이 마라케시를 먹고 사디 왕조를 완전히 제압하면서 모로코 통합에 성공하였지. 이후 알라위 왕조의 모하메드 이브네 샤리프(Moulay Ismail) 술탄은 약 1610년쯤 이후 약 80년간 스페인 왕국 밑에 있던 북서부 항구 도시 "라라체(Larache)"를 약 1689년 7월쯤부터 압박해 들어갔어요. 당시 모로코군은 약 3만 병졸이었는데 그들이 공성전을 하여 11월 초에 라라체 성벽을 먹었어요. 약 1689년 11월 11일쯤에 스페인 방어병(약 2천명, 대포 200문)가 결국 모로코인들에게 항복함으로써 도시가 통째로 모로코로 넘어갔지요. 전투 결과는 모로코의 완전 승리였어요. 이 승리로 모로코는 대서양 연안의 요새를 가지게 되었지요. 전략적으로는 17세기 말 스페인에 맞선 알라위 왕조의 해안 지배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모로코는 이후 스페인과의 관계에서 보다 우월한 지위를 유지했어요. 장기적으로 이 전투는 모로코가 안보를 안정시키는 한편, 1691년 아실라 탈환 등 추가 공세로 이어져 알라위 왕조의 팽창적 입지를 확고히 했어요.
약 1672년쯤에 물라이 알아쉬리드가 이승을 뜨자 이스마일(Ismāʿīl ibn Sharīf)이 권력을 장악하여 옹립되었어요. 이때부터 약 55년간 이스마일 술탄 재위기에 중앙집권이 잘 이뤄졌지요. 그는 약 1673년쯤에 "아비드 앗북하리" 흑인병을 창설하여 상비병을 편성했어요. 그리고 약 1684년에는 영국으로부터 탕헤르를 다시 탈환하고, 약 1681년쯤에는 스페인의 땅인 알마무라(Al-Ma’mura)를 빼앗는 등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모로코의 무라드 이브네 샤리프 술탄은 약 1691년쯤에 스페인의 "아실라(Asilah)" 지방까지 먹었어요. 아실라는 약 1471년쯤 포르투갈이 진출한 뒤 약 1589년쯤에 잠깐 사디 왕조에 넘어갔으나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왕국이 약 1610년대쯤부터 영유했어요. 그러자 모로코의 이스마일 술탄은 약 1680년대쯤 초부터 준비한 병법을 통해 약 1691년쯤에 스페인의 아실라 성채를 함락시켰고 도시를 완전히 먹었어요. 이후 모로코와 스페인 관계에서는 모로코가 방어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어요. 이후 스페인 왕국은 멜리야 같은 일부 거점만 간신히 유지하게 되는 신세로 떨어졌고, 모로코는 서부 해안을 자주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의 바르바리 해적들은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로 쳐들어 가서 수많은 백인 여자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오스만 제국에 팔아 넘기면서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모로코는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아닌 곳이었고 오스만 제국도 모로코를 계속해서 침입했으나 결국 번번히 패배하면서 모로코를 먹는 데 실패하였어요.
모로코의 알라위 왕조의 술탄 모하메드 빈 압달라흐(Mohammed ben Abdallah)는 약 18세기 중반쯤까지도 포르투갈 왕국의 마지막 거점이던 마자간을 포위했어요. 약 1769년 2월쯤 모로코인들의 진출로 포르투갈군은 마자간을 결국 함락당하고 전 인구가 철수해야했지요. 즉, 1769년 마자간 포기로 모로코는 마지막 포르투갈 수비지역을 완전히 먹었고 포르투갈은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도망쳤어요.
(5) 모로코의 근대 시기
이렇듯 대항해시대까지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왕국과 전쟁해서 연전연승하면서 황금기를 누리던 모로코는 근대 시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처참히 망가졌어요.
약 1912년 3월 30일쯤 페스 조약에 따라 모로코는 정식으로 프랑스 왕국의 보호지가 되었어요. 리프 지방에서 모로코 베르베르인들에 의해 건설된 리프 공화국에 의해 약 1921년쯤에 리프군이 스페인 군대를 대패시켜 약 1만 3천명의 스페인 군대가 사망하는 패배를 안겼어요. 그러나 1926년 모로코와 프랑스 동맹군의 반격으로 리프 공화국은 진압되었지요. 약 1943년쯤엔 2차 대전 중 까사블랑까 회담이 열리며 미국, 영국, 프랑스 왕국의 지도자들이 모로코에서 만남으로써 모로코의 모하메드 5세가 참석한 가운데 연합국이 논의되었지요. 하지만 1953년쯤에 프랑스이 모하메드 5세 술탄을 퇴위시키고 코르시카, 마다가스카르로 유배 보내자 모로코 전국에서 독립운동이 생겨났어요.
프랑스는 약 1955년 11월쯤 프랑스는 심해진 봉기와 국제적 압력에 직면하여 모하메드 5세의 귀환을 허용하였으며 모로코 독립 협상이 시작되었고 약 1956년 3월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모로코는 모로코 왕국은 모하메드 5세 술탄에 의해 건설되었지요.
(6) 모로코의 오늘날
이후 모로코는 술탄 칭호를 "왕"으로 변경하였어요. 그리고 아랍의 봄 시위에 대응하여 모하메드 6세는 국민투표를 하여 정치, 헌법 개혁을 하였어요. 주요 개혁으로는 의회 승자당 총리 임명, 의회, 사법 권한 확대, 베르베르어(아마지그어) 공용어 지정을 포함하여 왕권 일부 축소 등이 포함되었지요.
모로코는 약 1984년쯤에 탈퇴했던 아프리카연합(AU)에 재가입함으로써 대아프리카 외교를 중시하였고, 걸프협력회의(GCC),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여 국제적 입지를 높여나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