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니의 역사

대항해시대까지 스페인을 800년간 식민 지배한 무어인의 후손들 모리타니

by 바다의 지정학


(1) 모리타니의 고대 시대



모리타니는 기원전 베르베르 부족들이 세운 "마우레타니아(Mauretania)"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마우레타니아를 조상님으로 잘 섬기고 있지요. 코끼리, 코뿔소, 하마들이 번식하던 이 모리타니 지역의 원주민들은 베르베르인, 남아프리카 흑인, 셈인의 혼혈이었던 "만데(Mande)" 계통의 "바푸르(Bafour)인"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해안의 어촌 사회인 이미라그엔(Imraguen)과 연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지요.


고대에는 7세기 후엽인 우마이야 칼리프 시대의 아랍 졸병들이 이곳으로 와서 토착 사회와 동화되었어요. 이로써 이슬람과 아랍어 문화가 점차 확산되었으며, 모리타니는 북아프리카 이슬람 사회와 연결되었지요.


7세기 후엽의 아랍 무슬림들은 우마이야 칼리프인의 병졸들로 모리타니 지역까지 진출했고, 많은 베르베르 부족이 말리 가오(Gao)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수세기 동안 사하라, 마그리브 전역의 유목민인 베르베르 부족과 아랍 부족이 혼합되며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을 바로 훗날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인들을 800년간 식민 통치하게 될 "무어인(Moor)"이라 부르게 됩니다. 약 11세기쯤에 현재의 모리타니, 서사하라 사막 일대의 유목민인 베르베르 부족들이 뭉쳐서 알모라비드 운동을 일으켰으며, 이 운동을 통해 사하라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대왕국인 알모라비드 왕국이 세워졌지요. 아랍측 기록에 따르면 초기 임금님인 아부 바쿠루는 모리타니 사막의 아준기(Azuggi, 이준기 아님..)를 근거지로 삼고 요수프 빈 타시핀이 다스리던 북부 지방을 통제했어요. 이들은 약 1076년쯤에 남하하여 가나 왕국을 정벌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를 부정하는 의견이 많아요. 약 13세기 쯤 이후에는 예멘 출생의 아랍 부족인 바누 마낄이 북아프리카로 진출해 산하산(Beni Hassan) 부족을 형성하였고, 약 1644~1674년쯤에는 차르 부바(Char Bouba) 전쟁에서 산하산이 승리하면서 이들의 후손들이 지방의 상층부가 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하산니야 방언 등의 아랍 문화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 오늘날 모리타니 무어인의 아랍어, 베르베르 혼합 정체성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지요.





(2) 모리타니의 중세 시대


11세기, 모리타니 사막 지대의 베르베르 연맹들이 알모라비드 정권으로 모여서 사하라 지역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했습니다. 알모라비드 왕국은 북아프리카를 넘어 스페인이 살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진출해 사하라에서 유럽까지 뻗친 거대 왕국을 세웠으며, 이로써 서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 지방이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였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이 시작된 12세기~13세기부터 알모라비드 왕국에 들어 내부 분열로 약화되었고, 13세기에는 알모하드 칼리프국이 대신하여 북아프리카인 마그리브, 스페인의 알안달루스를 지배했어요. 원래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였던 서아시아, 중동은 몽골제국이 정복하면서 13세기부터는 이슬람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는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로 옮겨졌으며, 이슬람 법제와 군사력이 사하라 일대의 사회를 규정했습니다.






(3) 무어인이 800년간 스페인을 식민 지배



ChatGPT Image 2025년 8월 2일 오전 10_39_07.png 무어인들을 스페인인들을 지배하는 장면을 Ai가 그렸다



약 711년쯤에 타리크 이븐 지야드라는 장수가 이끄는 약 7천명의 베르베르 유목민들인 무슬림 졸병들이 오늘날 영국의 스페인 식민지인 "지브롤터"에 상륙해 게르마 싸움에서 히스파니아의 로데릭 왕을 숙했고, 이듬해 대부분의 이베리아 반도를 정벌하여 "알안달루스(알-안달루스)"라 불렀습니다. 이후 코르도바를 수도가 삼고 약 756년쯤에는 압드 알-라흐만 1세가 코르도바 토후국을 세웠어요. 그 후 약 929년쯤에는 칼리프를 세워 코르도바 칼리프국을 세웠고, 약 1031년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중부와 남부를 다스렸어요. 칼리프국이 망한 뒤에는 소규모 토후국들이 난립했다가 약 1085년쯤에 기독교인들이 농민봉기를 하여 톨레도에서 무슬림들을 내쫓자 알모라비드 병졸들이 다시 나서서 이들을 때렸고 한때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를 다시 통합하여 다스리면서 일제강점기때 조선의 3.1 운동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그 의미는 중요했지만 결국 조선이 독립하는데는 실패했듯이 이 스페인의 독립운동 역시 스페인을 무어인들로부터 독립하는 데는 그렇게 실패로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어 12세기에 알모하드 칼리프국이 등장해 우세해졌고, 스페인의 독립을 위해 일어난 아라곤, 카스티야, 포르투갈 등의 기독교 독립군과의 독립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대표적 싸움으로는 1212년 나바스데로사 독립 싸움이 있으며, 결국 이슬람 세력은 남쪽으로 후퇴했습니다. 게다가 1200년대 후기부터 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이 본격화되면서 서아시아,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제국들이었던 아바스 제국, 호라즘 제국들이 연달아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고, 몽골제국이 스페인을 800년간 식민 지배한 우마이야 왕조 따위보다 훨씬 더 군사력이 막강했던 아바스 제국을 정복하면서 이슬람 세계는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니다. 1238년 이후 스페인의 남부인 그라나다 에미레이트를 지배한 "나스르 왕조(Nasrid dynasty)"가 유일한 무슬림 국가로 남았고, 1492년 1월 2일 이베리아 반도 남부를 지배하던 마지막 무슬림 왕조였던 그라나다 토호국의 마지막 술탄이었던 "무함마드 12세(Muhammad XII, 아랍어: **Abū ʿAbd Allāh Muḥammad al‑thānī ʿashar, 스페인어: 보아브딜 Boabdil)"을 몰아내면서 결국 무어인의 잔혹한 800년 스페인 지배가 종결되었고 이로써 스페인은 무어인의 식민지에서 독립되는 기쁨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무어인 지배는 위에서 언급한 칼리프국, 토호국 등 단계별로 변화했으며, 신분에 따른 경제와 사회 구조는 아랍 무슬림, 베르베르 부족, 개종자 등으로 다층적 구조를 이뤘습니다. 무으로는 기독교 독립군과 잦은 충돌이 있었고, 정벌 때 행정, 경제, 무(武)관 집권층은 소수의 무슬림이었으나 거센 이슬람화 과정을 거쳐 대다수 인구가 이슬람교도로 편입되었습니다. "딤미 제도(dhimmi)"에 따라 인두세 징수만 내면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보호된 신분으로 존중받았으며, 많은 지방에서 교회를 유지하거나 관료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슬람 사회의 특징인데 이슬람교는 포용적이라 피부 색깔이나 종교, 사상으로 차별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흑인이라거나 혹은 기독교인이라고 크게 차별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 대신에 조선시대처럼 신분제가 엄격했다 보니 천한 신분에 대한 차별이나 직업에 따른 차별과 계급에서도 상, 하 구분은 심하긴 했지만 어쨌든 조세(租稅)만 제때 잘 내면 대부분의 생활은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코르도바 칼리프국 시절에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비무슬림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일부 기독교인은 고위 관리로 부임하기도 했어요. 무어인 정치가 가져온 이익으로는 본래 미개했던 스페인인들의 농업, 상업 발달과 도시 문명의 융성, 그리고 각 종교 공동체 간 문화교류(공존의 문화, convivencia) 등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대시대때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 모든 면에서 압승했던 백제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일본의 문명이 고도로 순식간에 발전되었고 근세기인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르러서는 조선의 군사력을 추월한 사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기록에는 지역에 따라 차별과 박해도 있다고 언급되며, 세습 지위와 마찬가지로 비무슬림에게도 조세(지즈야), 인두세와 같은 부담을 지웠는데 이 액수가 꽤 크며, 복종을 요구하는 제한이 가해졌다고 해요. 무어 지도자들은 개종을 장려함으로써 사회 이동성을 열어 주었긴 했어요. 예를 들면 개종하면 법적으로 노예 신분 해방 등 혜택 부여하는 등이요.


무어인 지배때 알안달루스는 다종교, 다문화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어요. "공존(Convivencia)"로 불리는 이 시기에는 동양의 무슬림, 유대인, 서양의 기독교인이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며 상호 문화 교류를 이뤄내 독자적이고 번영한 문명을 만들어냈지요. 농학도 발달했구요. 물론 독립운동도 꽤나 많았어요. 예를 들어 무슬림 지배 초기부터 남부 지방 일부 비무슬림 및 이슬람 개종자 사이에서 소규모 봉기가 기록되었고, 11세기 베르베르 반란으로 일부 알안달루스 지역이 분열되기도 했어요. 또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왕국들은 레콩키스타(재탈환 운동)으로 봉기하여 북부에서 남하했지만, 당시 오합지졸이었던 기독교 왕국들은 알모라비드 군대가 끼어들면서 처참히 패배하여 독립은 실패로 끝이 났지요.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 무슬림 왕조가 그라나다 에미레이트만 지배했고, 약 1492년쯤에 기독교 왕조인 트라스타마라 왕조의 공주 이사벨 1세의 결혼으로 탄생한 카스티야, 아라곤 연합 즉.. 스페인의 레꽁끼스따가 마침내 성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를 800년간이나 잔혹하게 식민 지배했던 무슬림 시대는 막을 내렸어요.





(4) 모리타니의 근대 시대


19세기 후반까지 모리타니는 다른 유럽 열강의 관심권 밖에 머물렀으나,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조공국들을 연결하려는 경제적 이유로 약 20세기쯤에 서아프리카 프랑스의에 조공국으로 편입되었지요. 다만, 프랑스는 모리타니에 본격적으로 직접 통치보다는 종교 지도자와 전통적 토호를 유혹해 간접 통치를 하는 것으로 했어요. 이런 정책으로 프랑스는 이슬람 사회 지도자들과 협력하는 데 의존했고 경제 개발에는 큰 공을 들이지 않았어요.





(5) 모리타니의 오늘날


2차 대전 뒤 서아프리카의 탈속국화 물결 속에서, 모리타니는 20세기 중엽인 1960년 11월 28일 독립을 맞이했어요. 당시 독립을 맞이했던 모리타니는 경제적 개발 수준이 매우 미약한 상태였다. 초대 대통령 모크타르 울드 다다(Moktar Ould Daddah)는 1964년 단당제를 도입했으나, 1978년 무혈 봉기로 축출되었어요. 이후 오랫동안 권위주의 중심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고 2009년 모하메드 울드 압델아지즈(Mohamed Ould Abdel Aziz)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2019년 무함마드 울드 가자우아니(Mohamed Ould Ghazouani)가 평화적으로 권력 이양을 받았어요.


그러나 오늘날의 모리타니 사회는 여전히 아랍 무슬림, 베르베르 계통인 무슬림과 흑인 아프리카계 간의 민족 갈등, 노예제의 잔존 문제 등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어요. 오늘날 모리타니는 이슬람 공화국으로서 아랍어, 이슬람 전통을 중시하는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20세기 중엽 이후에는 계속된 경제적 변동 속에서도 비교적 아랍 문화권과의 연계를 유지해왔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튀니지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