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역사

남유럽에 쳐들어가서 스페인, 포르투갈인들을 노예로 납치하여 팔았던 알제리

by 바다의 지정학



(1) 알제리의 기원전



약 기원전 2세기쯤 무렵, 오늘날의 알제리 지방은 베르베르 부족의 6대 왕인 "마시니사"가 평화롭게 다스리던 누미디아 왕국에 속했어요. 마시니사는 로마 공화국과 제휴를 맺어 알제리 지방을 압박하던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가 세운 카르타고 영토를 견제했어요. 기원전 146년에 제3차 포에니 싸움에서 카르타고가 망하면서 그 지방을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로 편입시켰어요. 이후에도 누미디아 왕국은 로마와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했으나,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란 승리 후 동부 누미디아 지방(오늘날의 알제리 동쪽)이 로마의 조공국으로 완전히 합병되었지요. 이 시기의 알제리 지방은 로마풍이 유행하여 히포, 알제, 티파사 등의 주요 마을들에 로마 기둥과 길이 만들어졌었고, 라틴어와 기독교가 전파되었어요.




(2) 알제리의 고대 시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흉노제국의 군대였습니다. 흉노제국은 몽골족, 튀르크의 직계 조상이기도 합니다. 흉노제국은 당시 아시아 최강국인 고대 중국 한나라와 전쟁해서 승리했고, 흉노제국의 일원인 훈족(Huns)은 유럽 최강국인 로마제국까지 침략해서 로마제국을 사실상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훈족(Huns)은 흉노제국의 후예로 여겨지며, 훈족의 기마병들은 4세기 후반인 375년에 유럽 다뉴브 북쪽의 동부 국경을 침략하면서 막강한 훈족의 침략으로 인해 공포에 사로 잡힌 여러 게르만족들은 서쪽으로 도망쳤으며, 이때 원래 폴란드 일대에서 로마 제국의 변경지대인 판노니아(Pannonia)로 이동해 정착해 살고 있었던 "반달족(Vandals)"들도 훈족의 침략을 피해서 대이동(Migration Period)을 겪게 되었으며 “AD 400년 동쪽에서의 훈족의 약탈(raids)이 많은 게르만족들을 로마 제국 영내로 이동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 중 반달족도 밀려서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게르만족의 대이동(혹은 게르만족의 이동)"입니다.


그렇게 훈족의 전방위적인 침략과 압박을 받은 반달족은 406년 겨울에 루아(Rhine) 강을 건너 갈리아(프랑스) 왕국으로 들어섰고, 이후 오늘날의 스페인이 자리잡고 있고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429년에 북아프리카로 쳐들어 가서 로마 속주들을 점령하였고, 431년에는 겐세릭(Genseric)이라는 장수가 히포를 먹고, 439년에는 카르타고를 함락시켜 그곳을 수도로 삼고 신흥 해양 세력인 "반달 왕국(Vandal Kingdom)"을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5세기에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략하면서 알제리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고 후에 6세기에는 비잔틴 제국이 잠깐 알제리 지역을 회복했다가 다시 빼앗겼어요.


그러던 중 7세기 중반쯤 들어서 무슬림들이 만든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병들이 북아프리카로 들어 와서 터를 잡고 오늘날 알제리 지역을 포함한 마그레브 전역을 먹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우레시(Aurès) 산악에서 베르베르인이 세운 왕국 중 하나인 아우레스 왕국의 여왕에서 본명은 "디히아"라는 이름의 "알 까히나(Kahena)"라는 여걸이자, 여(女)예언자이자, 여(女)자 독립운동가가 튀어나와 독립 운동을 687년부터 693년까지 벌였어요. 그녀는 무슬림의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지방) 정벌때 비록 다른 왕국이지만 같은 민족인 알따바 왕국의 왕인 꾸사일라의 뒤를 이어 베르베르인의 독립 운동가였으며 초반에는 꽤 잘해서 우마이야 왕조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우마이야 왕조는 많은 인구수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로 밀어붙이자 결국엔 알 까히나 여왕은 청야전술을 쓰면서 민심을 잃어 결국 703년 싸움에서 죽고 말았지요. 그리고 그녀의 머리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인 아브드 알 말리크에게 보내졌어요.







(3) 알제리의 중세 시대



제목 없음.jpg 2023년에 개봉한 대만(타이완), 알제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합작 영화 "마지막 여왕"


이렇게 결국 패배하면서 이 알제리 지방은 무슬림 세력 지배가 시작되었어요. 8~9세기에 접어들며 아글라비드(Aghlabid)와 파티마드(Fatimid) 등의 왕조가 교체로 등장했으나, 이 시기 알제리 연안 주요 마을들은 무슬림 사회와 활발히 교류하며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했지요. 11세기에 들어와서는 북아프리카를 통합한 모로코계 베르베르 왕조인 알모라비드(Almoravid)와 뒤를 이은 알모하드(Almohad)가 이베리아 반도까지 차례로 지배했어요.


특히 무와히드 칼리프국(혹은 알모하드 왕조)는 1151년에 현재 북아프리카를 침입하여 알제리 북부 일대를 포함한 중부 마그레브를 정벌하여 스페인까지 진출하여 알안달루스 지방까지 상당 부분을 먹었습니다.


13세기에는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로 인해서 서아시아, 중동의 모든 이슬람 제국들이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세계의 모든 이슬람 제국들 중 가장 강력한 아바스 제국, 호라즘 제국이 몽골제국의 식민지들로 전락한 것은 이슬람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나 아바스 제국과 호라즘 제국의 칼리프들은 이슬람 세계의 교황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몽골제국이 아바스 제국, 호라즘 제국을 정복, 학살하면서 칼리프들을 대학살하면서 이슬람 세계는 완전히 재편되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패권국 몽골제국의 세계 지배로 인해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는 서아시아,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로 옮겨졌습니다.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의 영향은 북아프리카에도 강하게 끼쳤는데, 특히 북아프리카의 알모하드 제국의 분열과 1236년 티므센에 "자이얀 왕조(Zayyanid dynasty)"의 성립이 그것이었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북아프리카로 이동하자, 자이얀 왕조는 마그레브 지역에서 알제르까지 서부 지중해 연안으로 고립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셀주크 제국, 룸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초기에서 해방된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북아프리카 정복 이전까지 자이얀 왕조가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역에서 숨 죽이며 숨어서 조용히 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알제리의 근세 시대



중세시대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침략하여 정복하였고 당시 몽골제국은 아나톨리아 반도의 룸 셀주크 제국을 정복하며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룸 셀주크 제국의 한 베이(부족장)였던 오스만 가지는 탈출하여 오스만 제국을 세우지만 얼마 안 가 몽골제국이 오스만 제국까지 정복하여 오스만 제국의 다시금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은 제국 내의 수많은 장군, 군인들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적 내전들을 거듭하면서 결국 전세계적으로 분열되었고 오스만 제국은 그렇게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흘러 먼 훗날 1516년, 오스만 제국의 노예 해적 출신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키운 "오루츠 레이스(Aruj Barbarossa)"가 알제르의 통치자였던 "셀림 알투미(Selim al-Toumi)"를 급습하여 살해하고 알제르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 직후, 오루츠는 동생인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Barbaros Hayreddin Paşa)"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외항인 알제르를 중심으로 거대한 해적 국가를 세웠어요.


오루츠의 알제리 통치 기간, 스페인 왕국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무슬림 해적들을 막기 위해 북아프리카 연안 주요 항구에 요새를 건설하여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며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어요. 마치 명나라의 말기 때 북로남왜처럼 이 시기 스페인 왕국도 자국의 해안을 계속해서 노략질하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의 바르바리 해적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어요. 하지만 스페인 왕국의 사정은 명나라보다 훨씬 더 심각했는데, 일본 왜구들의 경우는 지방에 몰락한 영주들이 왜구들을 군사적, 기술적, 경제적으로 계속해서 지원하면서 결탁했기에 에도 막부군이 왜구의 소굴들을 소탕하면 잠시나마 안정이 되기도 했었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해양 세력은 왜구가 아니라 명나라 해적단들이었기에 왜구는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 명나라 해적단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던 반면에,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들의 경우는 아예 영주 수준이 아니라 오늘날 소말리아처럼 돈을 벌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백인 노예 무역에 뛰어들어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영국, 프랑스를 주요 먹잇감으로 삼아서 아리따운 백인 처녀들을 납치해서 오스만 제국에 팔아치우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스케일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고 근대시대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전혀 토벌이 불가능했습니다.


오루츠는 1529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스페인군들을 숙청하여 튀니스 석권을 도왔고, 1533년에는 오스만 제국 수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부임되는 등 오스만 왕조의 북아프리카 전략에 중심 인물로 급부상했어요. 1541년에는 스페인의 국왕이면서 신성로마의 군주이기도 한 까를 5세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알제르 상륙을 시도했으나, 마치 송나라 해군 함대들-고려의 해군 함대들이 일본 원정때 카미카제를 만났듯이 늦가을 혹독한 태풍과 폭풍우가 작렬하며 스페인 함대들이 전부 다 침몰하고 난파하여 스페인군의 병력 대부분이 다 죽거나 퇴각하는 참패를 겪었습니다. 이로써 오스만 돌궐령 알제르는 사실상 독자적인 해양 세력으로 자리잡았고, 스페인 왕국의 까를 5세의 대규모 원정 실패는 유럽 열강에 큰 충격과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런 오루츠의 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2023년에 개봉한 대만(타이완), 알제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합작품 영화 "마지막 여왕(El akhira, La Dernière Reine, 2022)"이에요.


이 영화는 1516년 알제르를 둘러싼 오스만 돌궐족vs스페인 왕국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영화 속 주인공 자파이라(Zaphira, 한글판 "자이나다")는 약 1510년대쯤 알제르의 위대한 여왕으로 묘사되지만, 학자들은 그녀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고 있어요. 실제 기록에서는 자파이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18세기 중엽인 1725년에 프랑스 인물 라지에가 쓴 전설적 이야기에서 처음 얼굴을 내보이기 때문이지요. 그에 따르면 약 1516년 오루츠 형제는 알제르 통치자 셀림 알투미를 살해하고 마을을 장악한 뒤, 그의 미망인 자파이라를 부인으로 맞이하려 했어요. 하지만 자파이라는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목숨을 끊었으며 이후 알제르의 마지막 여왕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고 해요.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창작으로 보고 있어요.


영화가 묘사하는 전체적 배경은 실제로는 오스만 돌궐과 스페인 왕국 간의 충돌이었어요. 오루츠 형제의 1516년 알제르 장악은 북아프리카 요새인 오란 등을 무너뜨리기 위한 초석이었고 이후 스페인 왕국은 알제르를 되돌려 받고자 약 1541년쯤에 까를 5세의 대규모 인원수를 동원한 상륙 병법을 감행했으나, 악천후로 스페인의 배들이 침몰하며 스페인 왕국은 완패했지요. 이러한 오스만 제국의 수군과 스페인 왕국 배의 대립들이 16세기 알제 해안을 무대로 벌어진 실제 역사적 싸움들이라고 해요.

여하튼 이후에도 북아프리카판 왜구들이라 할 수 있는 알제르의 바르바리 해적들은 특히 서유럽, 남유럽 해안에서 활발한 해적 활동을 펼치며 백인 노예들을 잡아다 팔아치웠습니다. 1553년에는 알제르 함대 사령관인 "살라흐 레이스(صالح ريس)"가 스페인의 "페뇽데벨레스데라고메라 섬"의 앞바다인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에서 포르투갈 왕국의 최정예 함대들을 죄다 침몰시키면서 그 선원들도 인질로 사로 잡는 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617년에는 800명의 알제리 수적들이 8척의 선박들을 데리고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을 급습하여 마을을 불지르고 주민의 약 1,200명들을 노예로 사로 잡는 등 바르바리 해적의 활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범해졌어요.


18세기에 들어와 스페인 왕국과의 갈등이 격화되었는데 1707년 데이(총독) 무함마드 벡타쉬는 스페인 왕위 계승 싸움의 혼란을 틈타 장수 "무스타파 부슈라겜(Mustapha Bouchelaghem)"에게 지시하여 오란을 석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란은 16세기에 스페인 왕국이 함락했으나 1707년 알제리군이 다시 먹었어요. 알제르는 1775년에도 장수 알레한드로 오라이예가 이끄는 스페인 왕국, 토스카나 인해전술 합종군의 대규모 인해전술 상륙과 전쟁해서 승리했어요. 결국 스페인 왕국은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전쟁 패배를 인정했지요. 그 결과 알제르는 약 18세기 후엽쯤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지중해 서부 바르바리 해적 국가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고 바르바리 수적들은 끝없이 스페인인, 포르투갈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으면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의 고통은 계속되었어요.






(5) 알제리의 근대 시대



이렇게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같은 남유럽을 공격하여 스페인인들, 포르투갈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만들어서 오스만 제국에 팔아넘기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며 마치 미국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듯이 스페인인, 포르투갈인들을 노예로 삼으며 황금기를 누렸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의 북아프리카 나라들의 종말은 근대 시대에 갑자기 찾아왔어요. 바로 "산업혁명" 때문이지요.


번번히 알제리의 바르바리 해적들과 해상전에서 싸워서 연전연패만 거듭하던 남유럽의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 서유럽 왕국들은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시작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미 망해서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에게 설욕을 되갚는 건 불가능했지만요.


약 1830년 7월 5일쯤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인 쪽은 프랑스였어요. 프랑스도 오랫동안 알제리 수적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왔던 터라 더이상 참고 있을 순 없었기에 오랜 수적들의 근거지였던 알제르에 상륙하여 망조가 든 오스만 왕조 통치를 종식시켰어요. 프랑스는 1834년 알제르를 직접 조공국으로 편입하고 이후 유럽인들의 이민을 장려하여 지중해 연안에 대규모 정착지를 만들었어요. 약 1848년쯤에 프랑스는 마치 고대 중국 당나라의 안동도호부처럼 알제르 전역을 프랑스의 행정구역인 데파르트망으로 재편하여 편입하여 통치했습니다. 이 통치 기간 동안 알제르인들은 여러 차례 봉기했지만 산업혁명과 근대화로 완전히 달라진 프랑스인들에 의해 진압되었죠. 약 20세기쯤 들어서는 알제리 민족주의 운동이 분출되어 약 1954년 11월쯤부터 8년간 치열한 독립 운동을 벌였고 결국 약 1962년 7월 5일쯤에 알제리는 프랑스를 몰아내고 독립을 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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