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스페인 왕국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동양의 오스만 투르크(왼쪽 붉은옷)와 몽골계 크림 칸국(말탄 기병)의 모습을 Ai로 그렸다.
일반적으로 "17세기"라고 한다면 기존의 동양 초강대국들(대청제국, 오스만 투르크)이 가지고 있던 국제적 패권이 점차 저물어 가고, 그 틈을 노린 서양의 신흥 국가들이 꿈틀 거리면서 성장하던 격동기였다. 물론 17세기 후반까지 대청제국, 오스만 투르크 같은 동양의 초강대국들은 여전히 서구열강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오늘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몽골계 크림 칸국의 군대가 17세기까지 스페인 왕국의 파이크 앤 샷, 테르시오 전열 보병보다 군사적으로 더 강력했다고 평가되는 이유와, 실제로 그들이 스페인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구체적인 사례를 학술적 근거에 기반해 길고 세세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
(ㄱ) 오스만 제국, 몽골계 크림 칸국군이 스페인 왕국 테르시오 전열보병보다 강했다.
16세기~17세기 초반까지 남유럽에서는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국의 "테르시오 전열보병(파이크 앤 샷)"이 국방 혁명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동부 지중해와 흑해 일대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그 동맹세력인 몽골계인 크림 칸국군이 압도적인 세력을 유지했다. 오스만 투르크, 크림 칸국군이 스페인의 테르시오 전열보병을 능가한 이유와, 실제 전투에서 이들이 승리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중세시대까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 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룸 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베이(부족장)인 오스만 가지가 도망쳐서 건국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군의 특징은 정예 화기보병인 "예니체리"의 존재가 가장 강력하다. 예니체리는 오스만 투르크군의 중핵으로, 15세기부터 데브쉬르메로 모집된 정예 상비보병이다. 이들은 16세기 들어 일종의 조총인 "머스킷"을 대규모로 운용하여 근대식에 가까운 보병체계를 운용했다.
실제로 셀림 1세 치하의 16세기에 터진 1514년 카르디졸 전투 등에서 조총을 장비한 예니체리가 맘루크군을 격파하기도 했고,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대포와 조총으로 중무장한 예니체리가 동유럽의 헝가리 중장기병을 제압하기도 했다. 즉, 오스만 투르크는 총기와 대포를 일찍 도입하여 중무장 보병과 포병 전력을 스페인보다 일찍 강화했다.
또 오스만 투르크군은 "시파히(Sipahi) 중장기병"과 "악인키(Akinci) 경장기병"을 보유해 기동력이 뛰어났다. 특히 크림 칸국군은 강력한 몽골계 타타르 경장기병의 제국으로, 광활한 초원지대를 활용한 기습, 기동전이 매우 막강했다. 평지에서는 스페인의 밀집보병 전략이 굉장히 비효율적이었고, 크림 칸국의 몽골계 타타르 기병은 보병 대형을 우회하여 측면을 공격하거나 후방 보급로를 파괴했다. 폴란드 장수 얀 타르노프스키도 “오스만 투르크군의 동맹군인 몽골계 크림 칸국군은 기병이 엄청나게 뛰어났던 반면 기독교군은 기병은 약하지만 보병이 우수하다”고 기록해, 크림 칸국의 기병 우위와 서구의 보병 우위를 지적했다.
오스만 돌궐족은 한때 서구에서 스페인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했던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 만큼 강력한 야시체 메흐메트 대포처럼 대구경 화기들을 제작해 공성전에도 능했고, 대규모 포병으로 성벽을 돌파했다. 또한 총기, 포병을 결합한 전략적 효율성은 서구 열강도 두손 두발을 다 든 바 있다. 한편 17세기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중화기를 의존한 오스만 제국식 대포의 취약성이 지적되었으나, 16세기까지는 대포, 머스킷을 앞세운 무력이 서구와의 여러 전장에서 우위를 발휘하며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한참동안이나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게 가능했다.
또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많은 인구와 부유한 재정, 동맹군인 몽골계 크림 칸국의 기병대 덕분에 대규모 보병, 기병 출격이 가능했다. 또한 동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등 전선 대부분이 평지로 전격전과 공성전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지형이었기에 몽골계 크림 칸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 전선들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전쟁에서 계속 연전연승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듯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사 동맹인 몽골계 크림 칸국은 주요 전력이 몽골계 타타르 경장기병대였기에 이들은 빠른 기동력과 전격전으로 스페인군들을 죽이고 정형화된 보병대형을 교란했으며, 특히 러시아, 동유럽 전선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1637년에 일으킨 글루시노 전투"에서 몽골계 크림 타타르 기마대가 러시아 러시아 군대를 급습하여 멸절시켰다. 이처럼 몽골계 크림 타타르 군대의 "초원전술(경기병 기동전)"은 평지에서 야전, 전격전을 할 경우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형 전열보병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처럼 오스만 돌궐은 총기와 중무장 보병뿐만 아니라 동맹군인 몽골계 크림 칸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전선들마다 항상 따라다니면서 전쟁에 참전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기 때문에 오스만 투르크는 이런 동맹군인 몽골계 크림 칸국 덕분에 대규모 기병의 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스만 돌궐군은 필요시 대형과 소규모 기동대를 조합했다. 예니체리가 머스킷 사격으로 적을 교란하면, 동맹군인 크림 칸국의 기병이 기회를 잡아 돌격하는 식이다. 반면에 전열 보병인 스페인의 테르시오는 일제사격 후 대열 재편성에 시간이 매우 많이 필요했기에 대열 재편성때 사망하거나 스페인군들이 매우 많다. 현실은 잔혹한 법이라서 세일러문 같은 마법소녀물처럼 변신할 때 적들이 가만히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스만 투르크는 15~16세기에 구 대포를 적극 개발해 대성곽 공성에도 능했다. 1411년에 카르시야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등에서 혁신적 대포를 사용했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고 16세기 중반까지도 화기 사용의 교과서를 써왔다. 테르시오는 방어전에 특화되었지만 대규모 포병 운용이나 빠른 공성에는 오스만이 더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스페인 왕국은 신대륙 개척, 네덜란드 봉기, 갈리폴리 해전 등 병력을 분산 투입하느라 자원이 분산되었기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하는 게 불가능했다. 약 1570년대쯤에 이르러 네덜란드 봉기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으로 스페인 왕국은 국고가 결국 탕진되어 1575년에 파산 선언까지 하면서 사실상 스페인 왕국의 망조가 시작된다. 반면에 오스만 돌궐 제국과 몽골계 크림 칸국은 넓은 야전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ㄴ)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 방진의 치명적인 약점들
물론 확실히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는 유럽 한정이지만 약 17세기까지는 유럽 최고의 전열보병이었다. 물론 17세기까지는 동양의 제국들이 서구보다 군사력이 강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는 비록 유럽 한정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보병으로서 강하긴 했다.
약 1500년대~1600년대 초까지 카를로스 1세&펠리페 2세 등이 여러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게 한 주역으로 머스킷병과 파이크병을 결합한 느리지만 대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테르시오 방진"은 비교적 기동력이 느린 "중갑 기병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초원이나 사막지에서의 기동전에는 취약했으므로 빠른 스피드를 주무기로 하는 궁기병을 만났을 경우 테르시오 방진이 무참하게 깨찌고 전멸당할 위험이 컸다.
스페인 왕국이 만든 "테르시오 방진"의 대표적이고 치명적인 약점들은 아래와 같다.
기동력 부족: 거대하고 밀집된 대형은 "방어"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기동성이 매우 떨어져 복잡한 지형이나 빠른 전술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화력의 한계: 당시 총기는 활보다 발사 속도가 느리고 재장전이 복잡했다. 그렇기에 임진왜란 때도 일본군의 총보다 조선군의 활이 연사력이나 파괴력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총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전선을 지배하게 된 것은 "미국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였고 그 이전에는 "총"의 화력이 활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집중적인 화력 투사가 어려웠고, 총병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장창병과의 연계가 비효율적으로 변했다. 특히 이 당시 총은 연기가 많이 나와 전열로 집중적으로 화력을 투사할 경우 연기가 자욱해 져서 상대방의 시야가 갑자기 가려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이는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으나 엇비슷한 사례로 영화 "남한산성"의 예시를 들 수 있는데, 청 제국의 팔기군이 돌격해 오자 조선군 보병들이 아무리 화력을 투사했어도 무용지물인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전략 변화에 대한 대응력 부족: 약 17세기 중엽쯤에 스웨덴 왕국의 구스타브 2세인 아돌프는 기존의 테르시오보다 경량화되고 총병의 비율을 높여 화력을 극대화한 새로운 전략을 선보였는데 스페인 왕국은 이러한 새로운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스페인의 테르시오 전열보병들이 패배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 방진은 상대방이 전략을 조금만 바꿔도 금새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그렇게 결국 17세기 중엽쯤인 1643년에 스페인 테르시오 전열보병은 로크루아 전투에서 프랑스 왕국에게 완전히 대패하면서, 유럽 내에서의 테르시오의 위상은 완전히 약해졌고 유럽 내에서의 주 전략은 약해빠진 테르시오 방진 따위가 아닌, "선형 전략"으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