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이전까지는 지구는 아시아 제국들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경제적으로 성장한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을 필두로 후발주자들인 영국,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끊임없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19세기에 전통적으로 지구를 지배했던 동양의 제국들을 서구열강들이 역전, 추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즉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시대는 아직까지 아시아의 제국들이 지구의 패권을 가지고 있던 "아시아 우위 시대"였고, 서구 왕국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추월하려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과도기적 단계"였어요.
스페인 왕국은 멕시꼬 시티와 리마~필리핀의 마닐라에 이르기까지 겉으로 열대 섬들을 속지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왕국은 "점(Point)"과 "선(Line)"으로 이뤄진 얕은 교역 해양 왕국에 가까웠습니다.
스페인 국왕이 부왕으로 하여금 다스린 곳은 주요 해변의 일부 항구 마을(까르따헤나, 마닐라, 베라끄루쓰), 행정 중심촌(리마, 멕시꼬 시티), 그리고 이들을 잇는 교역지(까미노 레알) 및 핵심 자원 산지(뽀또시 은광)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이 "점"과 "선"을 벗어난 큰 "면(Area)".. 즉 남아메리카의 열대 정글, 일부 산악지대들은 저항 집단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들이라 사실상 스페인 왕국이 공략에 실패한 지역이었습니다.
Part 1) 스페인 왕국의 필리핀 공략 실패 (The Limits of the Philippine Conquest)
스페인 왕국은 16세기 중엽쯤 약 1565년쯤에 미겔 로뻬스 데 레가스삐(Miguel López de Legazpi)라는 사람이 필리핀 정벌을 가까스로 하였다. 스페인 왕국은 필리핀 원주민 남녀들과의 전쟁에서 7번이나 패배한 끝에 8번 만의 끈질긴 시도 끝에 1571년 정벌에 성공하여 마닐라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스페인 왕국은 루손(Luzon) 섬과 비사야(Visayas) 섬의 해변가 저지대에 들어갔는데 이 열대 지방에는 "빠랑까이(Barangay)"라는 작은 공동체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어, 스페인 왕국의 가톨릭 개종 사업이 효과적으로 작용했습니다
.. 라는게 우리가 알고 있는 얘기이지만 그러나 이 얘기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립니다. 스페인 왕국이 7번의 패배 끝에 필리핀을 먹은 건 사실이지만 필리핀 "전역"을 공략하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에요. 스페인 왕국이 333년(1565~1898) 동안 다스리고도 끝내 복속시키지 못한 두 개의 큰 축이 존재했기 때문이에요.
Part 2) 스페인 왕국의 공략 실패 사례 (1) "술루 술탄국 (The Sulu Sultanate)"
스페인 왕국이 필리핀에서 마주친 힘든 저항 집단은 바로 남부 민다나오(Mindanao) 섬과 술루(Sulu) 섬의 무슬림 집단, 즉 "모로(Moro)"였어요. 모로는 스페인 사람들이 무어인(Moor)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했지요. 스페인 사람들은 무슬림들하면 치를 떨었어요. 왜냐면 이슬람 세력들이 고대시대에 아랍과 베르베르족이 스페인이 있던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711년~근세시대인 1492년까지 800년 동안이나 스페인을 식민 지배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웬걸? 스페인을 800년 동안이나 식민 지배했던 그 징글징글한 무슬림들이 이곳 동남아시아.. 그것도 저 고립된 열대 필리핀 섬까지 장악하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물론 필리핀 원주민들은 여자들도 젖가슴을 노출하고 다녔는데 이는 더운 열대 기후 때문이었어요.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인, 아즈텍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은 아예 알몸으로 생활했지만요.(현재까지도) 하지만 문명적으로는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이 훨씬 더 발달했지만 "무기"면에서는 필리핀 원주민들이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훨씬 더 강했지요.
석조 건물들을 짓고 의학 기술이 서구 유럽보다 뛰어날 정도로 정교했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이었으나 이상하게 무기만큼은 청동기 수준도 안 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필리핀 원주민들은 청동기는 됐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필리핀 원주민들도 잉카인이나 아즈텍인들처럼 구석기나 신석기인이라고 생각하고 얕보고 들어갔으나 웬걸? 청동기였어요. 그래서 7번이나 패배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8번째 간신히 공략했지만 필리핀에는 필리핀 원주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 집단인 무슬림 세력이 있었어요. 그들은 마치 영국인 청교도들이 미국에 들어와서 터전을 잡은 것처럼 했던 이방인들이었어요.
하지만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열대 섬들로 이뤄졌기 때문에 대다수의 필리핀 원주민 남녀들은 그 무슬림들의 존재조차 몰랐어요.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그 무슬림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어요. 스페인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이 지역은 보르네오, 믈라까, 인도네시아를 잇는 이슬람 교역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있지만 고립된 지역이었어요. 바로 15세기에 이미 이곳에 술루 술탄국(The Sulu Sultanate)과 마긴다나오 술탄국이라는 이슬람 왕국을 세운 이들에게 스페인 왕국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라,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했던 "십자군"의 연장이자 이교도(Kafir)였어요. 게다가 자기들이 800년이나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을 무시하기도 했어요. 따라서 이들은 단순한 섬 방어가 아닌 "지하드(Jihad, 성전)"의 성격을 띠었어요.
하지만 보통 사막 세력이었기에 해양에 관심없던 무슬림들이었지만 이곳 술루의 무슬림들인 따우수그(Tausūg)인과 마긴다나오의 마라나오(Maranao)인은 그 시절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물을 좋아하는 해양인들이었어요.
이들은 "쁘라후(Prahu)" 또는 "까라이(Garay)"라 불리는 선박을 타고 다녔어요. 이 배들은 스페인 왕국의 크고 무거운 갤리온선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역에서 치고 빠지는 게 가능했어요.
이들은 무슬림답게 오스만 제국 상인들로부터 입수한 화약 무기, 특히 "란따까(Lantaka)"라는 소형 선회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이 무기는 스페인 왕국의 화력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어요. 게다가 흙과 나무, 돌로 지은 "꾸따"라는 견고한 집은 스페인 배의 상륙을 효과적으로 저지했어요.
스페인 왕국은 약 16세기 후엽~19세기 후엽까지 이 곳을 공략하고자 수십 차례의 대규모 인구를 보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16~17세기의 초기 공략은 이러했어요. 스페인 왕국은 잠보앙가(Zamboanga) 등에 요새를 짓고 공략을 시도했으나 모로인들은 오히려 루손과 비사야의 스페인인들을 역으로 죽이(Pangangayaw)며 스페인의 경제와 통치 기반을 뒤흔들었어요. 이 살인들은 단순히 해적질이 아니라, 스페인에 속복한 필리핀 원주민 남녀들에게 "스페인 왕국은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메시지이자 경제적 수단(노예 교역)이었어요.
약 18세기까지도 스페인 왕국은 자기들이 가진 막대한 모든 돈과 국방비, 인구수들을 총지출하고도 필리핀 남부를 공략시키지 못하고 안정시키지 못했어요. 게다가 네덜란드, 영국 등 다른 유럽 왕국의 견제까지 겹치면서 스페인 왕국은 사실상 필리핀 남부 공략 실패를 인정하고 항복하기에 이르고 현상 유지에 급급했어요.
약 19세기 중엽쯤에 "증기선(Gunboat)"이라는 경제 혁신이 등장하면서 스페인 왕국은 최후의 발악으로 마지막 공략을 시도했지요. 증기선은 바람과 조류에 상관없이 모로의 쁘라후를 쫓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스페인 왕국은 술루 섬의 다른 섬들을 여전히 공략하는데 실패하였지요.
약 1898년쯤에 스페인 왕국이 오합지졸로 되고 미국vs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 왕국이 패배하고 필리핀 전역을 미국에 빼앗길 시절까지도, 술루 술탄국과 민다나오의 이슬람 세력은 "단 한 번도 스페인 왕국에 완전히 공략되지 않았어요." 스페인 왕국은 결국 필리핀 공략에 "실패"했고, 이 미완의 과업은 고스란히 미국(모로vs미국 전쟁), 그리고 현재의 필리핀 공화국(남부 분리주의 갈등)으로 이어졌지요.
Part 3) 스페인 왕국의 공략 실패 사례 (1) "꼬르디에라 (The Cordillera)"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의 "공략 실패" 사례는 삘리삔의 남부에만 국한되지 않았어요. 수도 마닐라가 위치한 루손 섬의 거대한 내륙 산악지대, 즉 "꼬르디에라(Cordillera)" 역시 300년간 스페인 왕국이 공략을 실패해서 독립 지대로 남았지요.
(a) 스페인 왕국이 공략에 실패한 이유 "지리적 장벽"
해발 2,0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는 스페인 병졸들의 접근 자체를 거부했어요. 열대 밀림으로 뒤덮인 가파른 산악 지형은 스페인 왕국의 수군들과 보병의 이동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었지요.
(b) 이고롯(Igorot) 원주민
이곳에는 이뿌까옷(Ifugao), 뽄똑(Bontoc) 등 수많은 알몸에 가까운 석기시대의 원주민(총칭 "이고롯")들이 살고 있었지요.
이들은 스페인 왕국과 전쟁한 알몸의 원주민 집단이었지요. 특히 "헤드헌팅(Headhunting)" 풍습은 스페인 왕국의 탐험자들과 저지대 필리핀인들이 패배를 하게 만들었지요.
(c) 황금(El Dorado)
그렇다면 어째서 스페인 왕국은 이 열대 지방의 험준한 곳을 어째서 자꾸 들어가려고 했을까요? 그 유일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 이유.. "황금" 때문이었어요. 이고롯 원주민들이 풍부한 금광을 채굴하고 있다는 소문은 스페인 탐험자들에게 필리핀 판 "엘도라도"의 환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에요.
(d) 공략 실패
하지만 스페인 왕국은 약 17~19세기까지 수차례 "황금 탐험대"를 끈질기게 필리핀에 파견했지만 "모두" 패배했어요. 스페인 탐험대는 필리핀의 험준한 열대 지형, 이고롯 알몸 원주민들의 끈질긴 헤드헌팅, 그리고 산악지대의 열대 질병(말라리아 등)으로 인해 큰 손실만 입고 번번이 도망쳐야 했어요.
게다가 스페인 왕국의 가톨릭 선교 역시 이 필리핀의 산악지대에서는 완전히 실패했지요. 선교사들은 이들의 석기 신앙과 문화를 바꾸는 데 완전히 "실패"했으며, 종종 순교의 대상이 되었어요.
19세기 후엽까지 꼬르디에랏 산맥은 스페인 지도에서 "공략에 실패한 곳(Terra Incognita)"으로 남았어요. 이고롯 원주민은 그들의 문화, 신앙, 그리고 계단식 논(바나우에)을 300년간 유지했지요.
Part 4) 스페인 왕국의 남아메리카 공략 실패 (The Limits of the South American Conquest)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은 비록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의학 기술이나 건축 기술이 발달했지만 이상하게 "무기" 만큼은 구석기 시대에 멈춰있었어요. 스페인의 원거리 장비(조총, 화기) 앞에서는 "압도적인 열세"에 놓였지요.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의 국력은 스페인 왕국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구석기 시대의 장비(흑요석, 청동기)"에 의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에르난 꼬르떼쓰(Hernán Cortés)는 수백 명의 인원으로 "천연두(Smallpox)"라는 질병과 뜰락스깔라 등을 유혹해서 아즈텍을 무너뜨리게 했지요.
쁘란시스꼬 삐사로(Francisco Pizarro)는 168명의 인력으로 까하마르까 싸움에서 국왕인 아따 왈빠을 사로 잡아 잉카를 와해시켰지요. 이는 잉카가 마침 내분(아따 왈빠 vs 우아 쓰깔)으로 무너지게 만들었고 스페인 왕국의 화기 포격에 잉카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남아메리카 공략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스페인 왕국은 이들 잉카, 아즈텍의 "머리(수도와 국왕)"만 먹었을 뿐 그 "몸통"의 모든 세포 특히 문명의 바깥에 있던 영토는 전혀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스페인 왕국이 "실패"한 남아메리카의 루트는 크게 3방향으로 나눠요.
a) Route. 1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열대 정글(The Amazon Jungle)"
스페인 탐험자들에게 남아메리카의 아마존은 "엘도라도(황금의 도시"'와 "라 까넬라(계피의 지방)"라는 유혹의 지방이자, 동시에 그들을 삼켜버린 "그린 헬"이었지요.
잉카를 따먹었던 쁘란시스꼬 삐사로의 동생인 곤살로 삐사로(Gonzalo Pizarro)는 황금과 계피를 찾아 수천 명의 스페인인과 그들의 번식 성노예들이었던 남아메리카 원주민 남녀 노예들을 데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열대 아마존 정글로 들어갔지요.
하지만 그곳은 지옥이자 재앙이었어요. 빽빽한 열대 정글은 도저히 이동이 불가능했고, 가져왔던 밥과 음식들은 금세 다 먹어치웠어요. 뿐만이겠어요? 지구상에서 가장 습한 브라질 아마존의 열대 습기와 가장 무더운 고온의 열기는 갑옷을 벗게 만들었고 알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곳에서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게다가 타란튤라 거미, 말라리아 모기 등의 크고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수많은 독충들과, 그리고 아마존에서만 있는 열대 정글의 질병(말라리아, 뎅기열)이 스페인 병사들을 쓰러뜨렸습니다.
곤살로와 헤어진 프란시스꼬 데 오레야나(Orellana, 1541~42)도 상황이 안좋은 건 마찬가지였어요. 그도 밥을 찾아 열대 정글의 강물을 따라 내려가다가, 의도치 않게 아마존 강을 횡단하여 대서양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지요. 게다가 그는 그곳에서 "알몸의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전사(아마조네스)"를 보았지만 패배하여 도망쳤다고 보고했지요.
스페인 국왕에게 봉기를 들었던 로페 데 아기레(Lope de Aguirre, 1560~61)의 탐험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아기레의 탐험자들은 결국 고립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요. 그들의 탐험은 "아귀레 신의 분노"라는 영화로 제작됐으며 실화라고 하네요.
Part 5) 스페인 왕국이 아마존 공략에 실패한 이유
(a) 지리적 장벽이 컸어요. 열대 지방, 적도, 남반구의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들은 대부분 이런 지리적 장벽들을 가지고 있었지요. 아마존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존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방어막이었지요. 스페인 왕국의 가장 핵심 전력인 보병대는 열대 정글에서 무용지물이었고, 화약 무기인 총기나 화기는 습기 때문에 제 기능을 못 했지요.
(b) 그리고 아마존에는 석기 시대뿐이었지요. 수백 개의 소규모 구석기 시대의 움막(야노마미, 뚜까노, 슈아르/히바로 등)이 흩어져 살고 있었지요.
(c) 습하고 무더운 열대 정글 속에서 스페인 탐험자들은 찜통 무더위 속에서 생활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각종 말라리아 모기들 때문에 질병에 걸려 죽었지요.
이렇기에 약 19세기까지 아마존 유역은 스페인 왕국은 공략에 실패했지요. 스페인은 강 하구와 일부 교역소(예수회 선교촌 등)에 겉으로 머물렀을 뿐, 열대 정글 깊숙한 곳은 여전히 공략에 실패한 채로 원주민의 땅으로 남았지요.
Part 6) 스페인 왕국이 대패한 전쟁 "아라우꼬 전쟁(The Arauco War)"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이 남아메리카에서 겪은 가장 치욕적이고 패배한 공략 "실패"는 현재 칠레 중남부의 "아라우까니아(Araucanía)" 지방에서 발생했지요.
스페인 왕국은 잉카 문명의 남쪽 변경이었던 이 지방을 손쉽게 따먹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마뿌쩨인Mapuche"은 오합지졸에 나약했던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따위와는 완전히 다른 상대였습니다.
마뿌쩨는 "롱꼬(Lonco)"라는 추장이 있는 작디 작은 소규모 공동체 집단이었지요. 싸움 시에만 임시로 "또끼(Toqui, 임시적인 싸움 리더)"를 선출하여 힘을 모았지요. 이는 잉카처럼 국와 1명을 잡는다고 무너지는 구조가 아님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매우 개방적이었고 자유를 사랑했어요.
뻬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가 데리고 온 스페인 병졸들은 초기에는 승리하는 듯했으나, 1553년 뚜까뻴 싸움에서 마뿌쩨족에게 패배하고 발디비아 자기도 볼모로 잡혀 사형 될 정도였지요.
게다가 마뿌쩨인들은 "학습"을 할 줄 아는 인종이었지요. 마치 혹성탈출의 유인원처럼요. 마뿌쩨인들은 스페인 왕국에게 패배했던 "남아메리카의 구석기 수준"의 잉카 문명과 아즈텍 문명따위와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상대방의 장점을 학습하고 공부하고 배웠지요.
마뿌쩨족들은 스페인의 가장 강력한 장비인 "조총"을 받아들였습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마푸체는 아메리카 원주민 중 가장 뛰어난 총병이 되었습니다.
마뿌쩨의 또끼였던 "뻴렌 따루(Pelentaru)"가 봉기를 일으켜 스페인 군대가 완전히 패배하고, 남부에 세워졌던 7개의 스페인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숫적으로도 마뿌쩨보다도 훨씬 우세했음에도 계속 연전연패했고 마뿌쩨를 도저히 맞서 싸우거나, 막을 수가 없었지요. 이 스페인의 대패를 1598년에 벌어진 "꾸랄라바 대참사"라고 불러요. 이는 스페인에게 "남아메리카의 베트남"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꾸랄라바 대참사 이후, 스페인 왕국은 아라우까니아 공략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더 나아가 불가능함을 정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요. 이는 스페인 왕국이 구석기인들이었던 마뿌쩨인들에게 패배를 했음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그야말로 "치욕"이었지요.
그 결과 스페인 왕국은 비오비오 강(Bío Bío River)을 마뿌쩨 지방과의 정식적인 "변경"으로 설정했지요. 이는 왕국이 남아메리카의 구석기인들과 변경을 맞대고 대치하는 것을 인정한, "실패"의 상징이었습니다.
약 19세기 초엽쯤에 칠레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시절까지도, 아라우까니아는 마뿌쩨인들의 독립 영토였지요. 그런데 웃기게도 이 마뿌쩨인들은 스페인 왕국과의 전쟁에서는 모두 승리했음에도 스페인 왕국보다 약했던 칠레 공화국과의 전쟁에서는 19세기 후엽쯤에 패배하면서 먹힙니다.
Part 7) 스페인 왕국이 공략에 실패한 남미의 기타 변경 지역 (Other Frontier Regions)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이 생각보다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에, 아마존과 아라우꼬 외에도 스페인 왕국이 공략에 실패한 광대한 회색지대들이 많이 존재했지요.
(a) 빠따고니아(Patagonia):
아르헨띠나 남부의 광활하고 황량한 지방인 빠따고니아에는 떼우엘쩨(Tehuelche)라는 농경민들이 살고 있었고 19세기까지 이곳은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지요.
(b) 그란 짜꼬(Gran Chaco):
그란 짜꼬는 빠라과이, 볼리비아, 아르헨띠나에 걸친 지방입니다. 이곳에는 과이꾸루(Guaycurú), 아비뽄(Abipón) 등 수렵 채집 민족이 살고 있었고 스페인 왕국은 이들과의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어요.
Part 8) 스페인 왕국은 어째서 이렇게 공략에 실패한 지역들이 많을까?
스페인 왕국 "실패"의 종합적 이유는 뭘까요?
필리핀 술루와 남아메리카 정글(및 남부)에서의 "모든 실패"는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왕국의 근본적인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a) 무력의 한계
스페인의 무력(총기)은 조직력이 약하고(disorganized) 구석기 수준의 장비를 사용하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같은 "구석기 왕국"을 붕괴시키는 데만 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스페인의 방식은 다음과 같은 상대에게는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a. 열대 정글에 숨어 있는 구석기인들: 아마존, 꼬르디에라의 구석기 원주민 남녀들.
d. 물에 특화된 상대: 필리핀 술루 술탄국의 무슬림 해군.
d. 학습하고 공부하는 상대: 총을 받아들인 마뿌쩨 총병.
(b) 지리적 한계
스페인 왕국을 잡아먹는 가장 큰 포식자는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아마존의 "녹색 장벽", 안데스와 꼬르디에라의 "고도 장벽", 아따까마와 그란 짜꼬의 "척박한 장벽"은 스페인 왕국의 보급로를 끊고 군대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c) 이데올로기적 한계
가톨릭 개종은 스페인 왕국의 핵심 통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강력한 고등 종교(이슬람)가 자리 잡은 필리핀의 술루 지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