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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꼬리 잔상

by 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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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던 꽃이며 !]


3년전 순천의 호수에 들렀다가, 음료수 하나 사러 농협 로컬푸드에 갔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화분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빨갛고도 귀여운 버들강아지가 남의 식구 같지 않았다.


어릴 때 냇가의 언덕을 따라 봄의 전령사인 버들강아지가 시내를 따라 피어나는 것을 손바닥에 굴려 간지러움을 느껴보기도 하고, 따서 먹어보면 이것이 딱 봄의 맛이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진 고향이지만,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저녁 굴뚝에서 흘러나오던 연기가 걸려 몸부림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빨간 버들강아지는 나의 눈 속에 박혀 지난 기억이 영상으로 비추어지고 혼조차 흔들릴 정도로 귀엽고 예뻤다. 바로 사려고 했더니 전시품이어서 곤란하며 일주일 뒤에 오면 준비해 두겠다고 한다. 혹,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면 직접 가서 구매하겠다고 했더니 영업상 비밀이어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을 한번 주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심상이라, 전시품을 사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꼭, 나의 한 부분을 두고 가는 마음이었고, 할 수 없이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림에는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을 때는 푹 잠을 자든가 내버려 두는 것이 해결책이다. 일주일 뒤 사러 갔더니, 전시품보다 더 풍성한 줄기와 잎과 빨간 버들강아지가 생기 넘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나를 이렇게나 반기며 기다려준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져와 아주 큰 화분에 옮겨 심고 며칠이 지났더니, 축 늘어져 있던 버들강아지가 똑바로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더 표현할 수 없는 깜찍함으로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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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도 대답없는 꽃이여 !]


아마도 나보다는 옆의 친구들이 더 반가워서 웃고 있었을 것 같았다. 이내 정원의 친구들과 친하게 되었나 보다. 조용한 미소의 튜울립, 마가렛, 데이지, 아네모네, 미모를 자랑하는 양귀비, 덩굴장미, 작약, 목련, 모란, 수선화, 그윽한 향을 무기로 하는 향동백, 천리향, 만리향, 치자나무, 박하, 겸손으로 은근히 젖어드는 병꽃나무, 철쭉, 포도나무, 감나무, 토단풍, 패랭이꽃,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낮달맞이꽃, 방울꽃, 제라니움, 오죽, 그리고 마음을 풍부하게 해주는 상치, 고추, 수박, 참외와도 금방 친해지는 것을 보았다.


오뉴월 뙤약볕에 모두들 숨을 참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빨간 버들강아지는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며 똑바로 서서 바람을 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쩜 저놈은 나를 만나 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나보다. 아침에 물을 줄 때는 항상 웃으면서 나의 노력에 보답을 한다. 아침 해가 솟아 덩굴장미의 꽃이 역광으로 비추어 아주 예쁜 포즈를 취하는데, 이놈도 질세라 역광의 묘미를 한층 뽐내고 있다. 나는 순광의 사진보다 역광의 사진을 좋아하고 많이 찍는 편이다. 역광 사진은 아주 강렬하고, 검은 배경에 피사체가 경계를 이루며 다가서는 모습에서 정신을 잃듯이 좋아한다. 빨간 버들강아지를 역광으로 잡아 찍어보면 한두 컷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구나 역광으로 보이는 버들강아지 털은 숨을 멎게 한다. 출근 전의 짧은 촬영은 기대감과 예쁜 모습의 버들강아지가 어떻게 찍혔을까하는 생각에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들어설 때 겨울을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은 그 전 해에도 했던 것과 같이 찬바람이 차단되는 다용도실에 화분을 옮겨 겨울을 넘기게 하였다. 너무 건조해지면 물도 주고 식물이 고사하는 것을 막았다. 특히, 란타나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거실에 두고 겨울에도 꽃이 필 수 있게 돌보다가 4월의 따스한 날이 되면 테라스에 옮겨 한파를 지내곤 하였다.


그런데 작년 겨울 녘에 추위에 약한 식물들은 피난을 시켰는데, 저 여우꼬리는 피난을 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앞전의 겨울에 피난하지 않았음에도, 봄이 되니 싹을 내고 청춘을 불태우는 것을 보았기에 별 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정원에는 월동이 가능한 식물들을 주로 배치하고 아울러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을 우대하여 배치하였었다. 나는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겨울을 넘겼으면 당연히 다음 해도 월동을 할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그게 사고였다. 월동한 사실만 생각하고, 그 식물이 정말 월동이 가능한 식물인가를 챙겨보지 못했다. 한번 겨울을 넘겼다고 월동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과학을 하는 사람의 판단이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다. 무슨 생물이든지 그 기원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놓쳤다. 연구용 미생물을 구입할 때도 꼭 기원을 따지고 맞는 것만 구입해 사용했는데 미생물이 아닌 식물이라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일을 초래했다.


봄에 새싹이 나지 않아 무척 당황하여 줄기를 잡고 뿌리를 챙겨보려고 힘을 주었더니 깡그리 마른 채로 모두 딸려 나오는 것이었다. 멍하게 머리를 쳤다. 이 식물이 월동 가능한지 챙겨보지 못했다. 줄기가 있고 무성하여 월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과학의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었다, 미안하기보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메꽃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냇가의 언저리에 피어 있는 나팔꽃과 비슷한 꽃인데,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면 또 꽃을 피우고, 소 먹이러 가면 반갑게 맞아 주는 꽃이었다. 이 메꽃도 줄기 식물이고 꽃을 피웠고, 그 전 해도 월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난을 시키지 않은 것이 생명을 죽게 만든 것이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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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가득 담던 꽃이여 !]


아쉽기도, 미안하기도, 볼 수 없다는 섭섭함으로 온몸을 칭칭감고 있는 여우꼬리 생각에,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빨리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모종을 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른 봄부터 꽃 농장을 헤매어 보고, 부탁도 하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주위의 꽃 농장을 누벼 봐도 없고, 자신들도 도매상에 가서 구해야 하는데 언제쯤 나오는지는 기대 할 수 없다고 한다. 4월은 지나야 한다기에, 또 기다리다 농장에 가보면 ‘도매상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여우꼬리 농사를 안 짓나 보네요’하는 이야기를 한다. 한번 바보짓 한 게 이렇게나 나를 삶아 먹을 줄은 몰랐다. 전에 찍어둔 여우꼬리 사진만 보면 그렇게도 예쁜데 구할 수가 없으니, 더욱 애가 타고 바보 같은 일에 용서를 할 수 없게 되어 갔다. 5월을 넘기자 초조해지기도 하고, 꽃 농장에 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좀 구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퇴근길에 또 들러보고, 못가면 농장에 전화해서 들어왔냐고 물어보고, 농장 주인이 이젠 지겹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렇게 못난 일을 하다니, 그렇게 생각이 좁다니 하는 자책감에 둘러싸여 지내다가, 지난 일요일 저녁에 농장에 전화 해보니 새카만 하늘의 빈틈을 뚫고 나오는찬란한 햇빛같이 구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내일 퇴근하고 가지러 가겠다고 했다. 농장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화를 했더니 자신들은 다섯 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다행히 가게 안쪽은 잠겨있엇으나, 상품을 진열한 곳은 볼 수 있었다. 주인이 나더러 눈 주위에 무슨 꽃들이 있냐고 하길 래 제라늄이 있고 빨간 꽃들이 많이 있다고 했더니, 거기로부터 한 칸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단상 밑에 있을 거라고 한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그렇게도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아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릴 때 동네 친구와 우리 30살 때 이 느티나무 아래서 만나자고한 고향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미안함과 반가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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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애태우던 꽃이여 !]


사죄하는 마음으로 큰 화분에 옮겨 심고, 다음 날 아침에 그 아이는 수줍음 미소로 나를 맞이 했다. 참 다행이었다. 잠시의 잘못된 생각이 6개월 동안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는데, 생명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사랑한 만큼 책임이다는 것을, 아름다움을 넘어선 물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비단, 이 일뿐만이 아니라 좀 더 넓고 깊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되었다. 나는 지금 비로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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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지 못한 내 꽃이여 !] [끝내 내게 다가온 반가운 꽃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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