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내가 기다리던 느티나무 곁을 지나 말없이 웃벼 자라는 논으로 왔다. 뙤약볕에 여름이 간다고 그렇게 목을 놓아 고함지르던 매미도 제풀에 꺾여 다시 7년을 기약하고 아쉬움 속으로걸어갔다.
아마도 청춘이 없는 생명은 없을 것인데, 이제 아팠던 청춘을 짊어지고 차츰 무거워 오는 마음으로 아침 해를 맞는다. 그렇게 청춘을 열심히 살았건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애닯음만 남았다. 지나고 나서 보면 이렇게 할걸, 저렇게 했더라면 하는 가정법이 머리에 맴돌고, 손에 이렇다 할 쥘 것도 없는 청춘을 그렇게 보냈다는 아픈 마음도 있다. 정원에 포도나무가 너무도 활발히 움직여 위층까지 도달할 때, ‘저것이 청춘이구나’ 하는 마음보다는 ‘어! 저것 잘라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청춘을 짓밟고, 나의 포도나무도 할 말을 잃었는지 매단 열매만 아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청춘도 포도나무와 같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열심히 동서남북으로 해외로 정신없이 가지를 뻗고 나무가 무거워할 만큼 많은 열매를 맺겠다고, 가을에는 뭔가 맛있는 가을이 되겠구나 하고 어쩌면 자아도취에 빠져 흥얼거리기도 했었다.
[억울한 포도송이]
청춘이란 솟아나는 샘물처럼, 써도 써도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시기를 말한다. 지칠 여유가 없는 시기, 자신의 에너지가 모자라면 타인의 에너지까지 내 것으로 쓰는 시기이다. 또 청춘은 조급증이 나는, 서두를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난 청춘은 허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청춘의 시기에서 단 계급장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 계급장이 빛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허망한 느낌이 들수록 계급장은 빛이 날 것이다. 허망하다는 말은 해볼 것은 다 해보았다는 의미로 아쉬움이 많이 남을지라도 내가 스스로 만든 계급장이기에 오늘도 살 수 있는 것이다. 허망이란, 내가 한 노력에 비하여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허망이란 단어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계급장 달기]
가을은 내 계급장 안에서 숨 쉬고 있다. 허망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급으로 향상을 위해, 삶을 지키기 위한 에너지 생산에 중점을 둘 수 있다. 살아감에 있어 가정법에 머물러 있으면 후회만 구름처럼 피어오를 뿐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신이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고 살지 그냥 흐지부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뒤돌아보며 후회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런 일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가을은 어쩌면 용서의 계절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의 주위에 있는 사사람들에게 잘못 한 일이 있다면 용서를 빌기도 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수확의 계절이다. 봄에, 아니면 더 어려운 겨울에 무슨 일을 시작했다면,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일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점검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어쩜, 은퇴를 대비해야 하기도 히고, 얼마 전에 들렀던 병원에서 몸 관리를 좀 잘 해라는 말, 전번에 아이가 지나가는 말로 일이 좀 힘들다고 한 말, 모두가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의 일일 경우에는 참 잘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용서 대신에 칭찬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를 끝내는 노고]
가을이 간다는 것에 준비된 것은 없다. 아직은 가을이 가고 있다는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이제사 먼 산을 바라보면 울긋불긋 무언가 나름대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을 보아 떠날 준비는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슬프게 더욱 슬프게 마음 아프게 하고, 나를 기쁘게 더욱 기쁘게 해주는 가을에 대하여 잘 가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길을 청학동으로 향했다.
아뿔사, 세월은 사람만 기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을도 채찍으로 밀어붙이며 밀고 나가는 것 같다. 멀리서 본 산의 단풍은 참 아름답지만,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단풍은 단풍이 아니고 거의 악을 쓰고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참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눈에 곱게 보이면 가을이고 깊이 들어가 가을이 앓고 있으면 가을이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해서 가을은 왜 저렇게 아파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도 자신을 잘 알려면 속병이 없는가를 살피고 없으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인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속병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가을이 심하게 속병을 앓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언뜩 나도 그럴 것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을이나 나나 서로 동병상련으로 안고 차가운 눈물을 흘릴 뿐이다. ‘너 어쩌다가 그렇게 아프냐’고 물어보면 찡긋 웃으면서 ‘이것이 살아가는 길인데 어찌할까’하는 대답을 할 것 같다. 어쩌면 서러워 말아라는 뜻으로도 보인다.
가을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 보다는 서러움에 지쳐가는 건지도 모른다. 잎사귀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이제는 억지로라도 가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하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있다가 생각을 좀 정리하고 난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은데 지금은 아니다 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을 것도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섧다. 마음을 받아 줄 곳이 없고,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서러움을 느낀다.
[가을의 서러움]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딱 이 일 하나만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섧다. 이 일을 포기하면 서러움도 없어질까 생각하면, 그것은 더 더욱 아니다. 아마도 눈물나게 더 서러울 것이다. 이것조차 할 수도 없냐 하면서.
가을은 다르게 섧고 슬픈 것이 아니다. 뒤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고 해가 지기 전에 저것은 꼭 해봐야겠는데 안 되니깐 슬픈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면, 모든 설움이 없어질까, 아닐 것이다. 어쩜 저 가을이 없어질 것 같아 더 서러워질 것 같다. 깊은 가을, 이 산속에서 떠오른 것은 보는 사람의 눈에 의하여 가을은 깨어진다는 것을 마음에 담았다.
잎이 단풍을 지나 메말라 나무에 집착으로 매달려 있는 것은 가을이 아니다. 그러니까 집착이 가을을 보내지 못한다. 무어라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집착. 인간사 모두도 집착이 개입되면 순수함이 사라지듯이, 무슨 대상에 대해서도 집착은 거두어야 한다. 우리는 곧잘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여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집착은 자신을 가둠으로써 해제시킬 수 있다. 자신을 가둔다는 말은 어쩌면 자신을 지킨다는 말이 될 수 있고,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일이다.
[집착]
가을을 보라. 가을은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그냥 무언으로 지나갈 뿐이다. 사람들은 가을에 대하여 할 말이 참으로 많다. 사랑, 이별, 수확, 뉘우침, 용서, 행복, 바람, 부탁, 기다림, 인연, 배려, 보답, 기대, 이해, 대답, 길, 정, 집착.....
그래서 사람은 가을에게 이런 일들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가을이 가는 것에 대하여 우려와 집착보다는 시간의 응답으로 기쁘게 해후할 수 있도록 가만히 손을 놓아주어야 한다. 돌아서서 울더라도.
[석양속의 자유]
어쩌다 빈 의자가 보이면 나의 자리가 아닐까라고도 생각하지만, 나 말고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쉼없이 왔고 이제 좀 앉아 쉬어 볼까하는 마음이 솟아 나지만, 결국 그 빈 의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비워 두고 싶다. 여유 없이 살아왔지만, 지금이라도 타인을 위하여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는 참 잘 살아 왔다고 혼잣말로 칭찬하면서.
[빈의자]
가을이 나에게 그렇게 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