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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Jul 16. 2022

봄, 고통을 숨겨주는 애틋한 말

봄은 시작과 희망을 다스리는 말이다. 너무 가깝게 여겨져 반갑고 마음이 따스해서 좋고 전하고자 하는 깊이가 마음을 찡하게 하는 말이다.

어쩌면 봄은 기다리게 하는, 기다려도 되는, 고통을 숨겨주는 애틋한 말이기도 하다.

봄은 그 이전에 겨울을 생각하게 한다. 겨울은 모진 고난을 갖다주는 또는 우리가 겪는 일 중에서도 겨울이란 말은 등골을 차갑게 만든다. 겨울은, 동토는 우리의 생각과 잃어버려서는 안 될 양심과, 펼쳐야 할 자유와 가슴 시리게 하는 기다림, 함께 있어야 할 임과의 이별을 뭉쳐 차가운 땅속에 묻어 지키는 일을 한다. 구해 내고자 하면, 지구상의 어느 화폐나, 금, 은으로써도 막을 수 없는, 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재산을 몽땅 퍼부어도 구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침묵으로서만 쳐다보게 된다.

                                                        [동토(러시아), 2015]


좀 더 곱씹어 보면, 누구나 품고 있는 마음을 표출하고 싶지만 그 일이 양심과 자유에 관련되어지는 것이면, 우리가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있듯이, 아주 무감각하게 지내려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예, 짐승이라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해두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지만.     


인간은 왜, 지켜야 하는 일을 미루며 기다리려고 할까? 양심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책임감은 더욱 아니며, 비겁함이나 두려움 때문이라 해 둘 수 있을까? 이는 모두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한가지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일은 해결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꽁지를 내리며 버티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양심은 비겁함도 포함하여야 하는가. 또한, 양심은 타의에 의하여 조절되어야 하는가. 어떤 필요악이 되어 필요할 땐 쓰고, 불필요할 땐 버려야 하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왜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

양심은 자신을 구할 수도 있고, 구렁텅이에 넣을 수도 있는 아주 무서운 것이라서 관리할 기관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사람도 짐승 같이 살이야 하는가?’하는 전제를 두어보면, 이를 제어하는 것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이성이다. 그래서 이성을 잃었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난다. 이성은 단순하게 정당한 것을 행할 수 있도록 판단을 세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이성은 양심과 항상 다투고, 또한, 비겁함과도 날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분자 궤도를 빌려 설명을 해본다면 양심은 그 분자의 핵이 될 것이고, 이성과 비겁함은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반응 환경에 따라 이성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비겁함이 떨어져 나가 양심이라는 분자를 변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성이 떨어져 나가면 비겁함 쪽으로 기울 것이고, 비겁함이 떨어져 나가면 이성 쪽으로 기울 것이다.  

    

반응 환경이 겨울이 될 때 자연적으로 비겁함이 떨어져 나가야겠지만, 인간은 너무도 영특하여 이성을 강제로 떨어뜨리는데 익숙한 모습을 보여 왔다. 우리가 전번에 봄을 빼앗겼을 때 당연히 비겁함이 떨어져 나가야 했었지만, 이성이 갈 길을 잃고 추풍낙엽처럼 가버렸던 사실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왔을 때 스스로 버렸던 이성을 주워 담아 아주 교묘하게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더 할 수 없는 추한 길로 들어섰고, 오늘의 겨울을 맞고 있다.     


봄은 우리에게 기다림을 준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희망과 시작을 가져다주기 때문으로.     


그러나 봄은, 그렇게 쉽게 오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진정  봄날을 너무도 반갑게 맞아야할 대상은 진달래와 같이 꽃을 피우는 생명일 것이다.     

 

왜냐고?      


모진 겨울을 겪지 않은 생명에게는 꽃 피울 자격조차 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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