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에 쟁기 싣고 길게 늘어진 그림자
못논에 잠기운데
석양 속 누렁이 논두렁 길 가볍다
쟁기 실을 자리에 세월이 실리고
기적소리 까맣게도 세월을 삼켜 물었다
지게 멜빵이 삭아 속 뼈대를 보여도
줄어들지 않는 짐 속에는
병아리들이 모이를 찾고 있었다
벗어던지지 못한 지게에는
세월보다 무거운 눈물이 배어 있었고
닭들이 날개 달아 날아간 뒤에도
아슴아슴 지게 끈을 놓지 못했다
하늘이 닫힐 때쯤
끊어질 듯 이어질 듯한 영상 속에
몽글어진 눈물 한 방울로
세월을 씻었다
그렇게도 벗지 못하던 바지게에
애잔한 미소 가득 싣고
또 일어서고 있다.
[아버지의 지게 : 창원(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