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길 Jul 25. 2022

목숨을 바쳐 하늘을 움직이는 일

어미의 恨

어미의 恨

강릉시와 정선군을 있는 노추산에 어머니의 정성으로 빚어진 모정의 돌탑이 있다. 그냥 돌탑이 아니라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으로 3000 개의 돌탑을 쌓았다.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는데 왜 지성이 필요할까? 지성은 말 그대로 지극정성을 다한다는 말이고,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는 말이다. 즉, 지성은 염원이다. 염원은 기도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고, 거의 목숨을 바쳐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이가 얻어지지 않을 때 흔히 지극정성을 들여서 얻는다고 한다. 그만큼 바람이 극에 도달된다는 것이다.     


이 돌탑을 쌓은 사람은 차옥순 할머니이며, 1986년부터 2011년까지 26년간 하늘을 두드렸다. 할머니의 염원은 가족에 대한 애한이었다. 4 남매 중 두 아들을 먼저 보냈을 때, 그 가슴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타다 타다 재가 된 속만 남고 그 속은 한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남편마저 정신질환에 시달리었으니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니 백번이라고 죽어 한을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죽으면 그 한도 함께 가는 것으로 생각해 이 모진 한을 끊어 보려는 생각에 정신을 모았을 것이다. 생명을 내려놓기 전의 간절함이 꿈의 계시로 3,000개의 돌탑을 쌓으라는 명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탑 쌓을 장소를 노추산 중턱으로 잡는다. 이는 아마도 율곡과 설총의 이야기가 깃들고,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와 같은 성인의 향기가 도는 노추산을 택하였을 것이다.     


정말 사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찾아보면,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어떻게 이 많은 돌탑을 쌓았을까 하는 생각과 그 주위에 둘러봤을 때 이 많은 돌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게 한다. 얼마나 많은 돌들을, 얼마나 멀리서 여자의 힘으로 날라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을 쌓는 순서는 당연히 밑에는 큰 돌을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쌓아져 있다. 밑돌은 정장이 들어도 들기 어려운 큰 돌로 되어 있어 사람의 한계를 찾을 수 없게 한다.     


겁의 세월을 거쳐 돌이 닳을 정도를 인연이라 한다면, 무슨 인연을 지키려고 이렇게 품은 한을 승화시켜 고행을 했을까. 부모와 자식의 인연일 것이다. 이 인연은 자식보다도 그 어머니가 지고 가야 하는가. 그래서 어머니 하면 그렇게도 눈물이 나는 것인가. 자식도 부모가 되고 나서야 이런 인연의 끈을 물려받는가. 그래서 자식의 안녕을 하나하나의 돌에 새기어 쌓은 것인가.     


길가로 쌓아진 돌탑,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는, 자식으로서의 다 못한 일들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길가에 서있는 돌탑에 작은 돌을 얹으면서 자그마한 기도로 닿지도 못한 어리광을 부려보기도 한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한 사람의 어미가 해낸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42세의 나이에, 바로 서기도 힘들 시기에 돌탑 쌓기를 시작한 어미, 돌 하나하나에 자신의 한 보다는 자식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쌓아 올린 저 돌탑들, 누가 시킨다고,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해도 엮어내지 못할 그 역사들을 눈으로 보며 그 정성에 그냥 감동할 뿐이다.     


차츰 들어 갈수록 빼곡함을 더하는 돌탑,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는 돌 탑, 한없는 눈물로 기도했을 어미, 돌탑에 쓰인 숫자, 그 의미를 쌓은 사람 외는 알 수가 없다. 저것들을 돌탑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을 둘러싼 성이라 해야 하나,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한 곳에 묶어두는 성이라 하는 것이 더 어미의 마음에 맞을 것 같다. 갈수록 두 사람이 비켜 가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비좁은 곳에 양 옆으로 세워진 돌탑, 드디어 소쿠리가 보이고, 양은 대야가 보이고, 같이 세월을 함께 한 듯 한 사목도 보인다. 때로는 돌탑 위에 솟대의 형태를 띤 탑도 보여 기다림에 절은 어미의 모습도 보인다.


                                                  [모정(母情)의 탑(정선), 2018]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돌탑의 끝에 큰 돌로 끝을 맺은 것은 쌓은 돌탑이 무너지지 않게, 자신의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벗어 놓고 싶은 심정으로도 비친다. 혹 무너질까 큰 돌 주위에는 나사를 박듯이 잔잔한 돌들로 이빨을 맞추고 있다. 간 길을 되돌아올 때 돌탑들은 손을 잡아 달란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돌탑 쌓기 시작 26년 만에 3,000개의 돌탑을 완성했을 때의 마음을 어떠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고생한 것은 생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간 아들의 행복을 눈물을 흘리며 빌었을 것이고, 끝까지 돌을 쌓게 해 준 신령님에게도 감사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또한,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되어 또한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한 인간이 자신에게 안겨진 한을 모질게도 이겨 나온 것은 어미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할 진대, 떠나간 어미를 남아 있는 우리는 무엇으로 한을 씻겨 드릴 수가 있을는지.     

작가의 이전글 나의 여수(麗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