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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Aug 08. 2022

하얀색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흔히 무지개 색을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색으로 알고 있다. 뉴턴 시대에 만들어져서 우리는 당연하게도 7색으로 배우고 거기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의 영어권에서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의 6색으로, 네덜란드어를 쓰는 나라들에서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다섯 색으로 인지한다고 한다. 현대에서 과학적으로 규명해보면 134~207색까지 구별되고 있으나 실제로 우리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빛의 3원색은 빨강, 녹색, 파랑으로 알고 있으며, 흔히, 우리는 이를 RGB(Red, Green, Blue)라고 부른다. 상식적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색이 합쳐지면 흰색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색의 삼원색은 빨강, 파랑, 노랑으로 알고 있고 이를 합치면 검은색이 된다. 좀 더 확실하게는 cyan(시안: 파랑), magenta(마젠타: 빨강), 노랑(yellow: 노랑)인데, 굳이 시안, 마젠타를 들먹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파란색이라 하면 바다색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의 넓은 아량으로는 엷은 연두색부터 녹색, 진한 남색까지 모두 파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온 산천이 녹색이 되는데도 파랗다, 푸르다는 말을 쓴다. 자전에 보면 靑을 ‘푸를 청’이라 하고, 綠을 ‘푸를 녹’이라고 하는 것에 기인되어 우리는 거기에 얹혀 살아왔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빨간색도 마젠타라고 하는 것은 색의 3요소 중에서 빨강이 있는데 실제는 빛의 빨간색보다는 연한 색인데도 우리는 마젠타를 빨강으로 본다.     


색의 요소들을 섞으면 검은색으로 되고, 빛의 3 원소를 섞으면 하얀색이 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색깔 중에서 투명을 흰색으로 오해하고 지낼 때도 있다. 흰색과 투명을 구별하지 않고 살아왔거나, 그게 무엇이 중요하여 구별하고 살아야 하느냐는 이야기로 들릴 듯하다.     


                                                [흑, 백장미(여수), 2022]


투명은 색이 없다. 그 자체로는 색을 가지지 않아 건너다보이는 색으로 착각하고 살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인지하기 전에 투명을 통하여 빨간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투명은 아무런 색이 없어 자체의 질감이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투명하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색을 나타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소리 없이 주위에 흐르고 있을 뿐이다. 굳이 사람들이 인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은 색이어서 그 역할을 모른다.     


그렇게 투명하게 자신의 색을 나타내지 않고 겸손히 사는 색이다. 굳이 그 색을 인지하지 않는 것은 투명이 가지고 있는 색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면 이상한 존재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러나 투명한 것이 있어 기존에 존재하는 색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투명한 존재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흰색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러 색이 섞여서 만들어지는 색이다. 우리는 어쩌면 흰색을 투명으로 인지하고, 흰 것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검은 것은 아주 오염된 것으로 알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흰색은 여러 가지 색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투명보다 순수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금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하얀 소리라고 하면, 우리의 뇌가 인지하고 있는 대로라면 아주 맑은 소리로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얀 소리는 못으로 유리창을 긁는 참을 수 없는 소리를 말한다. 여러 가지 소리가 섞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공해 같은 소리를 말하기도 한다.      


더불어 하얀 냄새라고 하면, 아주 향기로운 냄새로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오염된, 아주 가까이하기 어려운 냄새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흰색의 의미가 본연의 색을 찾아가는 것인지, 우리가 시대에 얽혀 투명과 흰색을 구별하지 못하고 지내왔는지 간에, 사람도 투명한 색으로 사는 것이 배려의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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