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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Sep 03. 2022

태풍 오는 날

태풍은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기울 수도 없도록 난도질을 한다. 세상에서 이름값을 하고 사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의 이름은 그 이름대로 살라 하는 커다란 염원이 깃들어져 있을 것이다. 나의 이름도 할아버지께서 덕이 은은한 종소리처럼 퍼져 덕을 쌓으며 살라 하는 의미로 생각한다. 그 이름이 너무 커서 여태껏 이름값 한 번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아 할아버지께 항상 미안한 생각을 하고 산다.     


태풍, 이놈은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값을 하고 사는 것임이 틀림없다. 술 마시고 광기에 찬, 돌아버린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마구잡이로 해치는 것을 보면 이보다 더한 개망나니는 없을 것 같다.     


아주 자그마한 씨앗으로 눈을 떠서 그렇게도 빨리 자란 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삶을 보내면서 확실하게 이름값을 하고 간다. 1969년 9원 17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말로 화가 난 비바람이 내가 사는 조그만 시골에 당도했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두 개의 시내가, 왼쪽으로도 두 개의 시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멱을 감기도, 소를 목욕시키기도, 겨울엔 썰매 지치기로 거의 이 시내들과 함께 지내왔다. 냇가의 모래 둔치에는 흰물떼새가 알을 품고, 물총새가 피라미를 잡으려고 다이빙하는, 친구도 없는 외딴곳에서 냇가와 친구 삼아 지내던 고마운 친구였다.   

  

이때의 비는 빗줄기가 아니었고 냇가를 수직으로 세워 놓은 것과 같았다. 그냥 물속에 헤엄치듯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 친구들이 이렇게 화가 났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이 친구들은 휘감고 잡아당겨 숨조차도 못 쉬게 하는 것이었다.


                                                   [태풍의 노래(제주), 2021]


그렇게 기차의 기적 소리는 밤을 불러오고, 아버지는 이 기차로 퇴근하시면서 큰 고함으로 빨리 밖으로 나가라 하셨고, 옷가지를 챙기시던 엄마에게 호령이 떨어지고, 마구간의 소, 젖 짜는 염소의 이까리조차도 풀어주지 못하고 뛰쳐나와 냇가의 언덕으로 달아났다. 바로 이어서 여태껏 참았던 냇가의 둑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집을 삼키고 울타리 버드나무만 뼈로 남겼다. 맨몸으로 큰 동네로 갔고 동네의 인정으로 발을 붙이고 살았다.     

태풍이 온단다. 해마다 감당할 수 없는 생채기와 고독과 말문을 닫게 한 태풍이 온다. 아파트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고 신문지를 끼우면서 어릴 때의 두려움이 머리를 감고 돈다.     


태풍의 씨앗은 자연이 심고 사람이 키운다. 자연이 세상에 대한 혐오로 씨앗을 심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생명이든 태어나면 성장하고 더 활발하게 살기를 원하고 바랄 것이다. 자연의 지구에 대한 분풀이가 아니라, 생각을 달리하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온 산들이 개발로 산천초목이 다 파여 나가고 안일한 사람들은 그다음을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한없이 포괄적인 자연도 함께 지내기 위하여 최후 보루의 선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태풍이 오는 날을 공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태풍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먼 미래를 위해서도 자연과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만이 더 빠른 해결의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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