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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Nov 13. 2022

갈대, 제거할 수 없는 생명체

어릴 때 집 근처에 늪이 있었고, 그리 넓진 않았지만, 갈대가 널브러져 있어, 철새들이 늪에서 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갈대가 미꾸라지를 잡거나 붕어를 잡는 데는 아주 방해가 되어 낫으로 쳐내면서 그물질을 하곤 했었다. 갈대숲에 들어 있던 오리가 푸드덕 날아가는 바람에 어쭙잖게 많이 놀란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겨울에 얼음을 탈 때도 갈대 줄기가 얼음 속에 끼어 썰매를 타다 넘어져 정강이를 다친 적도 있고, 그 오지의 촌에 약이 있을 리 만무하여, 그 자리에 누런 고름이 생기고 진물이 배어 나와 바지에 꽉 붙어 꽤 아팠던 기억도 더불어 나곤 한다. 그때에는 단지 갈대꽃을 꺾어 와서 마루에 앉아 실밥으로 묶으면서 방 빗자루를 만들어 엄마한테 칭찬을 들었던 것 외는 갈대는 그렇게 나에게는 필요 없고 괴로운 것으로만 세월이 흘러갔다.     


그 갈대가, 대학 시절 사진에 미쳐, 낙동강 강어귀에 있었던 을숙도에서 석양에 숨은 갈대숲에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한 후 갈대는 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앉아 나의 대화 상대가 되곤 했었다. 썰물 때 낙동강에 맨발로 바지 걷은 채 갯벌 속에 빠진 발이 빠져나오지 않아 엄청나게 고생했던 그래서 기어코 마음에 드는 낙조를 한 컷 얻은 것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지켜 주었는지 모르겠다. 


[을숙도의 낙조(낙동강), 1979]


김해의 먼 산으로 해가 들어갈 즈음에 을숙도의 갈대의 마음은 아마도 나의 마음과도 같았을 것 같다. 그 당시 학보사 신문기자를 하면서 계엄군이 점령한 캠퍼스에 기자증 하나로 들락거리면서 학교 내의 상태를 주위에 알려주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학교는 잠겨 거의 폐교가 되고 강의도 잠겨 있어 혈기 왕성한 젊은 몸이 기댈 곳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였다.   

  

비단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을숙도 강변에 허름한 막걸릿집이 있었는데, 여기에 젊은 학생들이 모여 현시대에 울분을 토하며 없는 돈에 막걸리에 화풀이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아지트가 알려졌으면 많은 학생이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그렇게 갈대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낮에는 갈대의 앙상한 뼈대를 보며, 메말라가는 당시의 사태에 대하여 살점 애는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석양이 될 무릎에는 갈대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햇빛이 마치 꿈을 잃은 청년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때 갈대의 몸부림 소리는 청년들의 울부짖는 소리로 들려왔고, 힘없는 젊은 학생들에겐 어쩌면 힘내라는 함성과 같은 소리로 들려오기도 했다. 특히 갈대꽃이 석양에 비칠 때면 다른 꽃들은 씨앗을 맺어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데, 못생겨 미안함을 알았든지, 씨앗도 만들지 못하는 것의 우짖는 소리는 학생들에 더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갈대는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않았다. 그 뿌리로, 씨앗으로 번식하는 그 무슨 생물에 비교하여도 못지않게 뻗어 나가 지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산다. 심지어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도, 몽땅 태워 버려도 또 솟아난다. 결국, 갈대는 제거할 수 없는 그러한 생명체이다. 그것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 주었다. 갈대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언제부턴가 갈대의 위력을 알기 시작했다. 꺾어도, 꺾일 수는 있지만, 뿌리 자체는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끈질긴 생명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되돌아올 즈음엔 젊은 학생들 사이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그 누구도 우리의 존재를 없앨 수 없다는 생각과 갈대처럼 뭉치면 그 어떠한 힘도 우리를 제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다가왔다.     


힘이라고는 전혀 없던 젊은 학생들에게서 힘이 솟아나게 되고, 결국은 부산 극장 앞으로 모여, 한 줄은 경찰들이, 맞은 줄은 학생들이, 오후 3시 애국가를 불렀다. 애국가가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학생들을 낚시로 물고기 낚듯 채어 갔다. 거리 상가들의 어른들은 자식과 같은 학생들을 숨겨주고 먹을 것을 제공하며 심지어 잡아가는 경찰들에게도 대들기 시작하고, 경찰의 수보다 젊은이를 포함한 시민들의 수가 많아져 가서, 결국은 갈대의 외침처럼 바로 다음 날 자유는 우리 곁으로 함성을 지르며 돌아왔다.      


지금의 갈대는 젊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와 있다. 그냥 못생긴 꽃이 아니라 그렇게도 편하게 내 곁에 와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취직하러 무진 애를 쓰고 있을 즈음에 그렇게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징표로써, 옛날과 달리  , 이 가을 석양 속의 갈대꽃이 푸근한 어머니의 얼굴로 맞아주어 셔터를 누르는 상큼한 소리로 달라져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갈대는 해야 할 말을 바람 소리에 실어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우리의 마음에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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