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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Nov 27. 2022

가을 잔상

누구나 살아가면서 올해가 최고 힘든 해였다고 생각하며 힘을 다해 하루를 버티고 살 것이다. 나 역시도 올해는 최고 힘든 한해라고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 그도 그를 것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국립병원 신세를 지고, 척추 협착증으로 척추 내시경 수술을 받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종기에 또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는 두 번 수술을 하여 총 3번의 수술대에 올랐다.  나는 스스로 기네스북 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기네스북에 올려 볼까하고 생각했다. 그 전에 2018년에 국제저널(Micro Cell factory, BMC, IF=6.35)에 실린 나의 논문이 3년간의 인용지수가 472번(157/년)으로 그 어느 연구자도 도달할 수 없는 실적을 올린바 있고, 2022년 지금 현재에는 696번(https://www.webofscience.com/wos/woscc/full-record/ WOS:000427028300001)으로 되어있다. 1년에 100번 이상의 인용지수는 도달하기 매우 힘든 수치이며, 이를 기네스 북에 등재하고자 접촉했더니, 의외로 감당하기 어려운 답이 왔다. 처음 접수하는 데에는 수긍할 수 있는 비용이었으나, 실제 등재하려고하면 영업팀과 접촉하라는 담이 왔다. 이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었고, 학자가 생색내는 형태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높아 추진하는 것을 보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일 년에 3번 수술대에 오르는 일은 희귀한 일이라 생각 했으나, 이일로 기네스북에 올린다는 것은 참 스스로도 답답한 일임에 틀림없었고, 마음 다스리기는 어려우나,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을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세상에 알릴까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전번의 기억도 있어 중단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나는 올해의 가을을 맞았다. 봄이 코로나 속에서 아프게 다가오고, 여름은 공감할 수도 없게도 마음 저리게 보냈다. 여기에 연이은 가을맞이는 실감할 수도 없게 나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면 잡힐 것 같던 가을이 내 손을 거부하며 고추잠자리처럼 멀리 날아가 버리곤 한다. 해마다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이 손에, 마음에 닿지 않는다.    

  

누구로부터 다친 마음은 아닌데 그저 서럽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쳐다보면 외롭고 마음 저려온다. 작년에는 강의에 앞서 나의 낭송시를 스크린에 띄우고 학생들에게 의미와 가슴에 정서를 품을 수 있도록 했었다. 그 때 행복했던 기억에 젖어, 이제는 학생들에게 출석부 순으로 돌아가며 자신이 좋아하거나 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팝송을 스크린에 띄우고 듣게 한다. 어정쩡한 나의 마음이 가시어 지기도 하고 학생들에겐 따스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괜찮은 것 같다. 가사가 이쁘면 해석을 하여 젊은 청년들의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한다. Near, far, wherever you are, my heart will go on (to you) 처럼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이번 가을에는, 내가 살고 싶어 발버둥을 쳤던 것과 같이, 우리집 테라스에 지금쯤은 사그러지고, 말라가야하는 풀과 꽃들이, 새삼 새잎을 내고, 꽃봉오리를 맺고,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비단 사람인 나뿐만 아니라 자연 소속의 생명들도 겨울 앞에 도전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마음 찡하다.      


                                    [입동이 지난 후 다시 핀 할미꽃(2022/11/22)]


자신의 생명이 사람의 위해를 받아 의지에 따라 살 수 없는 슬픈 동물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릴 때 산속 무덤의 주위에서 고개 숙여 피어, 주인을 애닯토록 지키는 할미꽃이 있었다. 오죽하면 할미꽃이란 이름을 가졌을까, 먼저 가신 할아버지를 애타게 그리고, 또 세월의 장난으로 자신보다 앞서간 가족들에 대한 가슴 저린 일들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여 참회하듯 피어나는 꽃, 아마도 한이라기보다는 그리움을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크게 안고 사랑을 피워내는 그 꽃,  봄에 피는 할미꽃.     


그 할미꽃이 입동이 지나 완전히 시들어 가더니만, 다시 새싹을 틔우고, 그리움을 솟구치더니 큰 소리 한번 없이 고개 숙여 피었다, 이 늦은 가을에. 그러게, 그렇게 큰 그리움이 없었다면, 저렇게 애태우며 피어날 수 있었을까?     


사람도 애타게 그리우면 눈물을 짓는다, 그래서 기다림을 꽁꽁 묶어 씨앗을 만들어 할미꽃의 마음으로 심는다. 그렇게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고 잔잔한 싹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년에도 늦가을에 할미꽃이 다시 한 번 더 피면, 올 가을의 애잔하고도 기쁘게 맞지 못한 마음이 조금은 덜 안스러울 것 같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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