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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길 Dec 04. 2022

가을을 사랑해야 할 때

동녘이 발갛게 타오르면서 눈까풀에 걸린 눈곱을 떼어내기라도 하듯이 앞을 가리는 구름 사이로 빼꼼히 나를 쳐다본다. 마치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알기라도 하듯이 빙그레 웃고 있는 모습에서 어제의 술기운이 부끄럽게 만든다. 나도 저렇게 어두움 없는 얼굴로 웃어보고 싶은데 마음엔 항상 무거운 짐에 억눌려 미안하기만 하다.     


조막손 단풍나무의 귀여움에 차츰 정이 들어가는데 코로나에 짓눌린 듯 소슬바람에도 맥없이 떨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더구나 오늘은 독감, 폐렴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라 캠퍼스의 길을 따라 체육관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전설 같은 봄날을 지냈던 벚나무도, 한여름의 하늘을 하얗게 팝콘처럼 튀겨놓았던 이팝나무도, 그 절정의 시기를 잊기 아쉬운 듯 낙엽이 되지 않으려고 애잔히도 매달려 있다. 나의 삶도 긴 계절 동안 그 멋진 시기를 가졌던 배룡나무처럼, 좋았던 시기가 참으로 많았거나, 있었을 것 같은데 잠시 걸어가는 길 위에서는 추억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매일 술 마시고 흥청거린 것도, 하루가 애를 먹여 밤하늘이 쪼개어지도록 고함을 친 일도 없는데, 단적으로 참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욕심이 산더미처럼 쌓였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봄이, 여름이 나와 같이 뼈가 헐리도록 노력을 했음을 안다. 그래서 흐름을 따라 등을 돌리고 지나가도 그저 그들의 용감하고 지혜로웠던 것만 내 머리의 역사에 쌓여왔다. 지금 언저리에 서 있는 가을은 봄, 여름을 생각하며 진정 즐거웠노라고 말하고 있을까, 아니면, 곧 겨울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너무도 긴 세월에 세뇌되어 움츠리며 마음을 떨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도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애원했을까.     


누구에게나 있었을 영광과 영욕에 대하여 뒤돌아보고, 이 아픈 계절에서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가을은 노력한 것만큼 수확하는 계절이다. 기쁜 계절이고 감사해야 할 계절임에도 감사하기 전에 왜 아픈 마음이 들까.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픔으로 자리 잡는 것일까, 잔잔한 아픔은 찬란했던 추억으로 덮어져야 할 것인데, 조그마한 생채기가 더 아픔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살갗을 스치는 갈바람은 나의 품에 안겨 더욱 사랑해 달라고 속삭이고 있다.   


  

                             [이젠 가을을 사랑해야 할 때: 가을 달(2022)]

가을.     

그 무한하고도 가지고 있는 감성은, 말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표현할 수 없이 나와는 다른 차원에 올라 있다. 이제는 내가 가을을 사랑해야 하는 때가 된 것 같다. 가을은 나를 소리 없이 품을 수 있지만, 나의 어떤 능력으로도 가을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을, 이제는 내가 너를 알 수 있도록 더 갚게 다가가야겠다. 겨울이 겁이 나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너를 내 가슴이 더욱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 너로부터 더 포근한 기다림을 배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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