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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Jul 25. 2022

해외생활을 하며 퇴화된 능력

더 나은 자신이 안 될 수도 있다 

     올해로서 미국 생활 15 년차를 맞게 되었다. 예전 미국에 나오기 전에는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어 대략 5-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유창한 영어와 매너로 업그레이드 된 나 자신을 상상했던 꿈 많고 철 없던 시절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이 곳에 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이 퇴화되었다. 


1) 공감 능력이 퇴화되었다.

     

     정착 전까지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현상 및 사건에 대해 마음을 연결하는 스위치를 강제로 끄는 연습을 했다. 예전에 비해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기는 하나, 그 주체가 타인일 경우 해당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는 능력이 사라졌다.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을 위로하거나, 좋은 일을 겪은 사람을 축하해 주어야 할 때 나는 감정을 꺼버린 채 목석처럼 가만히 있게 되었고 입으로는 상황에 맞는 말을 하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부부 싸움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예전의 어떤 공감 능력 기르기 주제의 세미나에서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낼 때는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면서 'A야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았구나' 라고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집사람에게 사용해 보았으나 결과는 더 좋지 않았다.


(Turn your heart into stone - 사진 출처: https://www.mhmcintyre.us/living-not-yet-dealing-stony-heart/)


2) 한국어 능력이 퇴화되었다. 그렇다고 영어 능력이 향상된 것도 아니다.


     내향적 성향 + 연구개발직 + 1세대 이민자 이 세 가지 조합을 가진 나는 하루 중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다. 직장에서 필요한 전공 + 비즈니스 + 회의 영어는 어설프게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데까지는 왔지만 Small talk 이나 아이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온전히 알아듣기 어렵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다 보면 확실히 한국어 능력 역시 퇴화됐음을 느낀다. 지금 내 문장 수준은 고등학생 때의 문장과 차이가 거의 없다. 다양한 글을 쓰는 방법이나 타인에 대한 관찰, 더 세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력은 오히려 그 당시에 비해 줄어들었다. 


3) 사회성이 퇴화되었다.    


     입이 재앙의 근원임을 서서히 느끼며 해야 할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 시 의도와 다른 오해를 사게 될 일이 많았다. 좁은 교민 사회에서도 뜻하지 않은 말 실수로 인해 관계가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대화인데, 오해를 사기 싫어 대화를 기피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일이 없으면 대화하지 않는, 사무적인 관계만 지속했으며 누군가가 나의 bubble을 깨고 들어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My bubble - 사진 출처: https://www.youthdynamics.org/thats-my-bubble-the-case-for-personal-space/)


     어린 시절 AI 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어이없는 소리라 생각했다. 기계가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놀랍게도 '혹시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AI 의 기술이 발전해서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가 '기계와 같은'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같은 기계' 보다는 '기계와 같은 인간' 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이 더 무서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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