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노래 중 가수 조용필 씨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 있었다. 듣다 보면 묘한 중독성이 있어 10대 시절의 나도 카세트 테이프를 가져와 종종 듣곤 했는데 특히 좋아하던 부분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이 대목이었고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 얼어 죽는 표범을 나름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덧없이 세월은 흘러 지구 반대편 한 도시에서 나는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삶을 반복하며 킬리만자로는 고사하고 우리 동네 남산 (영문명 South Mountain) 조차 올라가기 힘든 지루한 일상을 살아왔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홈리스 분들도 계시는데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조용히 외노자/행인 A 로 사는 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산 흔적이라도 남긴 건 오로지 자식 셋 낳은 것 뿐이고 21 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지도 않다.
소싯적에 썩은 고기는 더럽고 나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찾으려 산정 높은 곳으로 올라가던 표범은 가끔 A급 고기도 먹었을 테고 하이에나 떼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화려하고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올라갈 수 있는 정상의 자리, 멋져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불타는 영혼이 서서히 잠잠해지고 온전히 산에 올라갈 수 없는 나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을 때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그것은 끊기지 않는 '고기' 일 것이다. A급일 필요도 없으며 썩은 것일 필요도 없는 그저 '고기'일 뿐이다. 나는 하이에나를 과연 업신여길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고기' 를 위한 삶을 살아오게 되었다.
'고기'를 얻는다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았을 때 하이에나는 실로 대단한 생물이다. A급이든 썩은 것이든 주어진 그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취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이전에 필요한 것부터 먼저 해결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오늘도 아이들이 남긴 잔반을 처리하며 중년이 된 소년은 썩은 고기를 먹는 하이에나로 변신했다. 개강 1주일 전에야 강의해야 할 과목을 알려준 학교의 친절함에 감사하며 소년은 금액 확인 후 썩은 고기를 멀쩡한 고기처럼 보이도록 잘 씻기 시작했다. 비가 온 후 돋아난 잡초에 불평하는 세입자를 위해 소년은 손수 발톱으로 풀을 뽑았다. 월요일 오전까지 데이터를 요구한 친애하는 고객사를 위해 소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말 내내 이를 열심히 갈았다. 열심히 갈다 보니 이빨에 낀 찌꺼기도 빠져 더 이상 악취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그대로 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소년 안에 잠들어 있던 표범은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하이에나가 된 소년이 평지에서 평안히 생을 마감할 지, 표범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 모험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다가올 세월의 무게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