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색무취 Aug 26. 2022

구직자의 동기

마음을 알고 싶다

     오래간만에 팀의 인원을 충원하기로 결정해서 후보자 인터뷰 과정에 참여했다. 최근 3000 명 가까이를 Layoff 하기로 발표한 Ford 사 및 매일마다 수백명 씩의 사람이 잘려나가는 불황기에 다행히 몸담은 팀에서 향후 2년동안 참여할 프로젝트를 따게 되어 오히려 사람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매니저도 아니고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중견 엔지니어 중 하나인 나로서 크게 할 일은 없지만, 인터뷰 과정에 성실히 참여하고 좋은 피드백을 주는 것은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하므로 이력서 파일을 열어 후보자 정보를 보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는 유명한 A사이고 (보통 사과농장이라 부른다...) 좋은 주립대에서 학위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훌륭한 조건이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나의 직장 동료 중 한 명 또한 예전에 캘리포니아 사과농장에 있었지만 그와 그의 와이프는 모두 애리조나 출신이었기에 육아와 정착을 위해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지원한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 부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인터뷰에 참여할 때에는 주로 구직자의 직무 능력이나 스킬을 검증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질문을 했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그런 것보다는 구직자의 동기를 알아보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선 별 볼일 없는 나 스스로가 좁은 잣대로 다른 환경에서 경험을 쌓아 온 구직자의 능력을 검증한다는 것이 합당하지 않았고 사람이 어떤 특정한 경험 또는 경력을 쌓아 오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시대적 상황과 조직 내의 환경에 지배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동기는 구직자의 마음의 방향과 연결되기에 동기가 맞는 사람을 채용할 경우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에너지와 뜻이 모이게 될 것이므로. 


(알기 힘든 마음: 출처: Samuel Zeller, https://jannikestoehr.com/job-9-beraterin-fuer-selbstentwicklung/)


    나의 개인적 경험을 비추어 봐도 구직의 동기는 꽤나 중요한 것 같다. 대략 2년 전 한 대기업과 인터뷰를 볼 일이 있었는데 이 회사의 경우 광고한 포지션은 애리조나 지역이었으나 실제 연락온 곳은 오레곤이었다. 인터뷰 중 두 가지 측면에서 나는 이 회사에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첫째는 애리조나에서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오레곤으로 이주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미 사 놓은 애리조나의 집을 처분하고 이주하는 것은 자산 형성에 있어 좋지 않은 선택이 될 확률이 높았다. 두 번째는 복잡한 보고 체계였다. 워낙 큰 팀이다 보니 전체 매니저와 기술 리드 외에도 파트장들이 여러 명 있었고 보고 시 나의 매니저 외에 이들에게도 함께 내용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험상 이런 복잡한 조직에서의 인간관계는 상당히 어렵고 정치력이 필요하기에 나는 인터뷰 말미에 감사하지만 가기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일 자체만 본다면 나름 새로운 기술들을 배울 수 있는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지만 내가 이직 시 회사를 선택하는 주된 동기는 가족 생활의 안정, 꾸준한 자산 형성, 그리고 건강한 삶의 유지였으므로 거절하게 된 것이다.         


     이번 구직자의 지원 동기는 무엇일까, 이 생각을 계속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그의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 (구직자 L 씨) 는 현재 A사의 기술직군이기는 하지만 개발을 주도하는 팀이 아닌 서포트 조직에 속해 있어 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 더 주도적인 일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고 했다. 일단 반 정도는 퍼즐이 풀린 느낌이었다. 경기침체 시 Layoff에 취약하고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 현 부서보다는 회사를 바꾸더라도 개발 위주의 팀으로 방향 전환을 해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로 이주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인터뷰 이후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의 매니저는 아주 능숙하게 이 부분을 해결해 나갔다. 미국 회사의 인터뷰 과정 중에는 구직자가 먼저 이야기하기 이전에 개인 및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인터뷰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이 때문에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구직자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식사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 팀원들이 서로 자신의 취미와 일상을 이야기하자 L씨 또한 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이 타이밍에 매니저는 생활비가 저렴한 애리조나의 장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L씨는 이에 대답하면서 와이프가 생활비 저렴한 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현재의 수입으로는 실리콘 밸리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으며 자신의 이웃도 최근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A사 중견급 이상 직원의 연봉은 대단히 높지만 L씨는 아직 그 단계로 가기까지 수년간 경력을 더 쌓아야 하고, 일반 하드웨어 엔지니어의 연봉으로 캘리포니아의 살인적인 주거비를 감당하며 자산을 비축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추락한 돈 가치와 폭등한 부동산 가치는 이렇듯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개인의 커리어, 가족의 요구, 경제적 이유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이 나오면서 L씨의 지원 동기는 이제 명백해진 셈이다. 이후 L씨가 우리 회사에 계속 남아 오래도록 일을 할 지, 몇년 뒤 다시 연봉을 올려 실리콘밸리로 복귀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L씨 개인의 선택일 뿐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며칠 뒤 피드백 과정에서 난 L씨의 동기가 납득할 만 하며 팀에 좋은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매니저에게 이야기 했다. 동료들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아, 최종 오퍼를 주는 것으로 결정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시 L씨의 솔직한 태도와 실적을 과장하지 않는 소통 방식이 긍정적으로 비춰졌기에 L씨 미래를 위해 좋은 결정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터뷰 과정은 이렇듯이 한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이전엔 모르던 한 사람의 배경과 상황에 대해 배우고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여러 번 반복하더라도 여전히 어렵다. 이 과정은 구직자 또한 인터뷰에 참여하는 면접관들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서로 조심하면서 좀 더 사람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다면 이후 구직자가 오퍼를 거절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지 모르는 좁은 세상에서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N잡 열풍과 나의 겸직 체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