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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Sep 21. 2022

퇴사의 물결 그리고 남은 자의 마음

     유난히 퇴사자가 많았던 한 달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최고의 설계자로 꼽히는 S 씨를 필두로 베테랑급 인력 3명이 잇달아 회사를 떠났다. S씨의 퇴사는 특히 충격적이었는데,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회사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였으므로 그를 경쟁사에 빼앗긴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직의 사유에 대해 퇴사자는 보통 말을 아끼게 되므로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연봉에 대한 불만이 주가 된다. 치솟은 물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웬만한 연봉 상승으로는 능력자들의 기대치를 맞추기 힘들게 되었고, 회사에서 책정한 연봉 상승률은 이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20% 이상의 연봉 상승을 원한다면 이직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에서 받는 연봉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위 능력자의 경우 현재 인플레이션 상황은 더 좋은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곳 저곳에서 퇴사 인력이 급증했으므로 실력 있고 검증된 인력에게 지금까지의 업계 상식을 뛰어넘는 연봉을 베팅하는 경우를 최근 자주 보고 있다. 경험상 회사를 다니며 근로자가 갑이 되는 순간은 보통 두 번 찾아오는데, 첫 번째는 잡 오퍼를 받고 연봉 및 조건을 협상하는 기간이며 두 번째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려 하는 순간이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이를 잘 이용하여 연봉을 늘려 다른 곳으로 가거나, 현 회사에 남아 승진을 한다.




     이들이 빠진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보통 중위 능력자와 신입이다. 주춧돌이 빠진 자리를 메꾸면서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burnout 의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상황이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론은 매일마다 인력 부족, 완전 고용 상태를 광고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적은 연봉을 받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든 것이 현재의 상황에 더 적합해 보인다. 투자자들의 수익을 훌륭히 맞추어 주려면 계속해서 근로자들을 쥐어짜야 하는데 이 또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해도 폭등한 집세를 감당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렵다면 차라리 일을 하지 않고 정부 보조를 받으며 사는 길을 택하기로 한 젊은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

 

     젊은이들을 구하기 힘들어지니 이 자리들은 외국인들이 대체하게 된다. 비자와 신분을 무기로 손쉽게 부릴 수 있는 외국인들은 자본주의 조직의 좋은 먹잇감이다. 경험 상 회사보다도 이 경향이 더 심한 곳은 학교이다. 착취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은 우수한 교육을 받은 수 많은 인재들을 저 연봉과 비정규직으로 노예화하는 데 성공했다. 


     아랫돌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늘리는 행태를 투자의 관점에서는 '폰지 사기'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구조 자체가 착취 기반의 폰지 시스템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윗돌이 되어 아랫돌을 빼어먹지 못하면 떠날 때까지 계속 고통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덕성이 상실되고 정치가 난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당장 다음 달에 외국인 신입이 두 명 들어오기로 했다. 역시나 똑똑한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이들을 고용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그리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누군가는 떠났다. 그리고 그의 일은 상당수 나에게 돌아올 것이고 실제로 오고 있다. 열심히 일하며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나의 가치를 올리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른다. 예상했던 대로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는 누군가의 정치적 행동 또한 경험하고 바라보게 된다... 쓸데없이 이런 곳에 마음 쓰고 싶지 않다. 이딴 것 보다는 중년에 다다른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윗돌이 되어 누군가를 부리며 사는 것도, 아랫돌이 되어 고통받는 것 역시 싫다. 조직의 이름 따위를 나의 자아에 투영시키고 싶지 않다. 예전부터 나는 자유를 원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스템이 싫다면 시스템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역시 구동중인 Plan B를 빨리 안착시키는 것이 자유인으로서의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사로운 감정, 조작된 뉴스와 어지러운 인터넷을 뒤져 봤자 어차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속일 수 없는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때 어지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나 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게 된다. 쓸데없이 윗돌이 되기 위해 괴물처럼 살지 않을 것이며 억지로 아랫돌이 되어 고통받지도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 곳에 있는 산과 같이 고요하고도 단단한 마음을 지키며 자유의 길을 향해 그저 계속 걸어갈 뿐이다.                 


Grand Canyon - South 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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