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에서 플로리다로
회사 업무로 지난 주말부터 한 주간 플로리다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다녀왔던 곳이라 딱히 설레거나 뭔가를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어차피 사축으로서 종일 일을 하다 돌아오는 것은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회사 사람들을 모아 진행하는 Summit 형태라 그런지 호텔에 돈을 쓴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럭셔리한 호텔보다는 인심 넉넉하고 아침도 끼워서 주는 저렴한 여관을 좋아하기에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저것 볼 거리가 있어 눈은 심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의 주가는 경제 환경 상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돈을 썼으니 이번 분기 보너스는 거의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있는 동안이라도 볼 것 보고 업무상 만날 사람들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나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회사 관련 출장이 그렇듯이 집에 돌아오고 나면 그 곳에서의 일들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공항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던 시간들, 낯선 곳에서 택시/우버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네 명의 우버 드라이버를 만났다. 두 사람은 영어를 말할 수 없어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고 나머지 두 사람과는 제법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다. 편의상 A-B-C-D씨로 하겠다. 일로 엮이지 않은 관계이니 편하게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애리조나 우버 드라이버 A씨는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에서 왔다고 했다. 한동안 화제가 되었고 미국 최고 수준의 수질을 자랑하는 Flint 와도 멀지 않아서 이것 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았다. A 씨는 이에 대해 유튜브에 종종 나오는 디트로이트 관련 Footage 영상들 상당수가 사실이며 자신이 살던 동네 상점들도 모두 방탄 설비가 기본이라고 말해 주었다. 디트로이트를 떠날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으며 약 5년 전에 이혼을 한 이후에는 자유롭게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살고 싶어서 트럭 운전수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 16시간 이상을 운전하며 한 달에 $20,000 을 벌었던 것이 자신의 최고 기록이라는 얘기를 덧붙이면서. 이젠 나이도 있고 따뜻한 곳에서 머물면서 편안한 일을 하고 싶어서 우버 드라이버가 되었다고 한다.
플로리다 우버 드라이버 B씨는 콜롬비아에서 온 여성 이민자이며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애리조나에도 멕시코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식당이나 건설현장, 집 수리 등의 업종에서 일하기에 실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우버에서 일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플로리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이었다. 플로리다 사람 상당수가 스패니쉬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시작하고 보는 용기가 훌륭해 보였다. 한동안 나태했던 정신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플로리다 우버 드라이버 C씨 역시 콜롬비아에서 온 남성 이민자이며 그는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점심으로 사과 하나만을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근육질의 다부진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게 에어컨 온도와 고객의 반응을 계속해서 살피는 세심함을 보였다. 생업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3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하며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대화가 계속되었다.
애리조나 우버 드라이버 D씨는 시카고에서 6개월 전 애리조나로 이주했으며 군에 입대한 아들과 최근 대학에 입학한 딸 근처에 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좋고 싫음의 표현이 나름 확실한 중부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 곳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은 꽤나 어렵다고 한다. 이 분의 말대로 몰몬교 인구가 많고 종교적 색채가 사람들의 삶의 정서에 깔려 있는 중서부 지역은 캘리포니아의 영향을 받아 개방적이면서도 기존의 보수적인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는 재미있는 곳이다. D씨는 이어서 '왜 이곳 사람들은 별 필요도 없는 픽업트럭을 모는 데 그렇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했다. 이미 미국의 10대 도시권 중 하나인 피닉스 메트로는 농장일과는 거리가 먼 상업지구가 대부분인데 여기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카우보이로 여기고 있다는 말에 나는 공감했다. 실제 내 동네 이웃 사람들을 보더라도 트럭/오프로드 차량을 몰면서 컨츄리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시카고 출신 D씨의 눈에는 이 곳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D씨가 생각하는 애리조나의 장점은 계속 여름옷만 입어도 4계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5대호 지역의 추위에 단련된 D씨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낮 기온 화씨 60도 이하로 내려가면 피닉스 지역 사람들은 보통 춥다고 난리를 치는데 북쪽에서 사시는 분들에게 이 날씨는 보통 밖에서 쾌적하게 프리즈비 게임을 할 수 있는 좋은 날씨라고 지인 분들께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두 지역 모두 최근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애리조나의 경우 캘리포니아, 북부 5대호 지역 및 멕시코에서, 플로리다의 경우 뉴욕을 포함한 뉴 잉글랜드 지역 및 남미에서 주로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따뜻한 날씨와 저렴한 생활비, 국경 근처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도시의 모습도 서서히 바뀌어 가는데,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주변 환경들을 체험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며 이런 변화들을 느끼게 된다.
플로리다의 우버 드라이버 및 요식업 종사자 상당수가 쿠바, 콜롬비아 등지에서 온 이민자이고 애리조나 건설업 및 집 수리/관리업 종사자 대부분이 멕시코 출신 이민자인 현실을 볼 때 미국 사회는 이렇게 이민자들을 통해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 밸리의 H1B 인력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는 화이트칼라 저 임금 이민 노동자 집단이다. 출산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인구 감소 시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는 당면한 노동력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올해 들어 이민청 및 재외동포청 설립에 대한 내용이 거론되었고, 최근 재외동포청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내용 또한 들린다. 정부가 재외동포청을 통해 해결 및 수급하고자 하는 인력은 어떤 분야의 사람들일지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