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 로터리클럽-Annapurna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인도에서 네팔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맥로드간즈에서 델리로 가는 길은 깊은 계곡을 관통하는 길로 가드레일도 없고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도로인데 버스기사는 시바신을 모시는 분인지 운전이 매우 파괴적이었다. 밤새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낭떠러지도 떨어질 듯한 시바적인 헤어핀, 산을 내려와서는 무한 급브레이크, 한국인 관광객을 태우고 개선한다는 듯 당당하고 끊이지 않는 경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델리에서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는 또 어떤가. 히말라야 자락에 위치한 카트만두는 지대가 높은 도시인 탓인지 난기류가 매우 심했다. 100미터는 떨어진 것 같은 터뷸런스 한방에 손바닥은 흥건히 젖었고 난 파일럿이 힌두신도-특히 시바신을 모시는-가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비행공포증을 얻었다. 포카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은 왕복 1차선 도로였고 인도 운전기사의 호연지기에 질 수 없다는 듯 네팔 운전기사 역시 목숨을 아홉 개는 갖고 있는 것 같은 운전솜씨를 보여줬고 내 손바닥은 내내 허벅지에 다소곳이 올려져 애꿎은 바지를 적셨다.

왜 이렇게라도 포카라로 가야 했을까.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으로 에베레스트를 보면 돌과 눈 밖에 없다. 8천 미터 고지를 올라갈 엄두도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해발 4130m 밖에 되지 않고 그곳은 일반인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코스이기도 했다. 숲을 지나며 수많은 산악마을을 지날 수 있으며 멀리 보이는 설산과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안나푸르나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안나푸르나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달았지만 나와 동행은 험난한 여정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일단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포카라에서 한숨 돌리기로 했다.

4000m 이하의 안나루프나는 푸르다

며칠을 쉬고 산에 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국립공원 입장권을 사고 짐을 점검하고 추워질 것을 대비해 플리스 재킷도 준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안내해 줄 가이드와 짐을 들어줄 포터를 고용해서 오르지만 우리는 그럴 만한 돈이 없었고 내 감과 지도를 보는 능력을 믿고 우리는 달랑 지도 한 장과 배낭, 경등산화에 청바지를 입고 산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등산로 입구에 내리니 도봉산 아래 줄지어 들어선 가게들처럼 많은 가게들이 있었지만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무심히 지나쳤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섰을 때 나는 ‘드디어 안나푸르나구나’ 하는 감회에 휩싸였지만 동행은 그렇지 못했던 듯했다. 우리나라의 산처럼 나무와 계곡을 지나며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오르는 등산을 기대했는데 초반의 등산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차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긴 했지만 흙길이라 차라도 지나가는 경우 우리는 먼지를 한참 뒤집어써야 했다. 지루한 도로를 올라가다 보니 더 지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동행의 짜증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산행을 포기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한참을 올라 첫 번째 롯지에 짐을 풀었을 때 동행은 심각하게 내려갈 것을 고민했다.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버텼고 결국 우리는 다음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다.

착잡한 마음에 밖에 나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한국인 아저씨 세 분이 식사를 하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풀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소주 한 잔이 갑자기 간절해졌다. 방으로 돌아가 무리해서 들고 올라온 마시다 남은 위스키 반 병을 들고 그들의 술자리에 정중히 난입했다. 어른들은 의외로 나를 반겨주었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왔느냐며… 내성적인 나지만 3주가량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다 보니 소주 한잔이 절실해 넉살 좋게 위스키 병을 내밀며,

“한국말이 들려서 찾아왔습니다. 이건 빈 손으로 오기 뭐해서 들고 왔어요.”

소주 한잔 달라는 말이었다.

아저씨들은 자리를 하나 내주었고 당연히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내게 내밀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온양의 로터리클럽 회원들이었다. 세 분 중 한 분은 내 기억에 부회장쯤 되는 분으로 안나푸르나가 처음이 아닌 분이었다. 그분이 지난번에 왔을 때 어느 고산족 마을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그 마을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 마음에 걸려 귀국 후 로터리클럽에서 회의를 열어 마을에 작은 수력발전 시설을 지어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발전시설이 완공되어 다른 회원 두 분과 완공식을 하러 가는 중이라 했다. 부회장님 외에 한 분은 온양에서 장례식장을 하시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건설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이 건설업을 하시는 분이 참 재밌었다. 산에 올라가기로 하고 따라왔으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싫어 그분을 태우고 올라갈 말을 빌려 혼자 말을 타고 올라가는 중이라 했다. 술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비행기의 술을 거덜 낸 것도 모자라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머무를 롯지의 맥주를 모두 마시는 것이 목표라 했다. 안나푸르나의 롯지에서 파는 맥주를 비롯한 공산품들은 전부 포터들이 직접 짊어지고 얼라가 공급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때문에 고도가 높은 롯지일수록 맥주 값이 올라갔다. 돈 좀 만지던 분들이라 그런지 고지의 사치스런 맥주값 정도는 아랑곳 없는 듯했다.

그들은 마을 주민을 위해 전기밥솥, 전기담요 등을 준비해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일행이 많았다. 심지어 한식을 요리해 줄 요리사까지 대동했다. 실크로드를 넘어가는 대상까지는 아니어도 윈난에서 티베트로 가는 상행 정도는 되는 듯한 규모였다. 술이 들어가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장례식장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혼자 가기엔 위험한데 일행은 없나?”

“동행이 있는데 그 친구는 내일 내려가겠다고 해서요.”

첫날 산행의 고됨과 경치에 실망해 내려가겠다는 동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에 장례식장 사장님은,

“이렇게 함께 온 것도 그쪽에서 많이 양보해 준 것 같네. 여행은 또 올 수 있는 건데 친구를 잃으면 쓰나. 숙소로 돌아가면 천천히 올라갈 테니 함께 가자고 잘 달래 보게.”

점잖게 말씀하시는 것이 마음에 와서 닿았다. 베이스캠프에는 정말 가고 싶었지만 포기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산에 올라온 것은 꼭 어디까지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를 수 없는 산을 올려다보며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눈에 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베이스캠프까지 가겠다는 욕심에 정작 산행, 여행의 중요한 점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을 더 마시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좋은 말씀에 감사드리고 안전하게 여행 잘 마무리하시라고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산행 중에

숙소에 가니 동행은 밖에 나와있었다. ‘나는 첫날은 롯지가 멀어 어쩔 수 없이 힘들었지만 내일부터는 이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올라갈 테니 여기까지 온 거 같이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그도 내가 사장님들과 술을 마시는 동안 현지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 그 가이드 말이 여기까지 왔으면 앞으로의 산행은 아주 쉽다고 알려줬고 눈앞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내려가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말해서 자기도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마침 내가 그렇게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했고 열흘 간의 산행을 함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록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오르지 못했지만 천천히 일주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산맥의 일부를 최대한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로터리클럽 사장님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홀로 산에 오를 수 있었을까. 사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나도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단지 동행이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있을까. 알면서도 잊고 간단한 것인데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운이 좋아 이 모든 것을 간파한 사람들을 만나, 그렇게 원하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지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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