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이야기
2018년 어느 날 저녁, 문득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마음이 들어 무작정 전주의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했다. 당장 출발해도 체크인할 때쯤이면 9시가 넘을 터라 게스트하우스에 늦게 체크인 가능한지 묻기 위해 전화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친구분들과 한 잔 걸치고 있는지 주변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그는 몇 시를 예상하는지 물었고 9시 반이 넘을 것 같다는 내 대답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한 통화를 마치고 동네 앞 편의점 가듯 전주로 내려갔다.
KTX를 타러 용산역으로 가는 길에 그래도 너무 늦게 체크인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술을 좋아하는 것 같은 사장님을 위해 싸구려 와인 한 병을 샀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처럼의 기차여행이지만 밖은 너무 어두웠고 마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심란했기에 설렘이나 기대 따위는 없었고 그냥 집을 떠나 아무 방향이나 잡고 정처 없이 돌아다닐 때의 무심함만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당시로선 답답한 마음을 날려버릴 재밌는 이야기와 재밌는 이야기를 품은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장님은 예상대로 얼큰하게 취한 채로 나를 맞았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와인을 수줍게 내미니 ‘뭐 이런 걸…’하시면서도 선뜻 받아 들었다. 체크인이 늦었다고 뭔가를 사들고 온 내가 기특했던지 그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와인을 같이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묵을 방에 가방을 아무렇게 던져둔 채 로비에서 사장님과 와인잔을 기울였다.
술을 마시며 로비를 둘러보는데 북극에 관련된 두꺼운 화보집이 눈에 띄었다. 잠시 봐도 되겠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셔서 책을 열어보았다. 책은 북극 원정에 대한 것이었고 원정대장은 무려 허영호 선생이었다. 책과 원정대에 관심을 보이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사장님이
“거기 사진에 있는 게 나요.”
깜짝 놀랐다. 사진은 고글과 모자 등에 가려 지금의 사장님과는 매칭할 수 없었지만 흥미가 생겨 원정에 대해 여쭤봤다.
그는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중앙일보에서 은퇴한 전직 기자였다. 사회 쪽 담당자였는지 어느 날 중앙일보에서 허영호를 대장으로 하는 북극횡단 원정대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원정의 혹독함을 담을 수 있게 기자를 원정대에 포함하기로 했다. 그때 그는 대원으로 선정되었고 모든 원정을 함께 했다. 그 책은 원정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는 고된 원정의 처음과 끝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었다. 그리고 담담히 북극 원정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들려주었다.
러시아의 어느 도시에서 헬리콥터로 원정을 시작한다. 필수장비들을 헬리콥터에 싣고 시작 포인트까지 날아갔는데 예정된 포인트에 다다르니 러시안 헬리콥터 조종사가 은근히 제안했다.
“여기서 시작하면 중간에 돌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정대는 그 돌산을 넘어서 시작하는데, 어쩌시겠어요.”
썰매를 끌고 갈 수 있는 눈 덮인 평지는 비교적 쉽게 갈 수 있지만 1인당 몇십 킬로의 짐을 달고 작은 산이나마 넘어가는 것은 평이한 기후에서도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허영호 대장은 그것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원래 예정이었던 포인트에서 원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대원들은 대장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인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가장 험한 산을 오르는 이유는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고 정상을 정복했을 때 오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성취감이 보상이 될 테지만 그 보상은 용납할 수 없는 꼼수의 유혹을 극복한 후에야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었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경고한 대로 돌산을 넘는 과정은 죽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한다. 원정대원들을 지쳐갔고 일부 짐을 버리기도 하는 등 애를 먹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눈보라가 몰아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까지 맞부딪히게 되었다. 그는 결국 1인용 텐트에 들어가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했고 그 공포는 원정대장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내게 웃으며
“그때 허영호 대장에게 엄청나게 욕을 해댔지. 정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욕은 다 한 것 같아. 허대장이 반응하든 말든 텐트 너머로 욕을 쏟아부었지.”
다행히 눈보라는 곧 잦아들었고 그들은 다시 원정을 시작했다. 욕을 한바탕 쏟아부은 탓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탓인지, 미안함을 느꼈던 것인지 그와 대장의 관계는 금방 회복됐고 그는 무사히 원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내가 본 그 책이다.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편의점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너려는데 친구가 갑자기 나를 불러 곧바로 멈춰 그를 바라본 순간, 대형 트럭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가 부르지 않았다면, 그의 부름에 답하기 위해 멈춰 서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선배들과 계곡에 놀러 갔을 때는 또 어떤가.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근사하게 생긴 편평한 바위가 있어 일행은 모두 헤엄쳐서 그곳에 건너간 일이 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지만 짧은 거리였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깊은 계곡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1미터도 남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렇게 죽나 싶을 정도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선배가 내 손을 잡아 꺼내주었다. 그들 중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런 경험을 사장님이 겪었을 죽음의 공포와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과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은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그는 은퇴 후 고향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의 사업장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여유가 있었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을 서로 소개해주면서 함께 다닐 것을 권하기도 했고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 아닌 진주사람들이 가는 진짜 맛집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덕에 나는 다음날 아침 프랑스에서 유학 온 ‘호메인’과 함께 경기전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가 알려준 진짜 맛집을 찾아다니며 답답함을 씻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잊고 그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외국인과 보낸 시간들은 생생하다. 하루를 함께 보낸 프랑스령 기아나 출신의 ‘호메인’은 고려대학교 유학생으로 한국 이름은 ‘호민’이라고 했다. 그와 방문한 경기전에서는 우연히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손을 만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로비에서 스위스에서 온 아주머니와 소주를 마시기도 했는데 그녀는 컨테이너선을 타고 중국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사람이었다. 그 덕에 컨테이너선 여행이란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전화도 인터넷도 잘 되지 않는 그곳에서의 한 달이 넘는 여행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계획을 철저히 세워 놓고 여행하는 타입은 아니다. 한 곳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며 그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만남과 발견을 기대하는 타입인데 전주에서의 우연은 그중 기억에 남는 좋은 여행이다. 활달한 외향적 성격이 아님에도 이런 스타일의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마주칠 수 있는 만남과 발견이 여행을 갈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