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이야기
저희 할머니는 개성 출신입니다. 할머니의 고향이 개성이라서 그런 것인지, 그냥 할머니 집안의 음식이 그런 것인지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께서 하시는 음식은 어린 제 입맛에 너무 원초적이었어요. 김치를 먹다 보면 생선 대가리가 나오고, 늙은 호박에 김치를 익히고, 아끼는 것이 정도를 넘는다 할 정도로 버리는 것 없이 사용하시 것도 있고 전체적인 스타일이 매우 와일드했습니다. 할머니께서 해 주시는 음식 중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이 강된장 정도입니다. 풍요 속에서 자란 탓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외가의 음식과는 외관부터 차이가 많이 났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친가와는 다르게 외가는 제사를 많이 지내는 집이었기에 외할머니는 일상의 음식도 습관적으로 제사 음식 내듯 하셨거든요. 김치를 반찬 그릇에 내더라도 예쁘고 깔끔하게 담고 맛도 충청도 식으로 담백해서 어린 제 입맛에는 제격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친할머니의 음식은 러프해서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음식 중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순대였어요. 시골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피와 내장을 사셨습니다. 그날이면 내장을 빨고, 피를 어쩌고 하고, 그걸 삶는 냄새가 집 앞 잔디밭을 넘어 30여 미터 떨어진 연못까지 피신해도 느껴질 정도였죠. 그 냄새를 피해 1킬로가 넘는 아랫동네 구멍가게까지 피신을 가기도 했답니다.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 냄새 때문에. 할머니의 순대국을.
그런 순대국을 아버지와 형제분들은 정말 너무 좋아하셨습니다.(환장한다고 자평하실 정도지만 집안 어른들에게 쓸 표현은 아니네요.) 할머니께서 순대를 만드신 어느 날 미국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로부터 안부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너는 우리가 순대한 건 어떻게 알고 전화했니.' 하시니 전화기 너머로 간절한 외침이 들렸습니다. 얼려서 비행기로 보내달라!! 40여 년 전에는 기술이 좋지 않아 그렇게는 보낼 수 없었죠. 작은 아버지의 절망에 찬 표정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한국에 오신 작은 아버지를 뵙고 어른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애리조나 투싼에 사실 때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버지가 동태찌개가 갑자기 너무 드시고 싶어 차로 왕복 6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한인 마트에서 동태와 마늘 등을 공수해 오신 적이 있었답니다. 들뜬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물을 끓이고 양념을 풀어 이제 동태를 넣어 완성될 맛과 향을 상상하며 생선의 포장을 열었는데!! 그만 생선이 상해 있더랍니다. 그 말씀을 하시던 표정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아마 순대국 소식을 먼 미국 땅에서 들었을 때도 그런 표정이었겠지요.
저와 비슷하게 저희 어머니도 같은 이유로 순대국을 싫어하셨습니다. 손주인 저는 냄새가 싫으면 피신 가면 그만이었지만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그 냄새를 참아가며 내장을 빨고 피를 처리하는 일을 해야 했지요. 40년 가까이 지난 얼마 전에야 어머니는 바로 그 이유로 순대국이란 것을 한 번도 드셔보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나면 노모를 모시고 서울 근교를 다니며 식사를 함께 하곤 하는데 제가 순대국이 먹고 싶어 위 사진의 순대국집을 모시고 가니 '사실은...'이러시는 겁니다. 참으로 무심한 아들이었구나 싶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순대국을 맛있게 드셨고 순대국이 이런 거라면 이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안심했습니다.
저의 경우 대학을 가고 술을 마시며 자연스레 그간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면서 순대국도 먹게 됐는데 이건 내가 아는 순대국과 너무 다르게 맛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당시에는 이걸 엄청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냥 술을 마시면서 안주로 먹는 정도였습니다. 몇 년 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저도 나이가 들어 어릴 때 가끔 시골에서 뛰놀던 시절을 회상할 때면 문득문득 할머니의 순대국 냄새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너무 아쉬워요. 그걸 그때 먹어보지 않았던 것이… 그렇게 맛있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것이… 이렇게 순대국 노스탤지어를 느낀 이후로 순대국은 단순한 기호음식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죠.
언젠가 큰아버지께 여태껏 드셔보셨던 순대국 중에 할머니 순대국이랑 가장 가까웠던 게 어느 식당의 순대국이었는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찾아가서 추억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큰아버지는 단칼에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면서 ’ 누가 배워놨어야 하는데…‘ 씁쓸한 감정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그걸 누가 배우나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이 지나치게 원초적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아파트에서 만든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도 민원 때문에 쫓겨날 겁니다.
맛있다는 순대국 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그 냄새-원초적인-를 계속 찾는 의미도 있어요.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는 그 냄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