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Mongolia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테를지에서 하루 묵고 나니 일행이 늘었다. 촬영을 담당할 모델과 헤어메이크업, 그들과 짐들을 실어 나를 푸르공 한 대, 그리고 앞으로 현지에서 식당, 숙소의 어레인지를 담당할 가이드가 합류했다.

사막을 횡단하던 중 고장난 푸르공을 수리하고 있다.

가이드 청년의 이름은 잊었지만 서른 살 언저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서 살아 몽골어 보다 한국말이 익숙하다는 친구였다. 우리 몽골 일행 중 모든 몽골인이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커다란 덩치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묻는 말에 친절히 답해주는 성실한 친구였다. 모델과 헤어메이크업 하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가 현지인 중에 가장 어렸는데 그래서인지 몽골 말에 서툴다(?)는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들로부터 조금은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여행 초반에는 여러 가지로 적응해야 했기에 그와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중 그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생긴 사건이 생겼다.


홍고르엘스의 비현실적인 풍경과 드론 감독이 촬영한 사막 한가운데의 낙타 무리, 매가 드론을 공격한 사건, 은하수 가득했던 밤하늘, 양 떼에서 떨어져 나온 새끼양의 초월적인 귀여움 등을 뒤로한 채 우리는 차강소브라가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차강소브라가로 향하는 길에 마주치기 힘든 장면들을 몇 가지 만나게 되었다. 모래사막을 지나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산양 떼를 만나 급하게 차를 멈추고 드론으로 촬영을 해봤는데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산양 떼의 이동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이동하던 중에 드론 소리에 놀라 갑자기 뛰어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드론감독, 나, JJ는 그 기막힌 아름다움과 아직 풀이 나기엔 이른 계절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입을 벌리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많이 지체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곧 부지런히 장비를 챙기고 차에 올랐다. 하지만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사냥에 성공한 커다란 독수리가 식사하시는 장면을 라이브로 목격하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싶었지만 존엄하신 독수리의 식사를 방해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싫었고 일정이 빠듯하기도 했기에 다시 부지런히 길을 줄였다.

달려오는 푸르공

점심때가 되어 조그만 마을에서 식사와 짧은 휴식을 갖기로 했다. 몽골의 전통요리를 다소 몽골스러운 방식으로 먹었는데 어떤 이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정도로 원초적이었다. 식사 후 JJ는 잠시 눈을 붙였고 나는 작은 마을의 절과 학교를 돌아보다가 일행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과 합류했다. 그때 우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푸르공 기사와 가이드가 몽골씨름 시작했다. 이 더위에 갑자기 무슨 짓인가 싶어 우리는 자연스레 경기에 집중했다. 평소 가이드는 상당히 친절하고 말투도 부드러웠던 것에 반해 푸르공 기사님은 말수도 적고 무뚝뚝한 마초적인 분위기를 풍겼기에 우리는 당연히 푸르공 기사님의 승리를 예상했는데 가이드 청년이 예상외로 뛰어난 운동신경과 힘을 보여주었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면서 상대를 잘 견제했고 기술도 상당히 좋아 보였다.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제 그만하자는 듯 푸르공 기사님을 한 팔로 밀어젖히는 가이드의 터프한 모습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가이드 제법인데?’라는 표정으로 가이드의 반전매력에 혀를 내둘렀다.

푸르공 기사와 가이드의 씨름 한 판

일행은 다시 차강소브라가로 가는 긴 여정에 합류했고 오후의 여정에서는 특별한 인연은 만날 수 없었다. 오후에는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렸기 때문이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 먼 곳에 희미하게 산 같은 것이 보이긴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가야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화구에 올려둔 주전자를 들여다보는 어리석음을 범하느니 차라리 외면하기로 했다. 항상 피곤한 JJ는 눈을 붙였고, 나는 태블릿을 꺼내 저장해 둔 미드 시청에 들어갔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문득문득 점심에 목격한 몽골씨름 경기가 떠올랐다. 겉으로는 선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내면에 강함을 품고 있는 가이드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차분하지만 착잡한 심정을 담아 몽골의 정치, 사회에 대해 현지인의 시각으로 말해주었다. 아무리 구글링 해도 알 수 없는 몽골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몽골의 정치 사회적 상황은 좋지 않았고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몽골에서의 삶이 좋다고 했다. 외유내강의 이 남자는 지혜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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