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언어 선생님-Stockholm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2007년 여름, 아직 학생 신분이던 시절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름의 성수기의 덥디 더운 날씨에 붐비는 인파를 뚫고 여행하는 것이 싫었던 나는 그나마 시원할 것으로 보이는 북유럽을 목적지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덥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런던을 시작으로 체코, 독일, 덴마크, 스웨덴을 지나 핀란드에서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그중 스웨덴의 한 바다가 보이는 공원에서 만난 벨기에 언어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전에, Eagles의 Hotel California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을 이 노래는 20, 30대의 나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노래였다. 악기파트 각각의 뛰어난 연주와 앙상블, 아름다운 멜로디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특유의 분위기는 나를 매료했는데 도무지 그 가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래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딱히 공감 가는 해석은 찾기 어려웠고 문학적인 표현인가 싶다가도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수도 없이 그 노래를 들었지만 멜로디만을 감상하는 수준에만 머물고 있었다. 40대가 되자 이 노래가 조금씩 다르게 다가왔다. 오래전에 보았던 뮤직비디오의 이미지를 참고한 듯 희미한 심상이 노래와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며 알듯 말듯한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가사의 내용이 흐릿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약간은 퇴폐적인 듯하면서 우울한 느낌, 풍요로운 삶 속의 회의, 자유롭지만 무언가에 갇혀있는 듯한 역설적인 심상이 그려졌다. 그것이 어떤 배경을 담고 있는지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마음이 그리는 그림에 집중하며 노래를 듣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것대로 깊이 뇌리에 새겼다.


이 노래와 벨기에 언어선생과 어떤 연관이 있길래 노래의 심상이 그와의 짧은 기억과 연결되었을까.

스톡홀름의 영국, 체코, 독일과는 다른 북구의 분위기에 취해 한없이 걷다 지쳐 어느 공원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바다 쪽을 바라보니 서쪽 하늘은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장면을 넋이 나간 채로 바라보며 지친 다리를 쉬고 있었다. 그때 슬그머니 누군가가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중얼거렸다.

“What a beautiful weather.”

고개를 돌리니 유럽인 치고는 왜소한 백인 남자라 노을을 바라보여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Yes, so beautiful.”

이렇게 그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벨기에 고등학교에서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의 앞으로 남은 여정을 물었는데 나는 곧 스웨덴을 떠나 핀란드로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는 언어 선생님답게 핀란드의 언어 체계는 다른 유럽의 언어체계와는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언어체계에 대한 지식은 어순에 의해 구분하는 것 정도에 불과했기에 핀란드가 한국어나 일본어 같은 어순을 따르고 있는 건지 물었고 그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의 말대로 핀란드의 조상은 간빙기 시대에 시베리아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동해 온 민족이고 그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황인으로 분류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곧 방문할 핀란드에 대한 호기심이 깊어졌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단지 떨어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늘에 시선을 빼앗긴 채 무심히 던지듯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노을이 만들어 낸 극적인 효과가 거의 사라졌을 때쯤 나는 허기와 갈증을 느꼈고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실 생각에 그에게 함께 펍에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예의 바르게 내 제안을 거절하고 뒤돌아 손을 흔들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잠시 어리둥절한 채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갈증을 느끼고 홀로 펍을 찾아 길을 나섰다.


공원에는 깨끗하게 다듬은 흰 돌이 깔려 있었고, 많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다. 수 미터 앞에는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지만 동쪽 방향에 개인 요트 선착장이 있어선지 바닷 비린내는 느낄 수 없다. 해가 지기 직전 그 요트 선착장에 나이 든 부부가 작지만 멋진 나무 요트를 타고 유유자적 흘러 들어와 배를 대고, 아마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리는 모습. 그 벨기에 선생처럼 유럽의 각지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의 밝은 모습.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친구들과 재밌게 떠드는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식당들과 펍의 모습. 노을이 시작되니 잠시 멈춰 앉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 이런 것들이 마치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1970년대 미국 서부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대문 사진은 구글 이미지임을 밝혀둡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에르카-Mongo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