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카-Mongolia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23년 이른 봄, 고등학교 선배 JJ가 갑자기 단톡방에 촬영스탭을 모집했다.

‘촬영지: 몽골, 하는 일: 짐꾼 겸 말상대 겸 술상대, 일정: 미정, 기간: 열흘, 급여: 소정의 금액’

당시엔 매인 일도 없었고 몽골에는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에 고민 없이 즉각 손을 들었고 그렇게 간단하게(?) 몽골로 떠나게 되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니 그럴싸한 SUV를 갖고 나온 운전기사 세 분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즉시 첫 여정지인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귀국 직전에나 머물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본 목적은 관광도 여행도 아닌 촬영이었기 때문이었다.


테를지에서 머문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게르 형식으로 된 숙소에서 몽골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며 하루를 묵은 우리는 아침을 먹으로 본관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바 쪽에서 소란이 느껴져 고개를 돌아보니 젊은 직원 둘이 싸우고 있었다. 둘은 그래도 손님이 있는 것을 의식했는지 큰 소리로 욕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멱살과 몸을 잡고 넘어뜨리려 애쓰며 씩씩거렸다. 결국 현지 운전기사님들이 뜯어말리며 혼을 내어 내쫓았고 우리는 혀를 내두르며 ‘이것의 몽골의 삶인가’하며 조금은 위축됨을 느꼈다.

식사 후 선배와 나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숙소 주변의 언덕을 올라가 보기로 했는데 오르기로 한 가파른 언덕에서 작은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며 한참을 보고 있자니 방금 전 지나간 양 떼가 싼 똥이 굴러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여학생은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 더니 몽골에 오니 우리도 똥 굴러가는 것을 보고 실컷 웃으며 방금 일어난 폭력사태는 금세 잊었다. 산책 삼아 똥이 굴러내려온 그 동산을 올라 그 너머의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죽인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bs-에르카-3.jpg 싸움이 일어났던 그 식당. 왼쪽에 에르카가 보인다.

테를지를 떠나 고비사막으로 향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왕복 2차선인 도로는 군데군데 파여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였기에 신나게 달리던 차는 종종 급정거를 하며 패인 도로를 넘어가거나 중앙선으로 피해 가야 했다. 차 안에서만 10시간 넘게 이동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힘들다거나 지겹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눈에 담기는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은 나를 강제로 깊은 무아의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주시는 분들은 여유 있어 보였다. 내가 만난 몽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구글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데 거리낌이 없이 자유분방했다.

나중에 합류한 ‘푸르공’ 기사님까지 더하면 총 네 분의 기사님과 현지 가이드 한 명, 모델과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현지인 7명과 촬영 관계자들 8명이 이번 몽골 원정대의 구성인원이었는데 그중 유난히 기사님 한 분 생각이 난다.

bs-에르카-1.jpg 에르카의 카톡 사진

에르카는 한국말을 꽤 잘하는 운전기사였다. 가이드는 촬영스태프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식당과 숙소를 어레인지하는 것에 바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었지만 운전기사들과는 쉬는 시간마다 이런저런 잡답을 나누곤 했다. 그때 에르카가 좋은 통역사가 되어 주었다. 몽골의 건조하고 강렬한 바람과 태양 탓인지 실제 나이보다 깊은 주름이 잡힌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몽골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나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그 덕에 몽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션도 알게 되고 중간중간 들렀던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것이 궁금해서 어떻게 배우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충남 아산에 있는 공장에서 15년간 일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왼손으로 향하는 시선을 잡아채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다.

“아주 좋았어요. 사장님이 나를 좋아해서 잘 대해주셨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어요.”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그의 왼손은 손가락이 두 개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가락에 얽힌 사연은 차마 묻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당한 사고 때문이 아니길 빌었고 그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기를 바랐다. 실제로 한국에서 손가락을 잃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더라도 말이다.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함께 마시며 잡담을 나누던 중에 나는 에르카에게 물었다.

“에르카, 한국에 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있어요?”

“아 정말 좋아했던 게 있죠. 환장하게 좋아했죠.”

라고 말해 우리는 껄껄 웃으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회를 좋아했어요. 정말 너무 다시 먹고 싶어요.”

우리는 그야말로 박장대소했다.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회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몽골에는 회가 없지.”

하지만 몽골인으로서 생소했을 회를 좋아했다니 이 부분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회는 비싸서 한국사람들도 자주 못 먹는데 괜찮았어요?”

“맞아요. 비싸서 월급으로 사 먹기는 힘들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저를 좋아하셔서 회를 자주 사주셨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먹었던 것 같아요.”

“좋은 사장님을 만나셨네요.”

왼손으로 향하는 시선을 다시 잡아채며 안도했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외국인들의 처우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오래전 한국에서 생활했던 에르카의 대우가 가혹하진 았았는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고 좋은 사장을 만나 좋아하던 회도 많이 먹고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니 안심했다. 손가락에 대한 것은 아직도 마음이 쓰이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먼 타지에 와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려 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만큼의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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