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이야기
열흘 간의 안나푸르나 산행을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 여정을 준비할 때였다. 카트만두,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다음 목적지이다. 물론 캄보디아 이후 귀국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비행기를 타려면 일단 카트만두로 넘어가야 했다. 포카라로 들어갈 때와 같은 길을 넘어가야 하기에 조금 걱정이 됐지만 한 번 겪은 길이라서 그런지 큰 불편 없이 넘어왔다.
여행을 하면서 음식 문제로 불편함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고기만 먹을 수 있다면야… 한식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 느끼지 못하지만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한다. 이번에는 카트만두에서 그랬다. 혼잡한 카트만두의 시장을 벗어나니 한글로 된 식당 간판이 보였고 메뉴는 삼겹살. 오랜 산행에 고단하기도 했고 꼬불꼬불 고갯길을 넘느라 고생도 했으니 네팔에서의 삼겹살 정도의 사치는 괜찮지 않으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식당에 들어가니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 두 분이 맞아주셨다. 식당에는 중년의 남성 한 분만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역시 한식당이라는 듯 점심때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식당을 둘러보는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유니폼 입은 종업원의 모습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왠지 원가 아리송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메뉴판도 한국 느낌과는 사뭇 달라 신기한 마음에 메뉴판 사진을 찍었더니 종업원 한 분이 오시더니,
“메뉴판 사진 찍으시면 안됩네다.”
아항~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구나~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세계 곳곳에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하필 그런 곳을 찾아간 것이다. 뭐 북한 식당이면 어떠랴. 어차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도 여긴 네팔인걸. 제대로 된 한식을 팔 수 있을 리 없었다. 핵개발 비용에 성금 하는 꼴은 아닌가 1초 생각했지만 그냥 마음을 비우고 삼겹살을 주문했다.
안나푸르나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여비를 충분히 갖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내 소비에 민감했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 마시는 모습을 보니 한 잔이 간절해졌지만 타국에서의 소주가격은 내 돈 주고 사 마실 만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자들은 이렇게 애국자가 된다. 일단 아저씨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행 중이신가 봐요.”
“네 인도에서 넘어와서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려고요. 여행 오셨어요?”
“아 나는 어제 히말라야에서 내려왔어요.”
이렇게 북한식당에서 만난 아저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등산을 업으로 하는 프로 산악인으로 허영호, 엄홍길 같은 유명산 산악인들과 원정을 다니던 분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팀을 꾸리고 코오롱의 협찬을 받아 지금 이름은 잊었지만 8000미터가 넘는 어떤 봉우리를 정복하고 내려왔단다. 8000미터가 넘는 산은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 질문을 하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아예 합석합시다.”
하셔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테이블을 옮길 때 슬그머니 소주잔을 챙겼다.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함께했던 원정대장들의 이야기, 그가 정복했던 유명한 산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다가 어제는 혼자 내려오신 거냐, 다른 분들은 숙소에서 쉬고 계신 거냐 물으니,
“나는 고지에 갔다가 헬기가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혼자 내려와 헬기를 타고 내려왔지.”
라고 했다. 그는 베이스캠프를 지나 한참 산을 오르다 옆구리가 아프다고 느꼈는데 그냥 어쩌다 갈비뼈에 금이 갔겠거니 하며 끝까지 올라갔단다. 정상에 오른 후 통증이 너무 심해 결국 무전으로 헬기를 불러 내려오자마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했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폐에 물이 찼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돌아가셨을 거예요.”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무심히 던지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술 드셔도 돼요?”
그는 배우 신현준이 담배를 끊으려다 담배껌에 중독되었다는 말을 할 때 지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 자니께네.”
그는 왜 산에 오르는 걸까. 폐에 물이 차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갈비뼈에 금이 갔겠거니’ 하며 끝까지 산을 오른다. 그리고 죽다 살아났다는 의사의 말을 코 푼 휴지처럼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홀로 식당에 나와 소주를 마신다. 낯선 여행객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답하는 그의 태도는 독백하듯 무심하다. 나는 그가 오른 산에 대해 이야기에서 그에게서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본 자기 또래의 남자가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모습에 분개했다. 가스나도 아니고 나이 든 남자가 머리를 기르고 다닌다며…
무심히 던지는 말들은 귀담아듣고 분에 차 던지는 말들은 흘려들으며 야금야금 그의 소주를 축냈다.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서울 시내에서 친구, 혹은 선배와 만나 기분 좋게 낮술을 걸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식당을 나선 순간 닥쳐온 혼돈스런 현실에 힘껏 고개를 털고 조용히 인파에 스며들었다. 이제 다음 여정을 준비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