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난민-Cambodia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쾌적하다. 여느 대도시와 다를 것 없는 방콕 시내를 벗어나니 나타난 깨끗한 아스팔트 고속도로. 조용하고 힘이 넘치는 벤츠 버스의 엔진. 넉넉한 좌석 공간, 푹신푹신한 시트, 안정감 있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중간중간 봉긋 솟은 이국적인 작은 언덕, 혹은 산의 풍경. 모든 조건이 쾌적했다. 인도와 네팔의 혹독한 여정을 거치고 난 후라 그 쾌적함은 더 값지게 다가왔다.


인도와 네팔 여행은 즐거웠다. 유니크한 문화유산과 지역마다 특색 있는 건물들과 풍경들, 재미있고 친근한 사람들, 신비로운 자연경관들 모두 내게는 소중한 추억을 남겨줬지만 아무래도 인도인 특유의 성향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자칫 방심하면 웃는 얼굴 뒤에 숨은 죄책감 없는 속임수에 당하기 일쑤였다.

숙소로 가기 위해 요청한 픽업서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나타난 사기꾼을 따라 엉뚱한 곳으로 갈 뻔했다.

잠시 앉아 멋진 하늘을 감상하고 있으니 슬그머니 옆에 앉은 젊은이가 차를 한 잔 대접하겠다며 데려간 곳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사슴 같은 눈망울로 전력을 다해 물건을 사달라고 강요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를 수리하기 위해 일부러 머문 자이푸르에서는 단순한 물리적 결함임에도 10만 원에 가까운 수리비를 청구했다. 수리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수리했다.

도저히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기막힌 상술과 호의인지 악의인지 부분할 수 없는 접근을 수도 없이 겪으며, 피해야 할 사람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진짜 좋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정력을 소비해야 했다.

카트만두를 떠나 방콕에 도착하니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홀가분했다. 그래서 더욱 캄보디아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보낸 잠깐의 시간은 그야말로 쾌적했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대감은 아랑곳없이 버스의 쾌적함에 몸을 묻고 있던 내가 평화로워 보였던 것일까. 옆에 앉은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등등을 물으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이 아저씨의 정체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캄보디아 난민 출신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캄보디아의 현대사는 피로 얼룩져 있다. 킬링필드라 알려진 무자비한 학살은 20세기에 일어난 손꼽히는 인류의 비극이다.

수많은 내전과 정권 교체기마다 벌어진 학살과 박해로 인해 캄보디아는 아직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를 짐작해 보면 킬링필드 때문에 난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난민이 되었고 다행히 유엔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했다. 유엔은 난민들에게 가고 싶은 나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그 가족들이 신청한 유럽에는 가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살면서 갖은 고생을 했겠지만 지금은 도넛 가게를 몇 개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깔끔한 차림새와 여유 있는 표정이 그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었다. 이제는 지금처럼 종종 고향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고통을 겪고 일어난 사람에게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당시의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얌전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냥 기타 만드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인도, 네팔을 그쳐 캄보디아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도 그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고 나는 아는 대로 대답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나를 다소 답답하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컨대 난데없이 살게 된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내가 비전 없이 여행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는 문득 내게,

“지금 시대는 젊은이들은 성공하기 더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나 때는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어도 어떻게든 그 정보를 얻기만 하면 성공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 있고 이 오픈된 정보를 가지고 성공을 해야 하니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우리 때보다 더 많은 창의력이 필요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풍부한 메타포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중 프로메테우스(먼저 아는 자)의 이야기를 읽은 후 나는 막연히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이 되고 싶지만 결국 에피메테우스(나중 아는 자)적 인간 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스스로의 한계에 실망하고 자조하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에피메테우스적 인간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보통의 인간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경지를 바랄까. 지식과 지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깨닫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름 모를 캄보디아 어르신의 말은 최소한 에피메테우스적 지혜는 담고 있다. 현실을 냉정히 바르게 알고 자신의 성취에 자만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인간적인 결론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지향할 바라고 본다. 그래서 그의 얼굴과 옷차림, 부드러운 말투 등의 이미지, 그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계속 내 안에서 작용한다.

그리고 마음이 쾌적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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