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와 알리-Jaisalmer

사람들과 이야기

by 각다귀

남들은 나를 호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내가 종종 여행지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교묘한 상술에 기꺼이(?) 넘어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베트남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호찌민 공항에서 택시를 잡은 적이 있다. 공항 출구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들은 너무 높은 가격을 불러 싼 택시를 찾고 있는데 어느 기사 한 분이 아주 적절한 가격을 제시했다. ‘옳커니’ 하고 그를 따라갔는데 출구에서 꽤나 먼 곳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갑자기 운전기사가 바뀌었다. 이게 머선 일이냐고 따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공항 톨게이트를 지나려면 기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행의 준프로 다운 침착함으로 얌전히 조주석에 앉았다. 곧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비용은 내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 그것도 납득할 수 있지. 지갑을 열어 베트남 돈을 찾고 있는데 기사가 갑자기 지갑을 낚아채면서 자기가 빨리 찾아서 내겠다는 것이다. 의심스러웠지만 코앞에서 돈을 세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이 또한 그냥 넘어갔다. 10초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마춤한 금액을 찾아 톨게이트를 벗어났고 지갑은 바로 돌려주었다. 그리고 톨게이트를 지나 기사는 다시 바뀌었고 친절한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아무런 이상한 낌새도 없었고 기사가 친절했고 선량해 보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여행이 끝나갈 무렵 발생했다. 이제 곧 한국으로 출발하니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갑을 열었다. 5만 원이 비었다. 이상하다? 뭐지? 한참을 생각하다,

“아하! 공항 톨게이트!!”

껄껄껄 웃었다. 5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아무리 여행할 때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씁쓸할 만큼의 돈이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바탕 고도의 기술을 목격하고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더니 정말 대단한 기술이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갑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 번 경험했으니 다음에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겠지’ 하며 넘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이런 일을 계속 당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그 호구의 서막이다.

자이살메르에서 만난 알리

우여곡절 끝에 자이살메르에 도착해서 간단히 짐을 풀고 고성을 구경하러 나왔다. 사막에 세운 이 도시는 만화에나 등장할 듯한 거대한 요새처럼 둘러쳐진 성벽 안에 자리 잡았다. 성벽과 건물들은 모두 주면에서 나는 듯한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그 색이 사막의 모래 색과 같아,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래된 성 안 마을의 이색적인 풍경에 정신이 팔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다리가 무거워졌다. 슬리핑 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작은 광장에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자신을 ‘알리’라고 소개했다. 매우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청년이었다. 작고 마른 몸이었지만 입은 옷은 깨끗했고 영어도 꽤 잘했다. 무슨 대화를 그리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참을 떠들다 문득 그가,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되었으니 내가 우리 집에서 차를 한 잔 대접할게요.”

해서 그를 따라나섰다. 그가 데려간 곳은 옷가게였다. 머리에 꽃만 가득했던 그때의 나는 그가 내미는 짜이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또 이어나갔고 정말 어느 새라고 알아차릴 수도 없이 교묘하고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그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업이 어렵다고 하며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싸게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단으로 수공으로 만든 숄을 몇 장 꺼내왔다. 인도의 카펫도 그렇지만 그 숄도 양면의 문양이 다른 멋진 숄이었다. 그는 한쪽 면을 펼쳐 보이며 ‘선데이’, 다른 면을 펼쳐 보이며 ‘먼데이’라고 했다.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매일 다른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거지… 하나의 훌륭한 공연을 감상한 기분이었다. 당연히 그 숄을 나는 구매했고 그것은 나의 애착 머플러, 두건, 햇빛가리개 등이 되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여행을 갈 때면 항상 그 숄을 갖고 다녔고 그것은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햇빛이 강렬한 곳에서는 머리를 보호하는 두건이 되었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머플러가 되었다. 때로는 이동하는 차, 기차, 비행기에서 베개가 되어주기도 했다. 알리와 나눴던 이야기와 그의 가게 풍경, 숄을 사들고 나올 때의 가분 좋은 감정 이 모든 것들이 숄 안에 담겨있었다. 그렇게 아끼던 숄을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잃어버렸다. 상당한 상실감을 느꼈다. 하지만 물건에 대한 애착을 버리려 노력하던 때였기에 곧 아쉬운 기분은 떨쳐버리고, 대신 언젠가 알리와 숄에 대한 이야기를 써 두기로 마음먹었다. 물건 자체에 대한 애착은 버릴지언정 숄에 담긴 수많은 추억과 감정은 간직하고 싶었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애착 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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