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이야기
인도에는 3대 칸이라고 불리는 영화배우들이 있었다. ‘세 얼간이’의 아미르 칸, ‘내 이름은 칸’의 샤룩 칸, 마지막으로 나는 잘 모르는 살만 칸. 내게는 한 명이 칸이 더 있다. 아그라의 릭샤 드라이버 칸이다.
타지마할 이야기를 하면 그 아름다움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그것을 잘 표현할 자신이 없다.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본 인간의 역사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건축물이다.
델리로 돌아가기 위해 아그라역에서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취한 여운을 즐기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택시 기사들처럼 많은 릭샤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국인이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 근처에 릭샤 기사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 외국인은 그들의 타깃이 된다. 기사들은 계속 말을 걸어왔고 나는 계속 이미 타지마할을 다녀왔고 곧 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인도인들은 외국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의무인 것 같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릭샤 기사들 사이에서 ‘타지마할을 이미 다녀온 곧 델리로 향하는 외국인’으로 되어 있었고 그들은 어느새 나를 손님으로 보기 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때울 건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서너 명이 나를 둘러쌌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시답잖은 소리들을 하며 담배를 한 대 더 물고 불을 붙이는데 기사 한 명이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며 웃었다. ‘뭐여, 어느 부분이 웃긴 건데?’라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그의 친구가 설명했다. 그가 좋아하는 인도의 배우가 있는데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 피우는데 나는 그때 검지와 엄지로 들고 피웠던 것이다. 인상 좋은, 껄껄 웃던 그 기사가 칸이다.
나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는지 나를 꼬실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수염 가득한 상남자의 얼굴에 부드러움을 임계점까지 쑤셔 담고 내게 제안했다.
“지금 내가 개스(가솔린)가 떨어졌는데 너를 쇼핑센터에 데려다 주기만 해도 그 쇼핑센터에서 내게 개스 쿠폰은 줘. 너는 아무것도 사지 말고 그냥 내가 데려다주면 거기 구경만 하면 돼. 어때?”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고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칸의 말에 나는 선뜻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안 사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까짓 거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쯤 되면 ‘아 저거 또 털리겠구먼.’ 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면 정답이다. 나는 인도인의 상술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첫 번째 그가 데려간 곳은 카펫 공장이었다. 커다란 공장 앞에 다다르니 매니저인 듯한 중년 남성이 나를 맞았다. 그는 카펫을 만들고 있는 공장을 안내해 주며 제품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카펫들은 정말 품질이 좋고 아름다웠다. 이 카펫 역시 뒤집으면 다른 문양을 갖고 있는 양면 카펫이었고 인도 특유의 문화가 녹아 있는 문양과 화려한 색깔에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속으로 나는.
‘아… 큰일 났다. 너무나 사고 싶다.’
다행히도 카펫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작은 것도 우리 돈으로 몇십만 원이나 했고 부피도 커서 남은 여정 동안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우편으로 보낼 만큼의 시간도 내게는 없었다. 다행히 이런 열악한 조건에 힘입어 구매의 유혹을 뿌리치고 칸에게 돌아왔다. 그는,
“아무것도 안 샀지?” 라며 확인했다. 정말 그는 내가 안 사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다음 목적지는 보석 가게였다. 큰 키와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잘 차려입은 사장이 나를 맞이했다. 쇼케이스에는 다양한 보석들이 세공된 채로 빛내고 있었다. 이걸 내가 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하고 안심하며 둘러보았지만 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살 만한 것도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손톱 정도 되는 다양한 크기의 검은색 보석을 꺼냈다. 그러면서 한 편의 역사 만담을 시작했다.
샤 자한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로 그의 왕비는 뭄타즈 마할이다. 샤 자한은 왕비를 무척 사랑해서 둘 사이에서만 자식이 14명이나 된다. 그녀는 38세에 이미 자녀를 14명이 낳았고 막내딸을 낳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샤 자한이 그녀를 잃은 상실감에 타지마할을 건설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무려 22년의 공사 끝에 타지마할을 완성했는데, 사장은 여기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타지마할은 흰 대리석을 지었는데 그것은 왕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샤 자한은 죽어서도 왕비의 곁에 묻히기를 원해 타지마할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신의 무덤인 블랙 타지마할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 블랙 타지마할을 건설할 때 사용하려 했던 돌은 아그라에서만 나는 돌로 이 돌은 잘 연마하면 빛이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가 된다고 했다. 아주 품질이 좋은 것은 ‘*’ 모양이 된다고도 하며 그 돌을 꺼내 보여주었다. 정말 빛이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되었다. 블랙 타지마할 이야기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보인다. 샤 자한의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타지마할 건설에 너무 큰돈을 들이고 황제로서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제위를 찬탈하기는 했지만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에 호사가들이 한 꼭지 더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정사고 야사고를 떠나 그의 이야기는 매혹적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있었으며 이야기를 하며 취하는 적절한 손짓과 몸짓은 춤을 추는 듯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렸다. 갑자기 그는 내 손목시계를 칭찬하며 누가 선물해 준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자친구가 사준 것이라 대답했다. 어머니는 계시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 같이 안목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을 보니 어머니도 틀림없이 훌륭한 분일 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훌륭한 손목시계를 선물해 준 여자친구도 분명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이 있는 감각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약간 큰 돌과 그보다 조금은 작은 돌을 내밀며 큰 것은 어머니, 작은 것은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아, 이 아름다운 화술.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화려한 언변에 나는 백기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나의 심미안을 부정하는 것이고 어머니와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보석을 사지 않는다면 그가 내게 들려준 샤 자한 황제의 뭄타즈 마할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감정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한바탕의 정사와 야사를 통해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하는 무지렁이가 되는 셈이 되었다. 무력하게 무장해제된 나는 ‘제발 이 아름답고 의미로운 보석을 내게 팔아주세요!’라고 속으로 외치며 두 개의 작은 보석을 손에 넣었다.
아쉬운 점은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게 시타르를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 2만 원 정도의 큰돈을 이미 지불한 상태이기도 했고 부피가 큰 시타르를 들고 남은 여정을 소화할 수도 없었기에 그의 두 번째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무엇보다 보석에 담긴 이야기와 그것에 담을 나의 감정을 과소비로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다.
가게를 나오니 칸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뭔가 사지는 않았겠지?’라고 채근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며 기차역으로 돌아가자며 그를 지나쳤다. 결국 그가 내 뒤통수에 대호 뭘 샀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그만 거 하나 샀다고 했다. 그의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칸과의 짧은 여행을 이렇게 마무리됐다. 아그라에서 델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보석을 꺼내 보며 만감에 휩싸였다. 또 당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곧 그런 불경스런 생각은 떨쳐버리고 조심스레 다시 포장하고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 보석은 결국 홍대의 은수공예를 하는 공방에서 귀걸이가 되었지만 지금은 내 손은 떠났다. 하지만 알리의 숄과 마찬가지로 내 기억 속에는 보석만큼 소중한 추억과 감정이 되어 생생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