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 실패 여섯 번째 인터뷰 : 김아라
*했다, 실패 매거진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패담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 형식의 글입니다. 성공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실패가 두려울까?
실패 후 다시 일어날 수 없을까 두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더욱 지친다. 실패가 도움이 된다고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실패가 나중에 나의 비장이 카드가 된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아마 우리는 기꺼이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 밑도 끝도 없이 지금 겪는 실패들이 언젠가 반드시 나의 비장의 카드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향기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는 '센티스트' 김아라의 수많은 실패들. 그리고 그녀가 실패를 성공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을 들어보자.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센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아라입니다.
Q. 간단히 조향사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제가 하고 있는 직업은 연구개발을 하는 조향사가 아닌, 확장된 개념의 일을 합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들은 향을 기획하고, 기획을 바탕으로 향을 만들기도 하고, 제품을 만들거나 공간에 적용하거나 문화의 형태를 띠기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향을 접목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때로는 조향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획자가 되기도 하면서 저희 안에서는 ‘센티스트’라는 명칭을 쓰게 됐고요.
Q. ‘센티스트’는 향기를 통해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네, 향에 대한 다양한, 때로는 그림을 설명해주듯 도슨트가 되기도 하고 숨어있는 향들을 소개하는 교육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Q.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게 될 것 같아요.
혹시 실패에 대해서 먼저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낙천적인 편이라서 '제가 겪었던 실패들'이 마냥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막상 ‘나의 실패’를 마주하는 게 조금 어렵긴 했었어요. 질문을 몇 번을 곱씹어보고 누군가가 이 대화를 바탕으로 실패에 대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가 처한 위치에서
‘실패’를 정의해 보자면,
이전에 제가 아쉬워했던 경험들이
모두 실패인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조금 더 자세히 ‘센티스트 김아라’로서 어떻게 실패를 경험하게 되셨나요?
‘센티스트’로서 맨 처음 제가 경험했던 실패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하는 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A를 ¹형체가 있거나 ²형체가 없더라도 객관성을 띠도록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면, “이 곳에 내추럴한 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하지만 사람들마다 다를 거예요.
사실 검(인터뷰어)님이 생각하는 내추럴함과, 제가 생각하는 내추럴함, 그리고 제삼자가 생각하는 내추럴함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향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과정은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데 있어요.
Q. 그렇네요. 당장 저도 이야기를 들으며 ‘내추럴함’이 정해져 있다고 여겼는데.
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서툴렀어요. 왜냐하면, 제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다 보니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 과정을 곱씹어보면 처음에 이런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Q. 일종의 실패를 통해 강력한 영업 노하우를 얻게 된 거네요.
네 맞아요. 특히 제가 그 과정에서 배웠던 것들은, 상대방과 많은 대화를 하고 ‘아 이 사람이 말한 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일종의 실패를 알아채는 과정 덕분에 제가 변하는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크. 실패를 알아채는 과정이라.)
Q. 커뮤니케이션의 시행착오나 오류를 줄이는 영업비밀이 궁금해지네요.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자주 비슷한 오류를 마주치다 보니, 상대에게서 주관적 느낌을 끌어내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는 내추럴함을 원해요’라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내추럴함’을 예시로 들며 대화를 시작하니 접점을 찾기가 쉬워졌던 거죠. 여러 번 실패를 반복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각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알게 된 거죠.
Q. 일종의 통계적인 객관적인 비교대상을 두신 거군요.
네. 그리고 다른 방법은 계속 진행하다 보니 다른 감각, 예를 들면 시각 등으로 바꿔서 이야기했을 때 보다 수월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향은 형체가 없지만 시각은 형체가 있기 때문이죠.
여전히, 정확히 매칭 시킬 수 없어 반복되는 실패의 과정들이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와 감각을 매칭 시키고 체계화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저도 이런 일들은 여전히 트레이닝하고 있어요.
Q. 또 다른 접근 방식이네요.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 중에 까먹는 과일이 있어요. 감귤계라고 부르는데 오렌지, 라임 같은 것들이에요. 감귤계 과일은 굉장히 새콤달콤해요. 그리고 향이 굉장히 빨리 날아가버리는데 우리가 사물이나 공간 등의 형체로 옮기면 사람들은 그 느낌을 깨끗하다고 느끼게 돼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아요. 이 과정도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던 초기에는 잘하지 못했죠.
(갑자기 분위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Q. ‘센티스트’로서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했던 실패들을 말씀해주셨는데,
우선, 구체적인 향을 만드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실패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과정부터 설명해 드리자면, 누군가가 요청하거나 제가 의도하는 것이 생기면 처음에 그 물체를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 물체의 요소들을 느끼게 한 것들을 다른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있고요. 내가 궁극적으로 향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명확히 목표로 설정하고, 물체의 키 컬러, 키워드, 전달하고자 하는 방향 등을 객관화시키는 것들이 첫 번째 과정이에요.
그다음은, 그렇게 생겨난 향이 어떤 방법으로 기승전결을 갖고 설치될지 정하고, 클라이맥스에서 활용될 재료들을 설정하게 돼요. 그리고 그 재료들의 함량을 설정하고 실제 향을 만들고 주관적인 SMELLING TEST를 진행하는 단계가 진행돼요.
그리고, 그렇게 나온 향을 공간, 제품 등에 적용시켜보고, 만족할 때까지 시행착오의 반복이 진행되게 되죠.
기획-개발 과정에서는 ‘향’은 경우의 수라던가, 블렌딩 과정에서의 하모니가 명확히 떨어지지가 않아요.
각자가 어느 것과 만나는지 혹은 변수에 엄청 민감한 것 같아요. 그래서 보통 향 개발을 할 때는 20번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작은 예상들도 계속 어긋나게 되고요.
‘촉촉함을 머금고 있는 시트러스 향인데, 무거웠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고, 저희가 생각하는 적절한 향을 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누군가는 ‘토마토 꼭지 냄새’로 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향은 아무래도 본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감각이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정의가 사람들에게 실체로 연상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면, 학생들이 많이 하는 실패들이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향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재료 양을 조절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했던 거와 정 반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아요.
Q. 한 번 제대로 된 향을 만들 때 20번 이상의 시행착오를 경험한다고 하셨는데, 이 과정 속에서 힘든 점이 있었을 거 같은데요.
향을 만들기 위해 저희가 조합해야 할 향이 50가지라고 가정했을 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필수 재료가 있어요.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 빨간색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것들과 빨간색이 하모니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작업을 하며 지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Q. 윽. 그럴 때 빨간색을 빼고 진행하면 편할 텐데
있기도 해요. 과감하게 빼고 주황색과 같은 유사한 느낌을 주고 나머지들이 그 색을 빨간색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도 역시 이전에 만들며 20번 100번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능력인 거 같아요.
어쩌면 숙명인 거 같기도 해요. 이런 어려운 과정이 좋은 향기를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일이고, 이 과정이 조향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기도 해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형태가 없는 것을 형체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실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거죠.
Q. ‘지금의 실패가 나중에는 꼭 자양분이 된다’는 믿음이 있으신 거 같아요. 어쩌면 실패라는 것이 사실은 나중에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제가 경험한 분야에 근거해서 얘기해보자면, 향도 기본적인 공식은 있어요. ‘A+B를 합치면 장미라고 느껴’, 혹은 ‘싱그러움을 느껴’ 같은. 하지만 향은 단순하게 전달되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의 경험을 근거로 계속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실패가 반복되기는 해요.
그런데, 그래서 조향이 어려우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것 같아요.
실제로 유명 조향사들도 1~2년에 걸쳐 유명한 향수를 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뛰어난 조향사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10년 20년 많은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그 사람만의 색깔을 분명히 할 수 있는 향기들을 어느 정도 구현해냈을 때, 뛰어나고 좋은 향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거죠.
(놀랍게도 그녀는, 실패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정에서 일의 매력을 찾았다)
Q. 그러면 사실상, 조향사로서의 실패들이 언젠가는 쓰일 수 있는 성공한 레시피의 기초 재료 같은 거네요.
네네 맞아요. 아까 말씀하셨던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아. 이런 경우도 가끔 있어요. 엄청 아쉬운데 근사한 향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이 향이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괜찮은 결과물의 근거가 되어주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눈앞에 있는 목표를 두고 봤을 때는 아쉬움이 있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굉장히 스페셜한 향이 되기도 하니까요. 사실은 실패들을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모두 제게 쓰임이 있는 가능성들이니까요.
인터뷰이: '센티스트' 김아라
글: 검
사진: 말하는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