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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고백

놀이가 주는 이점

by 하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운다고!!! 그래서 눈물이 나왔어!!! 눈물 닦아!!! 눈물 닦아달라고!!! 선생님이 휴지 가져와서 닦아!!!”

한 아이 교실이 떠나가라 운다.

아무리 진정을 시켜도 도돌이표다. 아이는 상황이 이해되는 듯 “조금 놀고 밥 먹고 나면 엄마가 오실 거야”를 되뇌지만 엄마를 찾는 목소리도 울음도 잦아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학기 초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에게 한 번 더 손길이 가고 한 번 더 마주하게 된다.

그 아이가 잘 지내야 다른 아이들도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으니까.


떠나가라 우는 아이를 교사는 달랜다. 눈도 얼굴도 시뻘게진 채로 우는 아이를 외면할 수는 없으니, 다른 아이들은 안전한 장소에서 자신들의 놀이를 즐긴다. -사실 친구의 울음소리로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놀이를 하는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서 놀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게 아이가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옷 정리도 가방 정리도 척척 해내던 아이는 “도와주세요. “를 외치기 시작한다. ‘아이고,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고 일과를 진행해야 하는 데….’ 얼른 준비를 다하고 인사 나누기를 기다리는 아이도, 놀이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도 한 교실에 있다. 그런데 ‘도와주세요’를 외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 교사는 손이 더 바빠진다.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산책을 가는 길 혼자서도 척척 잘 해내는 아이는 말한다. “저도 손잡고 싶어요. 선생님 손잡고 가고 싶어요.”

아이의 마음이 읽힌다. “저에게도 관심을 주세요. 저도 사랑받고 싶어요.”

학기 초는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문제가 생긴 어린이를, 그리고 잘 지내주는 어린이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많이 도와줄 수 있을까. 미안한 마음은 마음의 짐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손이 빠르지 못할까 자신을 탓해보기도 한다.



점차 갈수록 아이들이 하향평준화가 되는 거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7년도 안 산 아이들이 사회적인 경험을 해보겠다고 30명이 넘게 한 반에 있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그랬다. 그래도 큰 사고가 없었던 건 부모들이 무던해서 그냥 넘어갔다기 보단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과거에는 가정에도 아이들이 많았고 부모님들의 근로시간도 길어서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이고 그 안에서 형언니동생들과 어울리며 상위 기술을 배우고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 갈등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옷 입고 벗고, 가방을 챙기고 매고, 신발을 신고 벗고 등등 자조능력이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이 잘 안 되면 형언니들의 재밌고 자극적인 놀이에 빨리 끼어들 수 없으니.

신발과 옷, 가방 등을 잘 정리하는 것과 같은 기본생활습관이 잘 잡히다 보니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어도 교사의 손이 일일이 가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교사는 그 외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과 태도, 방법들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또 형 언니들과 놀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형 언니들도 성인보다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상대방을 고려한 낮은 수준의 대화가 어렵다. 그러니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끼어서 놀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귀 기울여 듣는 바른 태도가 형성된다. 이것은 교실로도 이어져 1명의 교사가 한두 번만 이야기해도 30명의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 듯 놀이가 볼모가 된 것 같은 상황이지만 이 상황은 다르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스스로 하고 싶어서 듣고, 따라가는 것이다.



기본생활습관, 자조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잘하는 어린이들은 손길을 덜 미친다. 집에서처럼 따라다니며 도와주지 않으면 아예 다음 일과가 진행되지 않으니 교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이다. 그런 어린이들도 도움을 주고 지원해 주어 잘 키워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머지 어린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우리는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먼저 알려주면 좋을까. 먼저 삶을 살아낸 어른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심어주면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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