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랬구나!’의 힘

진정한 공감과 변화

by 하얀



한 때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 그랬구나 ‘를 말하는 게임이 TV쇼에 소개됐다. 본래 ‘그랬구나’가 가지는 의미와 다르게 ’ 그랬구나 ‘를 외치는 사람이 오히려 허를 찌르는 말로 상대를 공격해서 웃음을 자아냈지만 말이다.


유아교사들에게도 감정코칭이라는 주제로 ‘그랬구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강조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그랬구나’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은 ‘그랬구나’를 하고 있는 나에게 “어머! 진짜로 저렇게 말하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아직 애들을 잘 모르나 봐”라는 말을 한 분도 있을 정도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이야기다. 나에겐 인상적인 ’ 그랬구나 ‘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내가 실습교사이던 시절, 한 아이가 놀이터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오면서 계속 구시렁대고 있다. 그때는 전체를 보는 눈이 없을 시기라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과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는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유치원의 일과가 아무리 유동적이다 하더라도 점심시간만큼은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날도 다음 일과가 점심시간이라 교사는 상황을 정리하고 교실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그때 뒤에서 걸어오던 원감님이 “그랬구나…. 우리 은성(가명)이 마음이 그랬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놀랍게도 은성이는 ‘그랬구나’ 첫마디에 구시렁거림을 멈췄다. 어쩌면 낯선 목소리가 들려서 반응적으로 멈췄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말 하나 없이 딱 저 말만으로 은성이는 그 이후 집에 갈 때마저도 기분 좋게 돌아갔다. 책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이 실현되는 것을 본 실습생은 그날부터 누가 뭐라 해도 ‘그랬구나’의 힘을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실습생은 교사가 되어 4살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렇게 어린이집에 오는 영아기(만 0~2세) 아이들은 사실 발달과정상 가정에 있는 게 편안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시기라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많아봐야 형제자매들과만 물건을 공유하고 나눠야 하는데, 기관에 오면 적게는 3명 이상의 아이들과 공유하고 나눠야 하니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영아반 교사들은 같은 놀잇감을 두 개 이상씩 준비한다. 콩순이 계산기와 뽀로로 계산기 두 개를 준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콩순이는 콩순이, 뽀로로는 뽀로로니까. 그 해는 기관생활을 처음 하는 4살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놀잇감 공유가 매우 어려웠다. 그중 성우는 한 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뒷목 잡고 쓰러지는 드라마 속 회장님처럼 얼굴이 시뻘게져서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며 “너어~~~!!!! 너어~~~!!!” 소리치는 아이였다. 성우는 당시 외동이어서 어른들과 놀이하는 상황이 익숙해 항상 양보받아왔고, 집에서 놀다 보니 모든 놀잇감은 성우 것이라 잠시 다른 것을 하러 갔다 와도 여전히 성우 것이었다. 그런데 교실 상황은 다르지 않은가. 그 해 아이들은 가방에 무언가를 가득 담는 것을 즐겨 큰 가방은 인기가 많았다. 음식 모형을 가득 담아내는 성우의 작은 손은 아이한테 말하기 적절치 않겠지만 흡사 욕망의 손이었다. 놀이 아이디어가 많은 성우가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걸 하러 다녀오면 그 가방은 누군가의 차지가 되었다. 역시나 성우는 발까지 들썩이며 흥분했다. 그 기관은 투담임제라서 나 말고도 다른 교사가 함께 생활했는데, 너무 빈번한 갈등상황에 가방을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선생님은 놓고 가면 다른 친구가 쓸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성우는 “아까는 내 거라고 했잖아요!!”라며 소리치는 웃픈 상황. 나는 ‘그랬구나’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성우가 화가 나면 더 흥분한 듯 “진짜?? 우리 성우 많이 속상했겠다~ 선생님이라도 누가 선생님 것을 가져가면 엄청 속상하던데! 그러면 안 되지만 막 친구 머리를 콩! 하고 싶었겠는걸~?” 성우의 눈이 동그래졌고 회장님 같이 소리치던 성우는 내 품에서 아이답게 속이 다 시원해 보일 정도로 엉엉 울었다. 조금 진정이 된 성우에게 ”그런데 우리 성우는 참은 거야?? 친구 머리 콩! 하지도 않고 참았어?? 대단하네 우리 성우! “ 이런 오버스러운 공감이 몇 번 반복되었을까. 어느 순간 성우는 성우가 만든 블록집에 친구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아직 네 것, 내 것 개념이 없어 성우가 만든 집을 자신의 집이라 우기던 친구에게는 자신의 집 옆에 새로운 집을 지어 선물하는 것이다. ”다됐다! 이것 봐! 윤주 집도 멋지지??? “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다 날 뻔했다. 그 기관을 그만둔 지 오래지만 너무 소중해서 그날의 영상은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그랬구나’라는 말. 당신을 당신으로 인정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자존감이라는 말로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내 만족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이 높이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에릭 번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인정욕구가 있다고 한다. 타인에게 받은 인정은 잘 살고 싶은 생활태도를 가지게 한다는 그의 이론을 볼 때 우리는 모두 인정욕구를 채울 필요가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랬구나의 힘‘을 믿어보려 한다.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실제 나와는 달라서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다른 의미로 들린다고 한다. 오늘도 잘 살아낸 거울 속 나에게 “그랬구나, 오늘 힘들었지? 오늘도 잘 살아내줘서 고마워.”라며 어색하지만 짧은 인사를 건네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린이들은 유연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