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기(친구)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보면 ‘놀이리더’가 있다. 놀이의 내용을 정하기도 하고, 역할을 분배하기도 하고, 놀이 방법이나 규칙을 정해 이끌어 나가는 주도적인 아이.
놀이에 따라 놀이리더는 바뀌기 마련이다. (이래서 나는 놀이가 좋다.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서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들은 반복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 관심을 갖기 시작한 놀이는 며칠이 되기도 하고, 몇 주가 되도록 지속되기도 한다. 그럼 그 기간 동안은 한 놀이리더가 계속 놀이를 이끌어 가는데, 그 와중에 그런 리더의 모습을 보고 리더의 역할을 이해하며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놀이리더는 리더가 되었을 때 얼마나 좋을까. 어린아이는 무릇 어른의 통제 아래 지내고 순응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데, 놀이에서 만큼은 어른처럼 타인을 통제하는 경험을 하니까 말이다. 신기하게도 리더를 오래 맡는 아이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부드러운 말투, 자세한 설명, 유머러스함 등을 겸비했다.
어느 해인가 다섯 살과 여섯 살이 함께 생활하는 혼합연령을 맡은 적이 있다. 이러면 보통 다섯 살 아이의 보호자들은 우리 아이가 형언니 사이에서 치이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물론 치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1년 더 살았다고 다섯 살보단 논리가 있어 그럴듯한 이유로 아이들에게 더 매력적인 놀잇감을 차지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대부분은 형언니가 되었다는 어쩌면 우쭐한 마음으로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손은 어떻게 씻는지, 복도를 다닐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알고 있는 지식과 태도를 전수하기 바쁘다.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연령의 차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정민(가명)이라는 아이와 민지(가명)라는 아이, 그리고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함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길래 귀 기울여보았다. “야! 권정민 너는 왜 너 마음대로만 해~~ 우리도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민지의 말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아니야~“라는 말로 반론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말은 ”알았어. 알았어. 이번엔 언니 마음대로 해~“ 살살 웃으면서 말하는 정민이. 민지를 비롯한 여자 아이들은 모두 갖가지의 의견을 내며 새로운 놀이 규칙을 정하고 놀이를 한다. 잠시 후 아이들의 놀이를 보면 정민이는 다시 리더가 되어있다. 어느 날 민지 어머님께서 묻는다.
”선생님 그런데 정민이라는 아이는 몇 살인가요? “ 잠시 무슨 질문인가 싶었다. “정민이는 5살이에요. 어머님.”, ”아~ 그렇구나! 아니 민지가 그러더라고요. ‘정민이는 다섯 살인데, 우리 친구야!’라고요. “ 요맘때 아이들은 나이에 엄청 민감하다. 아마 다들 그런 기억이 있을 거다. ”너 몇 살이야? “, ”우리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이야! “, ”우리 엄마는 몇 살이야~“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 그러니 민지가 엄마에게 한 말은 큰 의미를 담는다. 심지어 정민이와 민지가 함께 놀던 여자 아이들 무리 역시 모두 여섯 살이었다.
재미있는 건 리더들의 노력이다. 한 번은 7살 반에 있었을 때 일이다. “어? 너도 핑크야?”(아이들은 신기하게 다른 색은 한국어로 말하는데, 핑크는 핑크다.) “와 너도? 우리 다 핑크네? “ 등원하자마자 가방과 옷을 정리하던 아이들 사이에 작은 이야기 꽃이 폈다. 우연히 여자 아이들 모두 상하의 둘 중 하나가 핑크였던 것이다. 마치 드레스코드가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한 아이만 검정&골드를 입고 온 것이다. 어쩐지 그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였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보며 ”어? 그런데 너 마스크 줄이 핑크야! “, ”어? 그러네? 우리 모두 핑크다! “라며 아주 작은 부분의 핑크라도 찾아 결속력을 다졌다. 그렇게 핑크의 날이 지나고 다음 날 아이들이 하나 둘 등원했다. 어제 그 아이가 들어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격려의 미소가 번졌다. 아이는 위아래 모두 핑크를 입고 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이들의 드레스코드는 없었다. 모두들 어제와 다르게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놀이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나만 기억하는 아이의 노력. 그렇다. 이 아이는 놀이리더를 여러 번 맡은 아이이다. 어느 정도로 아이들이 잘 따랐냐면 “여기는 무슨 색 칠할까? 여름아(가명)?”라고 물을 정도로. 한 아이는 점심을 먹는 양까지 여름이를 따라먹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여름이의 팬이었다. 그런 여름이도 한 번 집단에서 소외감을 느끼면 어떤 위로를 건네도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오래된 데일리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것을 보면. 대외적으로 잘 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잠깐은, 속내는 쉽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를 맺지 않고 살기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다. 관계에 지치고 힘들다가도 이 두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힘이 난다.
‘그래 고작 다섯 살도, 일곱 살도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까짓것 해보자.‘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