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결정
최근 유아교육을 둘러싸고 유치원삼법 이후 시끄러운 것 같다.
유보통합이니 유치원 등원시간을 8시로 하자느니
무엇이 가장 최선의 방법일까? 무엇을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두어야 할까?
예전에 직장동료이자 친구가 된 J양과 함께 여행 중에 이런 이야길 했었다.
그때는 직장어린이집에 근무할 때였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 했었다.
감사하게도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꽤나 원칙적인 원장님을 만나 오직 아이들만 생각하고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교육을 실천하며 교사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며 다녔었다.
원장님부터가 아이들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해서였던 걸까….
우리들의 세미나 주제도 보육계획안 작성도 아이들의 발달을 현실 상황에 맞추어 어떤 것이 가장 최선 인가와 같은 고민과 생각들이 모였었다.
그때 했던 논의들이 아직도 내가 교육활동을 실천하는데 가장 큰 거름이 되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와 나는 직장어린이집의 영아들(만 0~2세까지)이 얼마나 발달적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놓였는지 이야기했었다.
그 무렵은 정책기조 역시 사회가 아이들을 키워주겠다는 식이여서 영아반이 확대되고 있었다.
물론 현직에 있으면서 부모지만 부모답지 않은 행동으로 아이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상황도 여럿 보았다.
또 부모가 노력을 하더라도 잘못된 방향을 선택해 나가면서 아이는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부모들과 함께 하느니 차라리 훈련된 교사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편에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들 말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부모 됨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믿기에 이런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같다.
내가 만 0세 반을 맡았을 때 일이다. 우리 반은 교사 4명에 10명의 돌쟁이들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날은 나랑 가장 애착이 잘 맺어진 인정이가(가명)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인정이는 모방놀이를 아주 잘하고 말도 트일 무렵이라 인정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웠다. 그날도 인정이는 모형 전화기를 가지고 베이비 워커를 끌면서 나와 전화통화를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역할극에 꽤나 자신이 있었고 인정이도 까르르 웃으면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저녁 8시가 지나자 밖은 꽤 어두웠고 우리는 시간은 모르지만 밝음과 어둠으로 사회적 시간을 느끼는 인정이를 배려하여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둔 터였다. 그때 아빠는 고모와 함께 인정이를 데리러 교실로 오셨다. “인정아! 아빠 오셨다!” 인정이도 아빠를 반길 수 있도록 한껏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정이를 불렀다. 그 순간 인정이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쿵쾅 소리를 내며 내 곁으로와 아빠와 고모를 등졌다. 인정이 아빠는 당황하신 목소리로 “인정아.. 아빠 왔어… 아빠랑 고모도 왔는데?” 했지만 인정이는 집에 가길 거부하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기관에 오래 머무는 것은 영아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5~6세 혼합반을 맡았을 때 우연찮게 반 아이들이 다른 반에 비해 일찍 귀가하는 편이었다. 연우는(가명) 나와 연이어 같은 반이 된 어린이 었다. 어린이집 생활을 무척 좋아하던 연우였는데, 그 해만큼은 어머님도 나도 매번 같은 고민으로 여러 차례 상담을 했었다. 바로 연우의 소원이 “엄마, 나도 낮잠 자기 전에 데리러 오면 안 돼? 나 엄마랑 지하철 타고 도너츠 먹고 집에 가면 안 돼?”라는 것이다. 그런 연우가 안쓰러워 집 근처에서 엄마가 업고 돌아갈 때면 연우는 “엄마 나 이제 내릴래. 연우 무거워서 힘들잖아.”라며 엄마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연우였다.
또 나는 교사 자녀들을 자주 맡았었다. 나와 같은 재단 어린이집이지만 다른 지점에서 근무하는 교사 자녀가 우리 반에 다녔을 때도 아이의 소원은 이것이었다. 엄마가 둘째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갖게 되어 일찍 귀가할 수 있게 된 날. 함께 저녁을 먹다가 돌연 아이가 엄마의 볼을 쓰다듬으며 “엄마 우리 지금 행복하다~그치?”라는 것이다. 무엇이 행복한지 물어보자. “우리 이렇게 같이 밥 먹으니까 좋다~”라고 답했단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의 행복을 뺏는 느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며, 아니 평소에도 일하러 가야 하는 부모님과 헤어질 때면 몇몇 부모님들께선 회사에 가야 너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사줄 수 있는 거라고 달래신다. 자신이 일한 만큼 잘 살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라지만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유년기는 짧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또 여러 학자들이 밝혀낸 것처럼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사회가 이러니 받아들여야 한다던가 하는 얘기 말고 진짜 아이들이 행복한 결정이 내려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