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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놀아요

사회성 기르기

by 하얀




어린이들이 교육기관에 처음 오게 되면 많은 부모님들은 또래관계를 걱정하신다.

“우리 아이가 친구가 없어서 속상할 거 같아요”, “놀이 사진을 보니 매번 혼자 노는 것 같더라고요.”와 같은 상담을 요청해 온다.

아직은 자기중심적인 유아기의 어린이들은 우선 혼자서 충분히 탐색할 기회가 필요하다. (연령이 어린 경우)

내가 채워지고 나서 남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또래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서 ‘사이좋게 놀자’는 것은 꾸준히 달성해야 할 교육목표라고 할 수 있다.



3월이 되면 어린이들과 함께 학급 규칙을 정하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 교사가 미리 선정한 약속들을 끊임없이 일러준다.

그럴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친구와 사이좋게 놀아요.’

유치원은 기껏해야 5년을 살아본 어린이들이 오는데, ‘사이좋게’라니 이해하기 어렵다.

‘사이좋게’라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이 놀이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만하게 해결하고 서로 배려하며 놀이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자기중심성이 강한 시기의 어린이들이 어떻게 남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놀이할 수 있을까.

어른인 우리도 타인과 함께 무언갈 하다 보면 난관에 봉착하고 맘에 쏙 들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어린이들에게 갈등은 필연적이다.

친구랑 놀아본 경험이 많아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도 많아지는 건데,

가정에서 어른들과 혹은 형제자매와 놀이를 한다 해도 양보받아왔을 어린이들이 남을 배려해서 놀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갈등상황을 해결해 나가며 사회성이 발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갈등상황을 통해 사회성을 길러나가면 좋을까?



어떤 가정은, 교사는 동화를 들려주며 ‘사이좋게’를 가르친다.

하지만 또래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상황은 동화와 똑같지 않다.

동화도 어린이들의 삶을 반영하여 표현해 내긴 했지만 어린이들은 막상 자기 상황이 되면 쉽게 적용해 내기 어렵다.

물론 비슷한 주제의 동화책을 누적적으로 들려준다면 어린이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때론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어린이들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주인공에 이입하여 감정을 해소해내기도 한다.



어떤 가정은, 교사는 대화를 통해 가르친다.

대화에도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 예방차원에서 나누는 것, 다른 하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이다.

상황이 벌어진 후라도 때론 어른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정리해 주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내가 경험해 온 바로는 어른이 일방적으로 정리해 주었을 때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존하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이른바 ‘선생님께 이르는 어린이’가 많은 교실이 된다.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갈등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아무리 단계적으로 질문한다 해도 말이다.

그래서 보통은 많은 걸 경험해 본 어른이 해결책을 많이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걸 시도해 본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어내다 보면 비슷한 상황에서 어른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어린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럼 너랑 나 둘 다 이게 하고 싶은 거니까 이렇게 정해볼까?”

“아 너도 이거 하고 싶어? 그럼 너가 먼저 가지고 놀아. 이따가 긴 바늘 5에 가면 나 줘.”


자연스럽게 남을 배려하며 ’ 사이좋게 ‘ 놀이하는 교실이 되어 간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투는 것.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 부디 자주 싸우는 형제자매를, 우리 반 어린이를 나무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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