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사람꽃

by 맥문동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천 톤짜리 망치에 쿵! 하고 맞는 장면처럼 삶에서 생각의 전환점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물다섯 조금은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첫 아이를 출산했다.

첫째 딸은 신생아시절 신생아 경련을 겪었고 그로 인해 뇌손상을 크게 입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장애를 갖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고, 엄마인 나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하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묻고, 온몸을 구르며 울고 또 울었다. 울새도 잠시 병원에서 아기가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들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나가는 젊은 의사 선생님들에게 우리 아기 어떻게 되는 거냐고 붙잡기도 했다.

몸조리가 안된 몸으로 병원생활을 하며 밥도 거의 제대로 삼키지 못했지만, 자식이 아프니 어떤 초인적인 힘인지 지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하며 아기가 안정이 되어 갔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온 어느 날,

아이옆에 축 쳐져 앉아있는 나에게 지긋이 이야기한다.

"왜.. 우리 자식한테 장애가 있으면.. 안 되는가?"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아파도 내 자식이고 몸이 불편해도 내 자식인데 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 하며 내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자녀가 장애를 갖게 된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원인을 찾는 일들을 찾아 헤매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애태워왔던 마음들이 정리되었다.

천사처럼 밝은 헤보 우리 딸은 벌써 스무 살이 되었다. 여전히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서 커오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렇게 20년을 내 곁에서 가장 멋진 꽃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다.


큰 딸 출산 후 두려움에 둘째 아이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주변의 기도와 엄마의 권유로 고민하다가 5년 만에 둘째를 출산했다. 혹시나 해서 많은 검사들을 받고 건강하다는 소견을 듣고도 불안함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둘째 출산 후 몸도 맘도 약해진 틈에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우울증을 앓고 나서야 아~ 삶이란 게 이렇구나! 싶을 만큼 깊게 아팠다.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오리란 생각도 못할 만큼 무지했었다.

그 당시 동네 작은 정신과의원에서는 참 아쉽게도 약 처방만 해줄 뿐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아서 혼자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넣고 무작정 입원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신생병원이기도 했고 갑상선에 이상소견이 있어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6인실에서 며칠 동안 쉼을 갖게 되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옆칸 침대에 계신 순창에서 오신 할머니와 나긋이 얘기를 나누었다.

"자네는 젊은디 왜 여그 왔는가?"

"그냥 잘 몰라요 할머니, 큰애는 장애가 있고, 둘째를 낳았는데 몸도 힘들고 마음도 너무 힘들어요 갑상선에는 혹이 있대요."

한동안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할머니는 갑자기 "그거 공주병이여! 우리 시절에는 갑상선 혹 그런 거 아무도 모르고 아파도 살림 다하고 키우고 살았어~그리고 다 그렇게 살아! 그냥 공주병이여."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말씀이었는데도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머리를 망치로 맞는 듯한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간 씩씩하게 살면서도 남들이 고생한다고 해주는 말들에 내가 정말 고생하는 줄 알며 살았구나~ 살아가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슬픔과 아픔을 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모르고 나만 아프고 힘든 줄 착각하고 공주처럼 내 연민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공주병 이론에 대한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생각의 전환을 이루고 나니 고생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되돌아보니 당시 순창 할머니는 나에게 그야말로 쇼펜하우어가 되어주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조용한 대화 후 다른 침대의 인생 선배 언니들과의 폭소와 치킨을 뜯으며 병원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몸과 마음이 회복된 후 다시 그때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