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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rystar Jul 08. 2019

라면 먹을까?

라면 먹을까?


썸 타는 남녀들이 얘기한다는, 그 ‘라면 먹을까’가 아니라, 주말 아침이 되면 남편이 나에게 어김없이 꺼내는 이야기다.


난 결혼 전엔 라면을 종종 먹었다. 귀찮아도 먹고, 당겨서도 먹고.

날이 더우면 입맛을 돋우는 비빔면을 해 먹곤 했는데, 고추장과 참기름이 첨가된 소스를 비닐장갑 낀 손으로 조물조물 비빌 때면, 뭔가 내가 거창한 음식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고, 올리브유를 둘러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짜장라면도 훌륭한 한 끼 식사였다. 일반 라면의 맛은 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우리 엄마도 라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주 가끔씩 TV에서 라면 CF가 나오면,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지' 하며 입맛을 다시면서, 찬장 안 라면을 꺼내 끓여먹자고 먼저 얘기하실 때도 있긴 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 부부는 한쪽이 약속이 생기는 날, 웬만하면 다른 한쪽도 약속을 잡는 편이다.

그리고 쉬고 싶거나, 약속을 잡지 못하는 날이면 한 명은 당연히 집에서 혼자 밥을 먹게 된다.


내가 약속이 있고 남편만 집에 있는 날엔, 남편의 저녁 메뉴는 거의 라면이다.

남편은 결혼 전에 자취를 오래 했어서 결혼할 시점에 나보다 요리를 훨씬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있으면 그렇게 라면을 끓여 먹는다.

희한한 것은, 결혼 전에는 라면을 종종 끓여먹던 내가, 남편이 혼자 있는 날 어김없이 라면을 먹겠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쓰이고 속상하다는 거다.

왜 몸에 좋지도 않은 라면을 저렇게 자주 끓여먹는 건지, 본인이 잘하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거나, 하다못해 간단하게 간장계란밥이라도 해 먹으면 안 되나.


휴일이라 느지막이 일어난 어제도, 남편은 말했다.


라면 먹을까?


"안 돼. 어제 아침에 짬뽕 먹었잖아. 점심에는 짜글이에 (밥이 애매하게 부족해서) 라면사리도 넣었잖아. 그럼 라면 먹은 거지. 절대 안 돼."


"에이, 그건 라면이 아니지~"


우리 부부의 라면에 대한 실랑이는, 아마도 매주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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