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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rystar Jul 11. 2019

우산과 호의

몇 년 전 비가 쏟아지는데, 내 옆을 지나치는 여학생이 우산 없이 홀로 걷고 있었다.

걷던 길이 한 방향으로 난 길이어서, 우산을 잠시라도 나누어 쓰려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 잠시 같이 길을 갔다. 그때 무슨 말을 나눴었는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몇 걸음 걸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생과 나의 목적지는 다행히 같았고, 우린 기분 좋게 인사하며 헤어졌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다.




친정집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7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깜빡하고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날 지하철 출구 앞에 서서 집 쪽을 바라볼 때면, 평소보다 왜 그리 멀어보이던지.

하필 출구 앞에 바로 보이는 편의점에는 우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를 사 가렴' 하고 있는데, 이 가까운 거리를 가려고 우산을 사느냐, 아니면 빗속을 뚫고 뛰어가느냐는 늘 고민거리였다.

딱,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잠깐 우산을 나눠 쓰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아마 그래서 그때 그 학생에게 선뜻 우산을 같이 쓰자고 말을 걸게 됐던 걸까?


하지만 그때 이후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우산을 같이 쓰자고 권한 적이 없었다.

고민이 된 적은 두어 번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괜히 나 혼자 오버하는 것 같고, 그저 무관심이 예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갑자기 내린 비로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환승을 하고 10분 정도 지나 집 근처에서 내렸는데, 내 앞에 내리신 아주머님도 우산 없이 걸어가셨다. 어차피 그 근처에 사실 것 같아, 우산을 씌워드리며 “잠깐 씌워드릴게요”라고 하는데 그만, 아주머님이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셨다.

아주머님의 반응에 나도 깜짝 놀라,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내가 무섭게 생겼나?', '내가 너무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말을 걸었나',...


아주머님은 어쩔 줄 몰라하시며, 당신이 심장 쪽이 좀 아팠어서 워낙 잘 놀라신단다.

호의를 베풀려던 것뿐이었는데, 내가 그만 심장 약한 아주머니를 놀라게 해드리고 말았다.


죄송하다고 반복하는 나에게 “어유 전혀 그러지 마요~ 그리고 우리 집은 바로 건너에요!” 하시면서,

뛰어서 길을 건너시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놀라지 않게 자연스럽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근데, 이거 정말 호의가 맞는 건가?

아무래도, 당분간 우산은 나 혼자 써야겠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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