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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rystar Jul 08. 2019

아빠와 딸

너무 늦게 띄우는 후회의 편지

어릴 때 난, 애교가 많은 귀여운 딸이었단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사이가 서먹해졌던 건 아마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였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집의 쓴소리 담당은 주로 아빠였고, 사춘기의 나로서는 아빠의 규제가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첫째인 나에게는 늘 주변의 기대에 따른 부담감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였던 것 같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에 몰래 컴퓨터를 켜서 반 친구들과 채팅을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친구들과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별을 보다 들어가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그리고 당연하듯,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학구파인 아빠는 나에게 많이 실망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쌓인 감정들을 조근조근 털어놓지 못한 채, 점점 더 어색한 사이가 됐다.


애교 없는 큰딸과 달리, 내 동생은 애교가 철철 넘쳐흘렀다. 중학생 때까지도 아빠의 출근길에 볼뽀뽀를 날리는 동생 뒤에서, 나는 조용히 “다녀오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아빠와의 서먹함은 있었지만, 난 절대 아빠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좀 어색한 사이지만,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온 아빠와 대학생 딸의 다정한 모습처럼, 나도 수험생 시기만 지나면, 대학에 가면 아빠한테 좀 더 친구처럼 다가가야지... 그런 생각을 늘 하곤 했었다.


그러던 중 결국 나는 타지에 있는 친척집에서 재수를 하게 됐는데, 충격적이게도 그 해 가을, 아빠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암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바라던 아빠와의 행복한 시간을 다시는 보내지 못했다.




그 해 초에 아빠에게서 받았던 메일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뭐라고 답장을 보냈더라..? 아마도 컴퓨터를 자주 할 수 없어서 메일을 자주 보내진 못할 것 같다고 답했던 것 같은데...


찬찬히 아빠의 메일을 다시 읽어본다.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어떤 고민을 하며 생활하는지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는 새롭게 아빠의 위치를 찾겠다는 것, 그리고 나의 밝음과 배려심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 메일을 받은 날로 돌아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답장을 하고 싶다. 나도 그동안 죄송했다고, 아빠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낯간지럽지만 내 마음을 빠짐없이 차곡차곡 담아 보내고 싶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사춘기 딸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막막했을 텐데...

애교 없는 못난 딸은 후회가 가득한 편지를 늦게나마 하늘에 띄워 보낸다. 편지가 닿을 수 있길 기도하며..




글을 올리고 곰곰 생각해보니, 마지막 두 단락은 몇 년 전 내게 선물같이 다가왔던 책인, 이어령 작가님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키스’에 무의식중에라도 영향을 받은 단락임을 느낀다. 내게 위로를 주던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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