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에도

2020 팬데믹의 서막 - 12

by 그저남기는자

1. 서비스입니다

팬데믹 초기, 우리에게 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청에서 확진자 명단이 내려오는 순간, 사무실은 거대한 콜센터로 변했다. 낮에는 "왜 나를 가두냐"는 날 선 비난에 영혼이 갉아먹혔고, 밤에는 끝없는 질문에 목이 잠겼다. 눅눅한 마스크 안쪽은 입김으로 축축했고, 서류를 넘기는 손끝은 종이에 베여 쓰라렸다.


밤 10시, 새로 도착한 100명의 명단 앞에 우리는 결국 퇴근을 접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허기를 채우려 겨우 문을 연 중국집에 짜장면 몇 그릇을 주문했다. 한참 뒤 도착한 철가방에선 주문하지 않은 요리들이 줄줄이 나왔다. 탕수육, 깐풍기, 그리고 군만두까지.

"사장님, 잘못 온 것 같은데요?"

당황한 우리에게 배달원은 무심하게 툭 던졌다.

"고생하신다고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늦게 일하는지 모르셨다고, 많이 드시래요."

AI Image - 주문보다 많이 배달된 음식들

더 묻기도 전에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온종일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원망과 불안의 목소리들 사이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수고한다'는 실체 있는 온기를 건네받았다. 그날 밤, 이상하게도 짜장면이 조금 짰다. 아마 우리가 먹은 건 기름진 튀김이 아니라, 누군가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2. 신발 던지기

보건소 앞에는 이름 없는 온기들이 쌓였다. 샌드위치부터 세탁기까지, 재난 속에서도 세상은 생각보다 다정했다. 그중에서도 의료진의 '전투화'라 불리는 C사의 신발이 들어왔을 때, 지친 직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몇 켤레 안 되는 상품을 두고 우리는 소박한 이벤트를 열었다.

AI Image - 신발던지기로 뚫린 천장

이름하여 '신발 멀리 던지기'. 한 직원이 전의를 불태우며 신발을 힘껏 걷어찼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신발이 '퍽' 소리와 함께 천장에 박혔다. 아니, 그대로 천장을 뚫고 사라졌다. 정적도 잠시, 하얀 가루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멍하니 구멍을 바라보는 직원의 표정에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재난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터져 나온 진짜 웃음이었다.


다음 날, 천장을 고치러 온 수리업체 사장님은 사연을 듣더니 껄껄 웃으셨다. "아이고, 덕분에 다들 웃었다니 다행이네예. 됐심더, 돈 안 받을랍니더. 고생하이소!" 손사래를 치며 떠나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우리는 신발 하나 던졌다가 사람 마음 하나를 더 받았다는 것을. 뚫린 천장 사이로 들어온 건 찬 바람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함께'라는 감각이었다.



방호복 속에 갇혀 숨 가쁘게 버티던 그 시절, 우리를 숨 쉬게 했던 건 거창한 정책이나 시스템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배달된 탕수육 한 그릇, 천장을 뚫어버린 황당한 웃음소리, 그리고 괜찮다며 손사래 치던 뒷모습들. 그 사소하고 다정한 '사람의 마음'들이 모여, 우리는 결국 그 긴 겨울을 건너올 수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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