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팬데믹의 서막 - 11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내 마음이 유독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었다. 휠체어에 의지해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시던 어르신, 본인보다 덩치가 커버린 스무 살 다운증후군 아들의 손등을 연신 쓸어내리던 어머니.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도 가장 날카롭게 마음을 베고 지나가는 건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처음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텐트 안으로 들어선다.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벽 너머의 친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다 먼저 검사를 마친 아이의 비명이 텐트를 찢고 들려오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줄을 서 있는 동안 불안하게 부모를 올려다보는 아이들과, 애써 태연한 척 허공을 응시하는 부모들. 선별진료소 앞마당은 매일 그런 전쟁을 치렀다.
2020년, 네 살 딸아이도 그 전쟁터의 예외는 아니었다. 친구가 아프거나 본인이 조금이라도 훌쩍이면 등원을 포기하는 것이 시대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 기운에 들렀던 동네 병원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상담이 길어져 마스크를 잠시 내렸던 찰나의 순간이 화근이었다. 딸아이는 금세 '검사 대상자'라는 차가운 이름으로 분류되었다. 어린이집과 감염팀은 초조하게 아이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 전날부터 나는 아이를 달래며 거짓말을 했다.
"셋만 세면 끝이야. 하나도 안 아파. 정말이야."
엄마가 일하는 멋진 곳에 간다는 말에 들뜬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소풍이라도 가듯 선별진료소에 도착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방호복을 입은 요원이 인사를 건넸다. 고글과 페이스 실드까지 장착한 모습은 아이의 눈에 다정한 이웃이 아닌, 정체 모를 '우주인' 혹은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입 벌려볼까?"
우주인의 말에 평소라면 곧잘 벌어지던 입이 굳게 닫혔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입안 채취를 마쳤지만, 진짜 고비는 코였다. 나는 동료와 눈빛을 교환했다. 아이 검사는 단 한 번의 타이밍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OO아, 엄마가 셋만 세면 된다고 했지?"
검사하는 직원은 딸의 다리를, 아버지가 아이의 팔을, 나는 아이의 머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자, 엄마가 셀게. 하나, 둘... “
셋을 채 내뱉기도 전이었다. 차가운 면봉이 아이의 작은 콧구멍 깊숙한 곳까지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아이의 몸이 활처럼 뒤틀렸다. 숨이 턱 막힌 듯 일그러진 얼굴. 다행히 채취는 한 번에 끝났다. 주변의 직원이 연신 대견하다며 칭찬을 쏟아냈지만, 아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텐트를 빠져나왔다.
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제야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아이가 내뱉은 말은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엄마 거짓말쟁이야. 안 아프다 했잖아. 나 배신했어. 왜 나한테 이래?"
네 살짜리 아이가 끌어올릴 수 있는 모든 억울함과 슬픔이 담긴 통곡이었다. 검사할 때 수천 번 해온 "잠깐 따끔해요"라는 말이, 내 자식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변명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날은 일찍 퇴근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밤새 기분을 풀어주려 애를 썼다. 한참을 울다 지친 딸이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엄마, 그럼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줘."
"말만 해. 엄마가 다 들어줄게."
"음... 그럼 코로나 없애줘."
잠시 숨이 멎었다.
"... 응. 엄마가 최선을 다해볼게."
또 한 번의 거짓말이었다. 바이러스를 박멸할 힘 따위 내게 없었지만, 아이의 세계를 무너뜨린 그 공포만큼은 내가 다 치워주고 싶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코로나는 끝이 났지만, 그날 아이의 눈을 피하며 보탰던 거짓말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선명한 생채기로 남아있다. 사랑하기에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했던, 그 지독했던 계절의 기억과 함께.
이제 3학년이 된 아이는 병원 앞에 서도 더는 울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 나 이제 씩씩하지?" 하며 먼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부쩍 자란 뒷모습에서 그날의 서러웠던 네 살 꼬마를 본다.
"엄마, 코로나 진짜 없어졌어?" 가끔 아이가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다. 세상은 다시 활기를 찾았고 마스크 속에 감춰졌던 미소들도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다정한 거짓말'을 주고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 거짓말들이 모여 결국 아이의 세계를 지켜냈다는 것을.
비겁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정직한 사랑을 건넨다. 하지만 만약 또다시 거대한 불행이 아이의 앞길을 막아선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다시 한번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거짓말쟁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