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호트와 낙인효과(2)

2020 팬데믹의 서막 - 9

by 그저남기는자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보건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그 아파트에 살았던 주민이라고 했다.


“그때 검사 나오셨죠. 그 밤에 많이 추웠을 텐데…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그 일 이후로,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계속 곁눈질을 받으며 살았어요. 격리는 풀렸는데… 계속 눈칫밥이었어요. 커피 한 잔 사러 나가도 꼭 외출 나온 사람처럼 단정히 입고 나가야 했어요. 아파트 정문엔 밀가루와 달걀들이 날아드는 날도 있었어요. 관리인이 계약 연장하겠냐고 물었을 때 바로 말했어요. 나가겠다고요. 더는 ‘코로나 낙인’ 속에서 살기 싫어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런데요…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그 종교도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방역이... 잘된 건가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밤의 체온과, 장갑 속에서 굳어가던 손끝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 최선이 누구의 삶 위에 놓였는지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대답 바라서 묻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해서 좀 나아졌나 궁금했어요. 우리는 계속 낙인을 안고 살고 있었거든요. 이만 끊을게요. 저, 이제 거기 안 살아요. 그리고 거기 앉아 있는 공무원들이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이런 말 하고 싶었습니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제야 처음으로, 코호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확산 초기의 방역은 서로를 향한 경계에 가까웠다. 처음엔 어떤 나라에 대해, 어느 순간에는 특정 종교가, 또 어떤 때는 특정 지역이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직접 무언가를 휘두르진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낙인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지나쳤다.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한 쪽에 서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 후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둘 떠났다. 2022년 11월, 마지막 사람이 집을 비웠다. 건물은 한동안 불이 켜지지 않았다. 대구시는 2023년 1월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청년주거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막으려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지켜졌고 어디부터가 멈추었는지는 지금도 또렷하게 말하지 못한다.


*주거특화형 도시재생사업추진, 청년행복주택.












그 아파트 앞을 다시 지나간 적은 없다. 지도를 확대해 위치를 확인해 본 적도 없다.

다만 가끔, 늦은 밤 보건소 불이 하나둘 꺼질 때면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붉은 테이프, 켜지던 창문 불빛, 그리고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

우리는 그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때는 최선이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나는 밤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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