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호트 격리와 낙인효과(1)

2020 팬데믹의 서막 - 8

by 그저남기는자

“한○○ 아파트 코호트 격리 조치 및 인원차출 요청.”

2020년 3월 초, 꽃샘추위가 매섭던 밤, 아홉 시 무렵 공문이 도착했다. 한 아파트 전체에 코호트 격리*를 시행하고, 내부 확진자를 가려내기 위한 현장 전수 검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무렵 대구는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아파트에서 확진자와 접촉자가 유독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150여 명의 주민 가운데 이미 수십 명이 확진된 상태였다. 결국 아파트 전체 격리와 긴급 검사가 결정됐다.


퇴근했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우리 보건소에서 나간 검체 인력만도 스무 명이 넘었다. 밤 10시쯤 도착한 아파트 입구에는 ‘출입 통제’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마당 안에는 시 공무원, 경찰, 복지 인력까지 모여 있었다.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한 긴장감이 공기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테이블을 만들고, 레벨 D를 입고 꽃샘추위를 견디며 서 있었다.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즉시 건물 밖으로 내려 오셔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ChatGPT Image 코호트격리.png 코호트 격리된 아파트와 대기 중인 검사인력

어두웠던 건물에 불이 하나둘 켜졌다. 잠옷 차림의 주민들이 조용히 내려왔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에는 놀람과 경계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소란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검사가 시작됐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손끝의 감각이 먼저 굳어 갔다. 검사는 적막 속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한 공보의**가 말했다. “사진 한 번만 찍죠.” 기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방금 지나온 시간을 기록하려는 움직임 같았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빛에 반사된 눈동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분명 처음 겪는 밤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보건소에 도착했고, 검체를 연구원으로 보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무거웠다. 주민 대부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파트 전체 코호트는 피할 수 없었다.


다음 날, 격리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보건소 전화기는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로 쉴 틈이 없었다. 아파트 정문에는 달걀과 밀가루가 던져졌다. 코호트는 닷새 만에 해제되었다. 그리고 보건소는 또 다른 현안들로 시끄러웠기에, 그 일은 잊히기 시작했다. 더는 떠올리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기억이, 한 통의 전화로 다시 열렸다.



그날 밤 이후로도 우리는 많은 검사를 했고,

수많은 현장을 지나왔다.

하지만 어떤 밤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코호트: 주로 통계학이나 마케팅에서 쓰이는 용어로, 공통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군집화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코호트 격리란, 바이러스나 세균성 감염 질환자가 나온 시설을 폐쇄해 확산 위험을 줄이는 조치를 뜻하는 신조어(병원의 경우 주로 환자와 의료진을 함께 격리함.)

**공보의: 공중보건의사(줄여서 “공보의”), 의사나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군 복무를 대신해 특정기간 동안 농어촌 보건소나 공공병원 등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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