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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벽을 치며 눈물을 삼키는 신랑

by 소망이

이젠 알아요. 제가 다시 깊은 우울의 늪으로 들어간 것이 조울증의 세 번째 우울삽화였다는 것을~

그러나 그때는 제가 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다 낫았는데 다시 우울증이 재발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결혼까지 했는데 우울증이라니~


우울증의 가장 선명한 증상: 무기력과 죽고 싶음.

반찬을 안 했어요. 친정엄마가 반찬을 해 놓으시면 신랑이 안산에서 수원까지 혼자 가서 반찬을 매주 가지고 와서 밥을 차렸어요.

아침이 돼서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신랑은 자기가 지각하더라도 저를 깨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 학교 앞에 데려다줬어요.

집에 오면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어요. 신랑은 운동하고 와서 헬스장 1층 빵집에서 빵 사 먹자 저를 달래서 헬스장에 데리고 갔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신랑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의 심정을 알겠다며 벽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계속 빵이며 과자며 먹다 보니 고지혈증이 걸려서 생리가 멈췄어요. 그런데도 신혼이라 혹시 임신 아니야? 헛된 기대를 신랑이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한없이 답답하고 무거웠습니다.


다행히 전 완전 감정형의 우울질 기질이지만, 신랑은 이성형에 우울을 경험한 적이 없는 강인한 정신력의 사람이었어요.

제가 우울하다고 같이 그 늪으로 빠져들지 않았답니다.

고마웠던 것은 제가 매달 2~3kg씩 살이 쪄서 원래 몸무게의 12kg이 더 나가 맞는 옷이 없어 괴로워할 때 아빠, 엄마는 “딸, 걷자. 살 빼야지~”하고 저처럼 똑같이 괴로워하셨는데 신랑은 담백하게 “큰 옷 사러 가자”하고 말해 줬어요.


늘 좋은 모습,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랑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저를 퇴근길에 집에 데리고 가며 “너는 욕을 못해서 더 우울한 거야. 자 따라 해 봐. 이 ㅅㅅㄲ야~”하고 욕을 가르쳐 줬어요. 제가 조그맣게 따라 하니까 “더 크게” 하라고 훈련을 시켰답니다. 아직도 욕은 안 하지만, 화나면 욕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신랑에게 배웠어요.


가장 고마웠던 점은 2006년 6월의 어느 날 정말 일어날 수 없어 눈 꼭 감고 누워 있는데 “잘 자”라고 말해주며 이마에 뽀뽀하고 불 꺼주고 혼자 출근했던 거예요. “네가 학교 그만 다니면 너희 친정 부모님 빚은 어떻게 갚으려고? 난 그럼 뭐냐? 이건 완전히 사기 결혼 아니냐. “ 이런 말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신랑은 단지 제가 마음이 건강할 때 너무 행복하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다시 건강해져서 너무 다시 출근하고 싶어지면 마음이 아파서 후회할까 봐 안타까워했어요.

돌아봐도 너무 고마운 은인 같은 사람이에요. 만약 제가 착한 성품의 사람이 이상형이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 등 다른 이상형을 꿈꾸고 결혼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친정아빠는 제가 이렇게 우울증으로 아플 때 신랑이 옆에서 어떻게 저를 지키고 돌봐줬는지 알고 난 후로는 세상에서 우리 신랑이 최고라고 너무 고맙다고, 아빠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셨어요. 이후로 2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친정 아빠, 엄마에게 우리 신랑은 최고의 멋지고 고마운 사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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