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음대생의 비엔나 산책 (202601XX-1)

(별로 안) 바쁜 일상 속 틈틈이 즐기는 문화생활

by 돈 없는 음대생

일자: 20260123 - 20260130

장소: 오스트리아 비엔나

교통: SNCF / Deutsche Bahn

일정: 연주 / 시내 구경 / 성당 구경 / 박물관 관람 등등


빈 국립음대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졸업시험을 본다고 도와달라고 1년 전부터 연락이 왔었다.

역시나 당연하게도, 파리와 빈 양쪽 학교의 멍청한 짓들로 인해 이제서야 시험이 성사가 되었다.

같이 연주도 2-3번 정도 했던 곡을 시험곡으로 한다고 해서 기꺼이 도와주러 갔다.

그나마 경우있게 교통비는 자기가 부담한다고 해서, 최대한 저렴한 방법을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오라더니, 편도 가격을 얘기했더니 기차타고 오란다.

같은 돈 없는 그지 음대생 처지임을 알기에, 편도 200유로 비행기 대신 80유로 기차로 결정했다.


오랫만에 공식적으로 비엔나로 가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주변에 믿을 놈은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는 친구 집에서 자라고 하더니 출발 열흘 전에 갑자기 잘 곳을 구했냐고 물어본다.

그 친구 집에서 자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이사를 해서 불가능하단다.

여기저기 잘 곳을 급하게 수소문해서 어찌어찌 겨우 교수님들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죄 없는 교수님들을 위해 보르디에 버터를 사고, 비엔나 천재님을 위해 버터와 마카롱을 모셔왔다.

라뒤레 샹젤리제 지점
리미티드 에디션 디자인
초록초록 쇼핑백
아쉽지만 이거라도

연말 내내 어린왕자가 그려진 리미티드 에디션 상자를 팔길래 그걸로 살려고 했더니, 하필 끝나서 없단다.

대신 발렌타이데이 시즌을 겨냥한 리미티드 에디션 상자가 나와서 밋밋한 초록색이나 핑크색 상자보다는 나을것 같아 이걸로 골랐다.


버터는 라파예트 식품관으로 갔지만 한개도 안남아있고 다 털려서 멍청이 바게트들을 욕하며 La Grande Épicerie로 가서 약간 웃돈을 주고 사왔다.


드디어 12시간의 3개국 기차 투어가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6시반에 나와서 모든걸 내려놓고 출발했다.

엄청 긴 기차가 2개가 붙어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나뉘어진다.
이 칸에 꼴랑 4명 탔다.
스트라스부르를 지나자 마자 정차해서 경찰들이 타서 여권검사를 했다.

10분 정도 늦어진다는 기차는 오히려 5분 일찍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1시간 반의 갈아탈 시간의 여유를 두었지만, 일찍 도착하고 늦게 출발하게 되어 결국은 2시간을 기다렸다.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에서 파는 전형적인 독일식 음식
맥도날드에서 맥너겟 20개를 5.99에 팔면 무조건 가야지
이미 20분 이상 늦어진 기차

출발이 20분 정도 늦어질 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오늘은 이상하게 연착 없이 잘 가네 하고 있었다.

물론 도르트문트-빈 기차는 독일에서 가장 연착이 심한 기차 노선 1위를 차지한 기차여서 90분 정도의 연착은 다 계산해 두었다.


겨우 20분 연착이라니, 60분은 넘어야 25%를 돌려받는데 하면서 출발했다.

여유롭게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잔을 입에 물고 탔다.

한 정거장을 잘 타고 갔다.

Hanau Hbf에서 갑자기 기차가 안간다.

한참 있다가 방송이 나온다.

기차 헤드라이트가 맛이 가서 못간단다...


옛날부터 대도시였던 도시들은 중앙역을 관통하는 형식이 아니라 들어왔다가 기관사가 내려서 반대로 걸어가서 반대방향으로 다시 나가는 형식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헤드라이트가 맛이 간지 몰랐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반대 방향으로 출발을 했는데 작동을 안하니까 멈췄다.


소시지들이 머리를 맡대고 고민한 결과, 근처 어디 시골 역에 잠시 정차한 후 다시 방향을 반대로 돌려서 주변 지역을 돌아서 빈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90분 연착으로 늘어났다.


뭐 당연하게도 기차는 가면서 계속해서 늦어졌고, 2시간 뒤 같은 노선을 달리는 기차와 5분 간격으로 붙어다녔다.

늦어진 덕분에 사람이 안타서 쾌적했던 기차
쪼꼬렛 하나로 퉁치려는 나쁜 녀석들

어찌어찌 2시간 연착이 되어 비엔나에 도착을 했다.

교수님들 집으로 갔는데 옆집 문을 열어주더니 여기서 지내란다.

두 집 다 자기꺼란다...


시험 보는 놈이 우선이여서,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더니 거의 매일 리허설과 레슨을 잡아놨다.

14시 리허설로 적어놓고선 16시로 착각한 멍청한 나는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나와서 시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빈 오페라하우스

이번 시내 투어의 목표는 비엔나 3대 카페 투어였다.

제일 먼저 Sacher로 향했다.

자허토르테를 살까 하고 구경했는데, 값이 매년 오른다.

그리고 너무 사악한 가격이다.

Sacher
유리창
얘들도 곰돌이를 판다.
적당한 사이즈지만 일반 남성 손을 펼친 크기다. 그리고 57유로나 한다.

당연하게도 카페에서 뭘 먹거나 마시지는 않았다.

먹고 마셔봐야 그맛이 그맛이니까.

모르는 맛도 아니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구경을 하다 문득 다시 읽어보니 14시 리허설임을 깨닫고 서둘러서 학교로 갔다.

가는 길에 Seilerstätte에 있는 별관(?)을 지나쳤다.

그 앞에 살리에리 라는 피자집이 있는데, 2년 반 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집이다.

살리에리 피자집
별관(?). 여기서 시험 볼 줄은 몰랐다.

Stadtpark을 지나가는 길에 오리들과 비둘기들, 그리고 슈트라우스와 브루크너랑 인사를 하고 갔다.

눈 내렸던 Stadtpark
앞에 꽃이 있던 화단에 꽃이 없어서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슈트라우스 탄생 201주년 기념 인사
브루크너 탄생 202주년 기념 인사
오리 백조 비둘기들과 인사하러 가다 미끄러져서 저승사자랑 인사할 뻔 했다.
물이 들어 찬 Donaukanal은 거의 처음 본다.
동유럽에서 자주 보이는 커피차

학교로 가는 길에 예전 연습실 출입이 가능한지 확인하러 잠시 들렀다.

가는 길에 Streicher의 피아노 공방이 있었다는 Ungargasse 27번지도 들렀다.

아무것도 안써있다.

Ungargasse 27번지

드디어 오랫만에 (사실은 25년 여름에 비공식적으로 사물함 사용을 위해 들렀지만) 학교에 왔다.

변한건 없었다.


리허설을 하고 한 두명씩 방으로 들어온다.

친구들을 만나 열심히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전체 프로그램을 한 번 쭉 해보겠다고 불렀다.

피아노 선생님이 들어줬는데, 시험 전에 뭐 얘기 해봤자 변할 건 없어서, 그냥 별 문제 없이 끝났다.


월요일은 레슨을 받는다고 불렀다.


나가면서 건물 내부를 좀 찍어봤다.

이 집 두채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얼추 60년 생 언저리로 추측되는 교수님은 91년에 지금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을 샀다고 했다.

20년 할부로.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위치상으로 비엔나는 공산권의 가장 깊숙하면서도 최전선에 있었다.

위로는 체코슬로바키아, 오른쪽으로는 헝가리, 밑으로는 유고슬라비아.

50년 전에나 지들 땅이었지...

이들과 너무나도 가깝게 붙어있어서 80년대 말까지도 도시 자체가 개발도 안되고 투자도 안되었다고 한다.

공산권이 무너지고 나서도 거기에 누가 가냐면서 아무도 안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고 한다.

91년에 브라티슬라바에서는 현재의 8000유로 정도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고 하고, 부다페스트 인근에는 정원이 딸린 집을 20000유로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무도 안갔다고 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다시 옛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동유럽의 물류와 교통망을 집어 삼키려고 하자, 온갖 투자자들이 나타나서 집값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 직전에 자기는 운이 좋게 이 집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4년 뒤, 그냥 옆집이 비어서 또 샀다고 한다.


적당히 잘 살다가 13구에 있는 정원 딸린 집을 사서 이사가고, 이 집은 딸에게 넘겨주고 한 집은 딸의 사진 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

딸은 결혼해서 23구로 이사갔고, 13구의 집을 리모델링 하면서 1년 정도 그냥 여기에 살면서 한 집은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내가 온다니까 그냥 내어준 것이었다.

내가 있던 집 문
고풍스러운 계단 장식
오래된 집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법. 외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벽을 뚫어서 층고 사이에 세운다. 끝.

내가 졸업할 때 들어온 새로운 교수한테 레슨을 받았다.

나쁘지 않았다.

역시 소문은 무서운거다.

졸업할 때만 해도 온갖 안좋은 소문이 엄청 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선생들이 다들 나를 반긴다.

무슨 파리의 기밀을 빼내려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본다.


1시간 레슨동안 다 못 끝내서 2시간 쉬다가 또 불려갔다.

추억이 서린 3층.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증축 후 제일 먼저 3층 연습실을 사용했었다.
캡술 하나 들고 와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쉬는 부엌

여름때와 마찬가지로 악기는 사물함에 쳐박아두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Burggarten을 들러, Heidi Horten Collection을 구경하고, 시청을 갔다가 돌아왔다.

25년 여름을 함께한 프란츠 요제프 1세
갑자기 해가 비치는 Burggarten
멀리 보이는 미술사 박물관
모차르트 동상 앞에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꽃이 심어져 있는데, 겨울이라 없어서 무섭다.
Burgtheater

시청에는 매년 겨울이 그렇듯, 아이스링크가 생겼다.

올해는 좀 심하게 길고, 크다.

뭔 3월 초까지 한다.

여기저기서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청 보러 왔는데 이놈의 아이스링크가 다 가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궁시렁거린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데, 마냥 뭐라 하기만도 그렇다.


학교다닐때 바로크 춤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때 선생님이 매년 여름 바로크-19세기 춤을 가르치고 추는 강좌를 1주일 동안 열었었다.

예전에는 자기가 체력이 되어서 겨울에도 했었다는데, 겨울에 한 춤은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추는 춤이었다.

그 때 그 강좌를 열기위해 시에 지원금을 요청했는데, 유서깊은 비엔나의 전통인 겨울 시즌 빙판 스케이트 춤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금을 달라는 식이었다.

그만큼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비엔나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담배모양 재떨이

매일 같이 학교를 다닐 때 찍던 구도로 한 번 또 찍어주었다.

화요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4명이 2시간 단위로 줄줄이 소세지 처럼 되었다.

처음은 단 한 번의 일회성 연주를 위해 결성된 Tacet Quartet의 비올라 멤버다.

어디 이상한 시내로 불러서 갔다.

웅장한 Minoritenkirche

가는길에 비엔나 3대 카페 Cafe Central을 겉에서만 봤다.

여기는 줄이 항상 길어서 들어가 볼 엄두가 안난다.

Cafe Central

Passage Ferstel 안에 있는 커피숍이란다.

Passage Ferstel

Cafe Couture라는 곳인데 실패했다.

얘가 원두 커피에 환장하는 애라서 놔뒀는데, 대참사가 일어났다.

그래도 사줬으니까 웃으며 마셨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예전 선생님을 만났다.

그냥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예기를 나눴다.

여름에 잘츠부르크에서 한 달 보고 처음이었다.

80센트 카푸치노

떠들고 있는데 중간에 갑작스럽게 잡힌 약속이 생겨서 한명이 추가되었다.

은퇴한 교수였다.

할 얘기가 있다고 직접 학교로 오겠다면서 왔다.

내 덕분에 갑자기 학교가 사교의 장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24년에 비엔나를 떠날 때와 다른게 전혀 없었다.

그 떄 있었던 애들, 교수들, 선생님들 전부 다 만났다.

2024년 11월 부터 2026년 1월이 잘라서 이어붙인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특별한 얘기를 하나 했더니 똑같다.

파리는 어떠냐, 여기가 더 좋지 않냐. 우리가 더 잘났다. 뭐 이런얘기가 듣고 싶었나보다.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좀 떠들다가 4차 모임을 하러 갔다.


또 커피 한잔을 하고 떠들고 놀다가 연습실에 들려서 연습을 좀 하고 돌아갔다.

1년 반을 살았던 집 앞의 기차역

노스텔지어 뿜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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