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매장에서의 귀환, 관속에서 찾은 깨달음

by 무학의통찰

1. 난생처음 당한 뺑소니

이집트의 어느 황량한 길바닥, 나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한 시간 넘게 방치된 적이 있었다. 뜨거운 지열과 모래먼지가 뒤섞인 거리에서 나를 앞질러 가는 차들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도 멈춰 서지 않았고, 나를 도와줄 시스템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막막한 공간에서 방치된 채 누워있던 나는, 내가 문명의 보호망 밖으로 튕겨 나간 보잘것없는 생명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비명을 질러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그 정적 속에서 느꼈던 ‘완벽한 단절’. 그것이 내가 처음 마주한 야생의 진짜 얼굴이자,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생명이 겪는 처절한 고립이었다.


2.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에서의 교통사고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한 사고는 너무나 일상적인 길 위에서 일어났다. 매뉴얼 바이크가 아직 낯설었던 초보 시절, 왕복 2차로의 좁은 이면도로를 평범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며 튀어나왔고, 나는 그를 피하려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바이크가 넘어지는 것보다 내 몸이 튕겨 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나는 핸들 너머로 거대한 텀블링을 하며 허공을 날았다.


아스팔트 위를 몇 바퀴나 구르고 멈췄을 때, 가장 처음 느낀 감각은 멍해지도록 길고 날카로운 이명이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광배와 목을 타고 전해지는 압도적인 통증은 숨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비명은커녕 신음도 내뱉지 못한 채, 나는 조각난 필름처럼 띄엄띄엄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와 119 구급차의 사이렌을 들으며 의식을 잃어갔다. 내가 구축한 ‘평온한 일상’이라는 요새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찰나였다.


3. 고통과 바꾼 수치심

정신이 돌아온 곳은 왁자지껄한 응급실이었다. 4번부터 9번까지의 등갈비가 분쇄골절되고 쇄골마저 부러져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때 간호사가 다가와 소변줄을 꽂아야 한다며 내 옷을 벗기려 했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엇인가가 고통을 뚫고 솟구쳤다. 아무리 의료인이라 해도, 생면부지의 타인 앞에서 내 치부를 드러내고 줄에 의지해 소변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나를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뼈들이 서로 어긋나며 날카롭게 긁히는 듯한 통증을 집어삼키며 초인적인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나는 내 힘으로 소변을 보고 스스로 환자복을 갈아입었다. 의학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으스러진 뼈의 통증보다 ‘타인에게 내 모든 주권을 맡겨야 한다는 비참함’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4. 문명이라는 온실 속의 염치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넓적다리뼈'야말로 문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다친 사람 곁을 지키며 뼈가 붙을 때까지 돌봐준 '연대'가 있었기에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병실에 누워 지내며 나 역시 안도감을 느꼈다. 이집트의 길바닥이 아닌, 대한민국 병원에 누워있어 다행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은 혹독한 굴욕을 동반했다. 갈비뼈는 수술이나 고정조차 불가능해 오직 생으로 버티며 붙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숨을 쉴 때마다 흉곽이 부풀었다 줄어들며 조각난 뼈들이 폐부를 찔러댔다. 특히 소변을 보는 일은 생을 건 사투였다. 누운 채 소변통을 대기 위해 몸을 옆으로 아주 살짝 트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몸을 겨우 수 센티미터 돌리는 데만 영겁 같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짧은 궤적을 그리며 으스러진 등갈비들은 서로의 날을 부딪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어른도 이런 비명을 지르는구나' 싶은,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고통은 방광이 아니라, 몸을 뒤척이는 모든 찰나에 흉벽을 타고 몰려오는 등갈비의 분쇄된 파편들이었다. 기침은커녕 깊은숨도 못 쉬니 목에는 끊임없이 가래가 찼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됐는데도 나를 질식시키는 가래와 싸워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는 환자용 침대였다. 각도를 올릴 때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야 했고, 침대 아래 손잡이를 꽂아 일일이 돌리는 그들의 지친 표정은 미안함을 넘어선 거대한 부채감이 되었다.


5. 존엄을 건 2주간의 단식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무력함에 저항하기로 했다. 사고 후 약 두 달간의 입원 기간 중, 초기 2주 동안 나는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소변 수발을 받는 것도 비참한데, 대변 처리까지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마저 잃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온전한 자립을 꿈꾸던 나에게 마가렛 미드의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미드는 누군가 음식을 가져다주었기에 뼈가 붙었다고 했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나의 존엄을 증명하려 했다. 굶주림은 참을 수 있었으나, 자립하지 못하는 생명이 풍기는 냄새나는 무력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스스로 걷기가 가능해져 내 힘으로 화장실을 찾아가던 날, 나는 비로소 잃어버렸던 삶의 주권을 되찾은 만기수처럼 다시 첫 음식을 삼킬 수 있었다.


6. 관 속에 생매장당한 밤, 억겁의 시간

밤마다 찾아오는 정적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모든 숨소리가 잦아들고 어둠이 병실을 덮으면, 나는 '관 속에 산 채로 매장당한 것 같은'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정신은 예민하게 깨어 우주를 유영하는데, 육체는 산 채로 고정된 고깃덩어리가 되어 겪어야 하는 무력함의 극한에 처해 있었다. 꼼짝할 수 없는 육신 위에 겹겹이 쌓이는 침묵은 나를 짓누르는 흙더미 같았다. 정신은 멀쩡한데 육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이 참혹한 단절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 기억은 몸에 깊게 각인되어, 최근 MRI 촬영을 위해 좁은 통 속에 누워있던 20분 동안 나를 다시 그 지옥으로 소환했다. 꼼짝할 수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다시 숨이 막혀오던 그 억겁의 시간. 이것이 공황이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던 그 순간은, 내가 겪은 고통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정의하는 지독한 흉터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7.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결국 그 지옥 같은 시간을 통과하며 깨달은 사실은 하나다. 고통이 지배해 버린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나에게 ‘골골대며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일상적인 고통과 싸우느라 내 발로 당당히 걷고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엄한 상태가 아니라면, 그 건강하지 못한 정신으로 얼마나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될 것인가. 이러한 장수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치는 게 무서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한 채 오직 안전만을 쫓으며 살 생각은 없다. 대신 나는 슬그머니 간병인보험의 약관을 살펴보며 나름의 대책을 세우는 쪽을 택한다. 주권을 뺏기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면서도 끝내 낭만을 포기하지 못해 이런 꼼수를 부리는 나를 보며, 정말 영원히 철이 들지 않으려나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은 단단한 육체라는 바탕 위에만 단단한 정신이 깃들 수 있다는 것, 돈을 버는 이유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 그 당연한 사실들이 관 속에서 챙겨 나온 가장 확실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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