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면 아직도 창가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기차, 버스와는 다르게 지구를 가까이에서 보는 느낌이다. 실제 거리상으로 지구의 중심과는 더 떨어진 거지만. 비행기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비행기의 작은 창문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느 유명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하늘과 파란색 바다를 실컷 볼 수 있다. 흰색 구름들이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지어 준다. 네팔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히말라야산맥을 볼 수 있었고 몰디브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섬 주위의 영롱한 바다빛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야간비행기를 타면 볼 게 없어서 심심할 것 같지만 밤에 바라보는 지구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지상에서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별을 볼 수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정면에 별이 보인다. 별빛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빛들도 구경할 수 있다. 저 멀리서 지나가는 다른 비행기에서 나오는 빛을 볼 수 있고, 육지 위에 수많은 빛도 볼 수 있다. 육지 위에는 얼마나 많은 빛이 있는지 지도 모양 그대로 빛이 난다. 필리핀을 지나칠 때는 바다 위에 동동 떠 있는 빛들이 보였는데 그 수가 별빛보다 많아서 마치 하늘과 바다가 뒤바뀐듯했다.
이 모든 빛들은 작은 점으로 보이는데 크기가 다 비슷하다. 저 멀리 행성에서 나오는 빛과 배에서 나오는 빛이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행성과 전구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지만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두 빛은 비슷한 것이다. 크기가 얼마나 다르던지 결국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모두 비슷한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속에 섞여서 바라보게 되면 빛의 크기는 참 다양해 보여서 내 빛이 초라해 보일 때도 많다. 나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아 보이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하지만 결국 비행기 안에서 바라볼 때 모든 빛이 점묘화의 한 점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들이 내뿜는 빛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 떠나는 동일한 존재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너무나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다르지 않다.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면 다 똑같은 존재일 뿐이다. 같은 존재로 살면서 사소한 것들로 물고 뜯을 필요가 없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자신의 빛을 뽐내어도 결국 똑같을 뿐이다. 그저 다양하게 자신만의 빛을 뿜다가 자연스럽게 꺼지는 삶을 살면 된다.
고통스러운 삶에 하필 가장 고통받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내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다.
우주에 지구라는 행성이 태어났다. 행성에도 수명이 있기에 언젠가는 파괴되어 사라질 행성이다. 이 지구의 삶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을까? 지구의 수명을 인간이 태어나 죽는 시간으로 비교하면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삶도 찰나로 느껴진다.
지구입장에서 한 사람의 삶은 큰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비행기에서 내리면 또다시 별거 아닌 일에 고통받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이러한 생각을 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또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 같다.